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1.백목련을 닮은 여인
정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가 쓰던 방은 1층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두평도 채안될것 같은 작은방이다. 방한쪽에는 이불 한 채가 가지런히 개어져 있고, 윗목에는 피난 때 부산 까지 갖고 갔다는 낡은 재봉틀과 가족사진으로 가득 찬 사진첩이 수북이 쌓여있다.
변중석 여사는 늘 이렇게 말했단다. “취미라고는 재봉틀질밖에 없어요. 명절 때 며느리와 손자들 옷을 만들어 입히는게 큰 즐거움이죠. 이 재봉틀이 우리 집안 ‘가보’이고, 저 사진첩은 내 밑천이지요.”
6·25 한국전쟁시절. 나의 외할아버지도 소중히 쓰던 ‘싱거미싱’ 재봉틀을 등 뒤에 메고 38선을 넘어왔다. 피난 중에 외할머니가 재 봉틀로 삯바느질을 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삯바느질은 친정 어머니에게까지 이어졌다. 해진 옷이나 터진 이불, 뭐든지 재봉틀로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고쳐 내곤 했다. 변 여사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현대가 종중의 일원인 정홍채 감사는 충일한 책임감으로 크고 작은 행사를 주관하며 현대 식구들을 섬긴다. 그럼으로써 현대 가문을 이어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특히 고 정주영회장에게 조용한 내조를 한 변중석여사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단다. 변 여사는 옥당목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백목련을 닮았다고 한다. 한평생 ‘아옹다옹’ 한번 없이, 참고 견디며,어머니의 넓은 사랑으로 현대가 사람들을 보듬으셨다.
너무나 검소해서 생전에 자주 들렀던 용산 청과물 시장에서도 변여사의 신분을 잘 몰랐다고 한다. 인심 좋게 보이는 어떤 아주머니가 식자재를 대량으로 사서는 용달차에 싣고 운전석 옆자리에 타고 사라지면그분이 바로 현대그룹 회장부인이라는 말이 돌았단다.
가끔 정회장이 이제 우리도 잘살게 되었으니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쌀한가마니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시키면, 전, 두 가마니를 주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기에 끼니 걱정을 하던 시절에도 노숙자를 그냥 돌려보내는 일이 없었다.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철저히 실천하라.”
정주영 회장은 성취가 곧, 부(富)를 이루는 것이다. 재물만이 부의 척도가 아니라고 하며 물질 만능주의로 살아가는 혹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현재에 충실하면서 꿈에 비전을 담아 행하면 하는일이 성공을 거둘 것이다.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복된 일이라 했단다.
평소에도 일을 많이 하려고 “겨울은 밤이 길어 좋고, 여름은 해가 길어 좋다.”라고 하면서 언제나 새벽3시반이면 일어나 신문을 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였다.
변 여사는 남편이 현장에서 밤을 새울 때, 자신도 밤을 새우며, 하는일이 잘되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였다.
“주여,약할때 자기를 분별할수 있는 강한 힘과 무서울때 자기를 잃지 않는 위대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힘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폭풍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도록 가르쳐주시옵소서. 웃을 줄 아는 동시에 웃음을 잃지 않는힘을, 미래를 바라보는 동시에과거를 잊지 않는힘을주시옵소서. 이것을 다주신 다음에 이에 대하여 유머를 알게 하여 인생을 엄숙히 살아감과 동시에 삶을 즐길 줄 알게 하시고, 자기 자신을 너무 중대히 여기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은 소박하다는 것과 참된 지혜는 개방적인것이요. 참된 힘은온유한 힘이라는것을 명심토록 하여 주시옵소서.”
박현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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