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무료함에서의 발견, 그리고 다양한 취미.종교의 희열 인정하기

신민형 | 기사입력 2023/04/23 [19:51]
하늘소풍길 단상

무료함에서의 발견, 그리고 다양한 취미.종교의 희열 인정하기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23/04/23 [19:51]

 

▲ 모과나무 작은 연분홍 꽃잎에서 어떻게 길둥근 열매가 맺히는 지 경탄하며 희열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무료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열이다.  © CRS NEWS

 

집앞 벤치에서 햇볕 쬐고 있는데 6층 사는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다리 다 나았냐?”는 안부 인사로 시작하더니 자신은 돼지 띠 77라는 것을 밝히면서 과거 젊은 시절 두주불사의 무용담에서부터 근래 교회 또래 신자들과의 자전거 여행, 식사모임 등을 쉴새없이 늘어놓는다. 매우 바쁘고 즐겁기만 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담배 한 개비를 빼어 물더니 하루가 보내기가 지루하다고 했다. 그래서 “담배가 해로운줄 알지만 최근 다시 태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별안간 벤치서 일어나더니 모과나무 연분홍 꽃잎을 가르키며 여태까지 모과나무에꽃이 이렇게 피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무료함은 전혀 엿볼 수 없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희열감이 그의 표정에 담겨 있었다.

 

그가 끽연 후 아파트 현관 들어서고 나는 작정했던 호수공원 산책에 나섰다. 그러면서 나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산책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나는 무료함을 느끼지 못하고 생활해 왔다. 무언가 끊임없이 쫓기듯 일을 만들고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안달하듯 처리해온 듯 하다. 때론 줄곧 해오던 일들이 내 생활을 방해한다며 과감히 중단하는 건방을 떨었다. 1년전 중단한 페북이 그랬다. 내가 추구하는 생활과 삶이 뭔지도 모르면서 바쁜 척 허둥댔던 것은 아닌지....

 

6층 노인과의 대화도 그렇다. 느긋하게 경청하지 못하고 호수 공원 산책을 빨리 나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무료함을 느낄새 없는 고상하고 품위있는 생활인이라고 믿어 왔다. 아니, 지금 이렇게 겸손한 듯 글을 쓰면서도 오만함이 깊숙히 도사리고 있다. 

 

 

▲ 광교호수공원에서 흔들의자에서의 망중한과 사진촬영으로 세월낚기 하는 사람들  © CRS NEWS

 

호수공원에 들어서자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있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 청둥오리의 몸짓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 등 세월 낚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저들과 같은 취미로 같이 합류할 수는 없을까? 낚시찌가 꿈틀 댈 때까지 끈기로 기다리는 낚시꾼들을 시간낭비한다며 폄하하던 나는 과연 바쁜 척 부지런한 듯 살면서 무엇을 건지고 낚은건가?

 

골프가 노년의 최고 취미라며 권유하는 친구에 대해 속으로 시간 낭비한다며 경멸까지 한 것은 아닌지? 교회와 절에 다니며 신앙을 권하던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에 스스로 마음 수련을 하는 게 낫다고 내심 고집을 부린 건 아닌지? 초원에서 골프공을 통쾌하게 날리는 희열과, 교회와 절에서 기도와 절을 올리머 느끼는 환희를 알려고 하지 않고 내 방식의 취미와 믿음의 방식을 교만하게 간직해온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볼 일이다.

 

은근함과 인내의 낚시를 통해 세상을 보고 낚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예수와 부처, 무함마드와 단군, 하물여 수십억 광년 떨어진 외계인의 예지력를 영접하고 신봉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완벽하게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만하게 관찰하고 방관했을 뿐이다.

 

내가 취미와 종교 등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저 모든 걸끊임없이 생각하고 정리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시 나온건 아닌지 자성할 일이다. 모든 것을 아는 척하는 제너럴리스트로서 자부하고 자만한 것은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6층 노인이 극심한 무료함 속에서의 생각과 각성의 총량과 끊임없는 생각과 정리를 추구한 내 깨달음의 총량은 같을 것이다. 오히려 그의 무료함서 터득한 것이 깊을 듯 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는 듯 겉핧기보다 어느 종교나 절실함과 진심으로 매달리는 자의 삶과 생각의 질이 훨씬 높을 듯 하다.

 

모든 신앙을 미망일 수도 있다며 한편 폄훼하던 교만을 근절하고 어느 종교든 그 믿음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겠다. 내가 감히 모르는 경지라고 인정해야겠다.

 

골프와 사진 취미에 내가 깨닫지 못하는 더할 나위 없는 묘미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겠다. 그저 무료함을 달래는 시간죽이기가 아님을 공감해야겠다. 

 

다음에 6층 노인을 만나면 모과나무 연분홍 조그만 꽃잎에서 길둥근 열매가 맺힘을 경탄하며 가을 몸보신에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배우며 함께 희열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