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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학 그 표준이론』제8장 ‘주요 인간론’ -'영육이원론과 영혼육삼원론'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3/10 [09:06]

『영혼학 그 표준이론』제8장 ‘주요 인간론’ -'영육이원론과 영혼육삼원론'

정영부 | 입력 : 2023/03/10 [09:06]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8주요 인간론(人間論)’ 영육이원론과 영혼육삼원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영육이원론의 전통교설

 

현재 기독교의 전통설은 앞 1)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은 육신, 영혼, 정신의 3부 구조체가 아니고, 4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정의한 대로 영육(靈肉)2부 구조체로 본다. 그러나 이후에도 기독교 내부에서는 이원론(dichotomy, bipartite, 이분법)과 삼원론(trichotomy, Tripartite, 삼분법) 간에 신학적 대립이 있었으나 어느 한 이론이 정통(正統)설로 공인받고, 다른 이론이 이단(異端)설로 배척된 것은 아니다.

 

전통(傳統)교설인 이원론에 따르면 영은 육신과 함께 인간을 이루는 공동 구성체로서, 육신을 원질(materia, 질료)로 하는 인간의 체형(forma, 형상)이다. 그 영성적 활동은 육신과 합동으로 지성 작용, 사유(思惟), 의지력, 자유, 자아의식, 윤리 판단, 거룩함의 추구 등으로 인격성의 완성과 그 영속을 지향하면서 나타난다.(1)

 

영과 혼을 구분하지 않는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여러 구절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2)영혼이란 단어는 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영혼(靈魂)이 영()과 혼()으로 구성된 것이라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편, 이원론에 있어서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은 영혼을 육체의 형상으로 생각해야 할 만큼 심오하다고 주장한다.(3)그러니 영육이원론은 사실상 영육이 일체화된 영육일체론이다.(4)그러나 그 일체성을 아무리 강조한들 사람은 물질적인 요소와 비물질적인 요소로 구성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 공식적으로는 이원론(dichotomy)이다.

 

한편 이원론에서는 마음의 기능과 위치를 두고 대립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즉 지정의(知情意)의 기능을 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여 마음을 영에 포함시키는 , 마음을 몸의 부속기능으로 보는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 이후 많은 교회학자들은 실체적 합일(Unio substantialis)이라 하며 영의 기능에 지정의(知情意)를 포함시키면서 마음 전체가 육은 아니라는 전자의 주장을 고수한다. 한편 후자의 주장에서 영은 하느님과 교통하는 영교(靈交)의 역할만을 하게 된다.(5)이 주장에서는 명종 후 마음은 몸과 같이 흙에 묻혔다가 육이 부활할 때 같이 부활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때까지의 영은 마음이 없으니 완벽한 영이 아니고 부활을 거쳐야 완벽해진다는 것이다. 부활이 필요한 이유 하나를 더 개발하려는 의도와 영육일체론을 강화시켜 보려는 생각에서 나온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기체가 육에 속한다는 교설은 이런저런 사상에 많이 보이나 마음이 육에 속한다는 교설은 사례가 없다.(6)또 마음이 없는 영이 천국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는가.(7)

 

영혼육삼원론의 소수설(8) 

 

삼원론의 역사

 

바오로 사도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영과 혼을 구분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사람은 물질적인 육과 비물질적인 영혼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구성요소들은 다시 여러 면으로 나누어진다. 육이 피와 살로 나뉠 수 있는 것처럼 영혼은 다시 영과 혼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뿐 아니라 성경에 나타나는 영과 혼의 구분에 대한 수많은 언급 때문에(9)초기교회에서는 오히려 삼원론이 주류이론이었다. 교회의 첫 3세기 동안 삼원론은 정통적인 해석으로 간주되었으며 많은 초기 교회 교부들(10)은 사람이 영혼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단으로 정죄받은 기독교 영지주의와 아폴리나리안주의(Apollinarianism), 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에서 삼원설을 가르친 이유로 삼원설에 대한 편견이 생겼으며 이로 인해 삼원설은 점차 소수설로 전락하였다. 게다가 기독교 신학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원죄론을 통하여 삼원론에 부정적인 언급을 하였다. 즉 그는 삼원론은 인정하지만 영()은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으며 그 후 아담의 자손은 영적손상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결국 사람은 혼과 육으로 구성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註釋> 

1) 백민관, 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Anima 참조

 

2) 기독교 영육이원론이 기반하는 기독교의 성경구절

 

1. 성경은 영(spirit, pneuma)과 혼(soul, psychē)을 혼용하여 사용함으로써 영과 혼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볼 수 없게 한다. 또한 영과 혼은 같은 기능을 한다. 둘 다 우울해하고(창세기 41:8; 시편 42:6), 걱정하며(요한복음 12:27; 13:21), 둘 다 죽음과 연관되어 있으며(마태오복음 20:28; 27:50) 천국에서 볼 수 있다(히브리서 12:23; 계시록 6:9). 둘 다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으며(루카복음 1:46, 47) 예수님의 희생과 관련이 있다(요한복음 10:15; 19:30). 죽는다는 것을 표현할 때 혼을 포기한다고도 표현되기도 하고(창세기 35:18; 열왕기상 17:21; 사도행전 15:26) 영을 포기한다고 기록하기도 했다(시편 31:5; 루카복음 23:46; 사도행전 7:59). 영 또는 혼을 포기한다는 것은 육체적 죽음을 의미했다. 죽은 자들을 부를 때 역시 혼으로 부르기도 했고(계시록 6:9; 20:4) 영으로 부르기도 했다(히브리서 12:23; 베드로전서 3:19). 따라서 영과 혼은 하나의 다른 이름이다.

 

2. 성경에 나타나는 영육이원론적인 인간론의 근거

1) 인간의 창조에 대한 구절들(창세기 2, 7; 이사 42, 5; 33, 4; 지혜 15, 11)이 기본을 이루고

2) 인간이 영혼과 육신으로 된 사실을 말하는 구절들(14, 22; 지혜 1, 4; 8, 19 이하; 마태오 10, 28; 1코린 5, 3·5; 7, 34; 2코린 7, 1; 콜로 2, 5 )

3) 죽음은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창세 35, 18; 코헬 12, 7; 마태오 27, 50; 요한 19, 30; 사도 7, 59; 필립 1, 23; 2티모 4, 6; 2베드 1, 13; 묵시 6, 9; 20, 4)이라는 구절에 의한다(백민관의 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참조).

4) 기타 : (14,22), (지혜 1:4), (지혜 8:19), (마태오 10:2810:28), (1코린 5, 3:5), (1코린 7,34), (2코린 7:1), (콜로 2, 5), (10:28), (에스겔 18:20), (고린도전서 2:11), (베드로전서 4:6), (로마서 1:4), (고후 3:6), (디모데전서 3:16), (로마서 8:8), (8:13), (8:16), (고린도전서 5:4), (디모데전서 4:1), (요한14:6), (사도행전 23:8), (요한14:1), (요한14:2), (요한14:3), (고린도전서 12:10), (에베소서 6:12), (2:2), (전도서 3:21), (8:8), (8:9), (8:13), (8:9)

 

3) 가톨릭의 인간론에 대한 교리

 

인간의 육체는 하느님 모습의 존엄성에 참여한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을 통하여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령의 성전이 되는 것은 바로 인간 전체이다. 육체와 영혼으로 단일체를 이루는 인간은 그 육체적 조건을 통하여 물질세계의 요소들을 자기 자신 안에 모으고 있다. 이렇게 물질세계는 인간을 통하여 그 정점에 이르며, 창조주께 소리 높여 자유로운 찬미를 드린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적 생활을 천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부활시킬 자기 육체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은 영혼을 질료인 육체의 형상으로 생각해야 할 만큼 심오하다. 말하자면 물질로 구성된 육체가 인간 육체로서 살아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영혼 때문이다. 인간 안의 정신과 물질은 결합된 두 개의 본성이 아니라, 그 둘의 결합으로 하나의 단일한 본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교회는 각 사람의 영혼이 부모가 만든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셨고, 불멸한다고 가르친다.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되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 때때로 영혼은 과 구별되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고 흠 없이”(1테살 5;23) 지켜지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구분이 영혼을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이란 인간이 그 창조 때부터 자신의 초자연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영혼은 은총으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가톨릭교리서, 364~367쪽 참조).

 

4) 기독교의 영육이원론에서 혼은 불멸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헬라개념과 동일하지 않다, 헬라철학의 이원론에서 혼은 육의 감옥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영은 육과 조화롭게 창조되었다. 또 인간이 구원받더라도 영이 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속해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히브리적 개념인 육체의 부활론에 근거한 영육일체론적 개념이다.

 

5) 영은 하느님의 부름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영교(靈交)의 역할을 한다(라이프성경사전, 4 참조).

 

6) 1. 살아서 靈化되어 명종 후 천국에 드는 영에 마음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는 육의 부활로 비로소 완전한 천국인간이 된다는 주장을 위해 마음을 억지로 육에 가져다 붙인 것인데 그렇다면 천국에 드는 영은 마음이 없는 영인 셈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영육이원의 영은 아직 천국시민이 아니므로 표준이론으로 보면 사실상 혼이다. 따라서 영육이원은 혼육이원이요 영육일체론은 혼육일체론이다. 표준이론에서 마음은 혼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혼에 마음이 없다면 혼육이원이 아니라 육일원이 되고 마니 마음이 육에 있는 영육이원론은 신은 있으나 사람에게 신은 없으니 사실상 유물론에 가깝다.

2. 하느님의 네샤마는 짐승의 각혼을 사람의 지혼으로 바꾸었다. 이때 네샤마가 각혼에 추가한 요소는 이원론에서는 상위정신체와 양심체이다(미주 181 ‘창세기와 기독교 인간론’ 8. 참조). 즉 마음은 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혼에 있다.

 

7) 기독교 영육이원론의 마음론

 

1. 이원론은 영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은 영이 아니다’ ‘마음은 육에 속한 요소다’ ‘교회는 영혼을 영과 혼 둘로 나누지 않는다라고 애써 주장하며 다음의 논리를 편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고 육체는 마음 그리고 몸으로 되어 있다. 인간론을 성경적으로 바로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인간론이 구원교리와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 심신의 주격 요소로 지음 받은 범죄 하지 않는 요소로서 소멸하지 않는다. 또한 영의 죽음은 하느님과 교제하지 못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를 말할 뿐이다. 그 끊어진 교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이어졌으니 이것이 구원이요 중생이요 부활이다. 사람의 구성요소는 영과 육으로 이분된다. 또 영은 단일체이지만, 육은 크게는 마음과 몸으로 이분할 수 있다. 이 마음과 몸을 더 세분하면 마음도 수많은 요소로 되어 있고, 몸도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영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은 영이 아니다. 마음은 육에 속한 요소이다.”

 

2. 이처럼 이분법은 혼을 별도의 구성요소로 인정하지 않다 보니 갈 데 없는 혼(마음)을 몸에 억지로 가져다 붙여 마음을 표준이론의 생기체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니 죽으면 마음은 몸과 같이 소멸한다. 마음은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백()에 불과한 것이다.

 

3. 만일 기독교 영육이원론이 마음을 몸과 구분하고 나아가 감각의 생기체 기능뿐 아니라 지정의(知情意)의 기능을 가진 정신체까지 마음에 포함시켰다면 표준이론과 동일한 영혼육의 3분법이 될 뻔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자아의 본질인 知情意의 정신체까지 소멸된다고 하기는 차마 어려울 것이니 어떤 식이든 마음의 영생성을 인정하였을 것이라서 그렇다.

 

4. 현재 기독교 2분법은 마음에서 정신체의 기능을 빼서 은연중 지정의의 기능이 마음이 아니라 영의 기능에 속하는 것으로 암시하기도 하고(이런 경우 영은 영교의 기능만 가졌다는 교리에 위배된다) 지정의의 기능을 생기체에 포함시켜서 죽으면 육과 함께 소멸시키기도 한다. 마음에 대한 정의가 이러하니 영육 이원론의 기독교는 스스로도 논리가 궁벽(窮僻)한 입장이다.

 

5. 그런데 지정의가 소멸된다고만 가르치면 이는 자아의 소멸이니 신자들이 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마음의 멸망을 용인할 수 없는 영육이원의 기독교는 육체의 부활과 영육일체적인 이원론을 주장함으로써 마음을 다시 살려낸다. , 최후의 심판 때 육은 마음과 함께 되살아나서 천국에서든 지옥에서든 영과 함께 영생한다. 지옥에 떨어진 영과 육은 지옥의 영벌(永罰)의 영생보다는 소멸을 택하겠다고 부르짖을 테지만 하느님은 잔인무도하게도 영육을 영원토록 죽이지 않고 최고의 고통으로 괴롭힌다. 하느님의 일부(네샤마)로서 영교의 기능밖에 가지지 않은 영을 최고의 악형에 처하는 것이다. 全能하고 全善하신 하느님께서 원초적으로 악행이 불가능한 자신의 일부가 악을 저질렀다고 벌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부정하시는 격이다. 차라리 二元의 영지주의, 업에 붙들린 아트마, 무명에 빠진 佛性이 훨씬 논리적이다. 이제 초대교부들이 자신과 교회의 생존을 위해 만든 이런 엉터리 교리는 고칠 때도 되었다.

 

6. 영이 영벌을 당한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기독교에서도 소수의견이긴 하지만 악인의 영혼은 결국 소멸된다는 악인소멸론(Annihilationism)과 악인이라도 결국은 구원받는다는 보편주의(Christian universalism)가 오래전부터 있었다(쿠사노 타쿠미, 천국의 세계, 박은희 옮김, 154쪽 참조). 영이 소멸된다는 주장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 편이 훨씬 자비롭다(5.5.5. 기독교의 저승관 참조).

 

8) 삼원론이 이단교설 정도는 아니라서 소수교설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원론이 다수교설이 아니고 전통교설인 것인 그만큼 강력한 지지를 받는 교설이라는 뜻이다.

 

9) 신약에서 105번 사용된 프쉬케(psychë)는 인간의 심리적 측면을 나타내고 총 385번 사용된 프네우마(pneuma)는 그중 약 80번이 인간의 영을 나타낸다(영문위키, ‘Tripartite’ 참조).

 

10) Irenaeus, Tatian, Melito, AlexandriaDidymus, Justin Martyr, AlexandriaClement, Origen, NyssaGregory(335~395), Basil of Caesarea(330~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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