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소풍길 단상
수술 불가능한 몸 상태라 몇일 기다려 수술실로 들어서면서 “수술 중 죽는다 하더라도 여한없다.”며 초탈한 듯한 태도를 보였던 내가 느닷없이 “두세달 더 살겠다”는 뜻을 비추자 아내가 의아한 듯, 반기는 듯 묘한 웃음을 지었다. 농담으로 건네고 유머로 받아들인 짧은 이야기였지만 서로 많은 교감을 이룬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목발과 지팡이 의지 않고 처음 호수 공원 초입까지 다녀온 날이다. 느릿하게 절뚝이며 걸었지만 호수로 가는 벚꽃 터널이 눈부셨고 백목련, 자목련의 조화 이룬 자태가 매혹적이었다. 새들의 지저귐은 울음이 아니라 명징한 노래로 들렸다. 호숫가 연초록 수양버들은 태평하게 늘어져 내려 한없이 평화로웠다.
위로하며 힘을 주는 친지와 친구들에겐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해왔던 것을 깨닫게 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내 치료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도 새삼스러웠다.
지팡이 짚고 겨우 단지내 벤치에서 햇볕 쬐는 나에게 다가와 슬그머니 파스 세트를 주며 ‘아플 땐 이게 최고’라던 노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뒤뚝뒤뚝 걸어가는 그를 보며 아파 본 사람이 아픔을 공감한다는 것을 알았다. 식사와 청소, 목욕 등이 힘들 땐 이용하라며 무료재가요양서비스를 친절히 안내해준 아주머니는 가장 절실한 도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참 살만한 세상이었다.
살만한 세상을 느끼게 한 귀한 시간에 감사한다. 긴 병상생활이 없었으면 가질 수 없었던 깨달음이리라.
저승사자와 염라대왕에게 ‘병상생활기간’을 빼고 데리러 오라는 소리를 안할 것이다.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든 순간이 자연적으로 찾아올 때 “더 살아서 감당 못할 고통이 다가올 때 데리러 오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일거다. "이승에서의 즐거움뿐 아니라 감내할만한 고통과 함께 사랑을 배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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