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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⑮ 불법 전파의 시작 점, 다메크 스투파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04/10 [07:09]
불교의 역사는 최초의 설법에서 비롯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⑮ 불법 전파의 시작 점, 다메크 스투파

불교의 역사는 최초의 설법에서 비롯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04/10 [07:09]

석가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깨달음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느냐 아니면 혼자만이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최고 수준의 깨달음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데에 직면하게 되자,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49일 정도를 보내면서 장고에 들어갔다.

 

결국 깨달음을 펴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중국에서 한역할 때, 깨달음을 이룬 것을 성정각(成正覺)이라고 표현했다. 성정각을 이룬 곳은 지금 보드가야라고 불리는 곳이다. 붓다가야라고도 부른다. 

 

▲ 사르나트(녹야원)에 있는 전법탑.  © CRS NEWS

 

그렇다면 누구에게 먼저 깨달음을 전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함께 수행했던 다섯 명의 비구들이었다. 헤아려보니 그들은 보드가야 근방에 있지 않고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 어딘가에서 유행하고 있을 것으로 영감이 떠올랐다. 지체할 것 없이 길을 나섰다. 직선거리만도 200km가 넘는 먼 길이었다. 갠지스 강변에 도착했을 때는 수많은 유행승들이 강변 백사장에서 난상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 2천 6백 년 전 붓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갠지스 강변을 찾아서 외도(外道)들과 토론을 벌였던 장소.  © CRS NEWS

 

인생과 우주를 논하면서 서로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었다. 초기 불교 경전에서는 62(六十二見)을 기록하고 있다. 초기불교 경전 등에서는 이들을 외도(外道)라고 불렀고 모든 견해 또는 사상을 62종으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62가지의 모든 외도들의 견해'라는 뜻에서 62제견(六十二諸見) 또는 '62가지의 외도의 견해와 내용'이라는 뜻에서 62견취(六十二見趣)라고도 불리며, 간단히 줄여서 62(六十二)라고도 한다.

 

경전적 근거로는 남전장부.범망경(南傳長部·梵網經)》《장아함경.범동경(長阿含經·梵動經)》《범망62견경(梵網六十二見經)등에 기록되어 있다. 

 

▲ 중국 중경 대조석각(大足石刻)에 묘사된 육사외도(六師外道) 조각상.  © CRS NEWS

  

이들 외도들의 견해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로 집약된다. 중국에서는 과거를 전제(前際)라 하고 미래를 후제(後際)라 했다. 현재는 과거의 이후이자 미래의 이전이며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인연이기 때문에 결국 과거에 대한 관찰과 미래의 관찰로 나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아비달마대비바사론199권에서 논하고 있다. 

 

▲ 사르나트(녹야원) 박물관을 방문하는 인도인들. 박물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상과 아소카 대왕이 제작한 인도 국장(國章)인 네 마리의 사자상이 보관되어 있다.  © CRS NEWS

 

당시에는 외도 천국이었는데, 붓다 석가모니가 이런 사상계의 혼란을 통일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사상계의 대표적인 여섯 명의 스승이 존재했다. 이 분들도 간단한 분들은 아니었지만, 붓다 석가모니를 당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갠지스 강변 백사장에서 토론을 벌였다. 그들을 일거에 논파해 버렸다. 그런 다음에는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도반들을 만나자마자 그들은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 차렸다. 그러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것이 바로 사성제이다. 사성제는 네 개의 고귀한 진리라는 뜻이지만 석가의 모든 깨달음의 대요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른바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하는데,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짜뜨와리 아랴샷쨔니라고 하며, 빨리어로는 짜따리 아리야사짜니라 한다. 중국에서 한역할 때, ‘四聖諦라고 했는데, ‘四真諦四諦四種神聖的諦라고 한역했다.

 

▲ 한국의 불자들이 사르나트(녹야원) 다메크(전법탑)을 순례하고 있다.  © CRS NEWS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가 그것이다. 붓다가 최초로 설한 진리의 내용이다. 고성제는 둑카하(dukkha)라 하는데, 영어로는 suffering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서퍼링은 고통인데, 갈망, 욕망 또는 집착, 문자 그대로 갈증과 같은 개념이다. 우리 인간은 이런 갈증의 연속에서 헤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윤회(삼사라)의 연속성에서 인간은 영원히 세세생생 반복하는 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집성제는 삼무다야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의 원인을 말한다. 고의 원인은 탕하(渴愛)와 함께 생겨나는 것이다. 멸성제는 이런 고의 원인을 제거하고 탕하를 없애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을 니로다라고 한다. ‘니로다를 하기 위해서는 도성제가 되어야 하는데, 마르가라고 하는 팔정도(八正道)가 제시된다.

 

팔정도는 팔성도분(八聖道分)으로 한역했는데, 빨리어로는 아리요 아땅기코 마고라 하는데, 중국에서는 八聖道八支正道八支聖道八聖支道 등으로 한역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사르나트(녹야원) 박물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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