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출가,50여 년 교단 위해 헌신
원정사는 원불교에서 두 번째로 높은 법위(法位)인 ‘출가위’에 해당하는 이를 부르는 존칭이다.
1925년 부산에서 태어난 서 원정사는 11살 때 부산을 방문한 박중빈 대종사를 직접 만난 적이 있어 몇 안 남은 ‘친견(親見·친히 보다) 제자’로 꼽힌다.
1942년에 출가해 유일학림(원광대 전신) 1기로 학업을 마쳤다. 1949년 전북 진안의 좌포교당 교무를 시작으로 신도 · 신흥 · 도양 · 오수 · 부산 영도교당, 일본교구, 부산 동래교당, 정읍 교구장, 미주 서부교구장(LA교당)으로 50여 년을 교단을 위해 헌신했다.
특히 미국에서 활동할 때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지역 주민들이 포교를 방해했으나 결국 교화를 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밤이면 밤마다 교당 문을 두드리고 지붕에 와서 뛰고 난리를 피웠다. 그러던 중 교당 마당에 있던 아보카도 열매를 따서 교당을 찾아오면 나눠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이들이 나중에는 먼저 인사를 했다.”
빈소는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향적당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일 오전 10시 30분, 장지는 영모묘원이다.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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