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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여자들 [박현선 에세이]~철(鐵)의 여인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3/20 [11:25]
제 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3.철(鐵)의 여인

꿈꾸는 여자들 [박현선 에세이]~철(鐵)의 여인

제 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3.철(鐵)의 여인

박현선 | 입력 : 2023/03/20 [11:25]

  사진출처=픽사베이© CRS NEWS


얘야! 코로나 때문에 일하기 힘들지?”

딸걱정에 전화하는 친정어머니의 목소리로 난하루일을 시작한다

 

어머니는 스물하나 앳된 나이에 아버지를 만나셨다결혼후쓰리고 아픈일을 겪었다내 위로 2살터울의 오빠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자식의 느닷없는 죽음은 어머니를 숨도 쉴수 없게 괴롭혔다울컥울컥 울음이 쏟아져 나왔고마치 헤어나오지 못할 동굴에 갇힌 느낌이었단다

 

긴시간 붙들고 있던 마음을 놓아주고2년후 나를 잉태하셨다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자식들 보살핌이 남달랐다아버지 월급으로 시댁살림까지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손에는 항상 일거리가 쥐어져 있었다그시절어머니는 늘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것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간식거리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신 일이다

 

봄에는 쌀가루를 빻아 들에서 바로 뜯어온 쑥을 넣고, 쑥버무리를 쪄주셨다여름이 되면 밭에 자란 수박을 숟가락으로 파내어 설탕가루를 넣고 화채를 만들어 주셨다. 달콤한 맛이 지금도 기억 속에 배어있다.

 

어머니 인생에 ,한번 고비가 찾아왔다직장 다니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농사일을 도맡아 하셨다. 그러다 보니, 무릎의 묵은 통증이 연골을 녹여낸 것이다. 관절에 파스를 붙이면서 모질게 버티었지만 닳아버린 돌담이 되어버렸다.

 

몸에 쇠붙이를 넣는 수술은 안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어머니는 기어 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수술을 받기로 하셨다. 춘천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하게 되었다병실은 7층으로 4인실이다오래된 건물이라 화장실이 떨어져 있다. 휠체어에 태워 이동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체중이 앞으로 쏠려 발을 압박해 휠체어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후유증이 생긴다.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며 갔다 오는 일이라 긴장해야 한다. 상태가 좋지 않을까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한몸처럼 움직였다.


병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기란 쉽지가 않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책도 읽어드리고, 발 마사지도 해 드리며 보냈다. 호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앞길만 생각하며 살아올 때 어머니의 삶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강철 같은 어머니였는데 이제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에 쭈글쭈글 주름진 몸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따뜻한 손길을주었던 어머니가 내 곁에 계시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지금 계신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퇴원하는 날, 어머니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우리 딸, 힘들었지? 고생했어!” 미처 말로 다 못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니, 글썽거리는 눈물을 보였다. “ 울고 그래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 어머니는 주름잡힌 손으로 내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퇴원 후, 친정집 다락방을 청소하다 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읽어 주던 동화책이 노끈에 묶여 쌓여 있다. 속지가 누렇게 바랜 채보관되어 있다. 동화책을 읽어 주신 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단순히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아니라가꾸기’ 훈련을 시킨 것은 아닐까마치 동화속 등장인물을 제로 만난것 처럼 실감나게 읽어주셨고,노래는 가락까지 붙여 가며 신명 나게 들려주셨다. 그때는 절로 귀가 쫑긋해지며 긴장감에 가슴이 뛰곤 했다. 어머니가 선택하는 동화는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이 아니라 그안에 교훈이 담겨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읽어 준 동화책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 꺾일 손가?”라는 속담이 담긴 책이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옛날에 서당에 다니는 아이가 있었는데 오가던 길가에 돌을 주워다 정성으로 탑을 쌓았더니 큰 돌탑이 되었다. 또한, 탑 옆에 버드나무를 심었더니 큰 나무가 되었고, 아이도 어느덧 자라 청년이 되었다. 하루는 농사일을 끝내고,집으로 돌아오는데 빈터에 전에 없었던 집이 한 채 서 있더란다. 상한 생각이 들어 주인을 찾으니 어여쁜 색시가 나와 하룻밤 자고 가길 원했고, 청년은 홀린 듯이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눕게 되었다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는 색시를 보니 혓바닥 끝이 둘로 갈라져 날름대고 있었다. 이 대목에 동생과 난 이야기를 듣다가우와∼.’ 손을 모으고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손이 축축이 젖었었다. 년은 순간적으로 문을 박차고 도망을 나왔다. 그랬더니 색시가 갑자기 구렁이로 변해 뒤쫓아왔다청년은평소에 쌓았던 돌탑으 올라간 다음 버드나무로 올라가 피하자, 구렁이는 돌탑으로 오르다가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었고, 청년은 무사했다고 한다집중했던 우리는 금세 안도의 숨을 내쉬며우 참, 다행이야!”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정성을 다한 일은 헛되지 않아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셨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즐거움이 넘쳤었다.

 

, 들려주세!”라고 보채면 안돼내일,일찍 학교 가야지∼!” 그때 동화책 읽어 줄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생각이 난다. 어머니께서 읽어 주는 동화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느껴졌다. 아슬아슬한 위기를 기적적인 힘으로 모면하는 이야기랄까?

 

▲ 박현선 수필가     ©CRS NEWS

박현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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