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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에세이 [꿈꾸는 여자들]~ 밤새 '안녕'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5/15 [18:55]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10. 밤새 '안녕'

박현선 에세이 [꿈꾸는 여자들]~ 밤새 '안녕'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10. 밤새 '안녕'

박현선 | 입력 : 2023/05/15 [18:55]

 

충남 논산시 벌곡면 검천리, 주말농장으로 지어진 주택은 부부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사람이 살지 않아서인지 체취가 없어 보이고, 마른 덤불이 수북하게 덮여 있다. 택 귀퉁이에 짓다만 정자에는 통나무들이 무심히 쌓여 있다리가 되지 않은 텃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땅형상을 이곳, 저곳 살펴보며 10여 분 기다리니, 토지주 권선생이 도착했다. 주말임에도 현장까지 와준 것에 미소를 지으며 기뻐한다공기업 임원이었던 그녀의 남편은 은퇴 후 전원주택을 짓고 주말농장으로 쓰고 있었다. 유일한 낙으로 농장에 유실수를 심고, 갖가지 농작물을 가꾸어 자식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며 넉넉한 삶을 살았다고한다.

 

아들이 인근에 살고 있지만가끔 들를뿐,농장관리는 그녀의 남편이 도맡아했다권선생은 나이도 있고 하니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농장을 가꾸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고, 자랑스러워했다. 김장철이면 자식처럼 정성스럽게 가꾼 무,배추를 이웃에 나누어주는 정이 깊은 분이었다.

 

중학교 교장이었던 권 선생은 주말에나 농장을 방문했고, 농촌 일엔 취미가 없었다. 음악이나 듣고, 차를 마시며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1선생은 퇴직을 앞두고 외지에서 34일 일정으로 직자 교육을 받고 있었다그녀의 남편은 가을 추수로 종일 바쁘게 보내며 지내던 중,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렸.

 

준비 없이 당했던 일이라 남편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머리에 돌덩이를 얹은 듯. 힘들었고,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충격에 멍한 상태로 남편의 빈자리로 모든 생활이 바뀌었고 엉망이 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저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정, 이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 그냥 숨이 막힐듯 슬펐고죽음의 자리였던 농장에 오면 남편 생각에 잠기어 발길을 끊다시피 지냈다.

 

그때부터 농사일을 전혀 모르던 권 선생에겐 농장도 큰 애물단지가 되었다. 하필이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남편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이 몰려왔고, 내가 잘못해 줘서 남편이 영원히 떠나게 된 것 같아자책도 많이 들었단다

 

언제쯤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까, 마음의 병으로 우울증까지 생겼다. 이제 혼자서 농장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나? 짐스러워 근심만 쌓여간다며 눈물을 글썽거린.

 

이제 실낱같은 희망은 남편이 남기고 간 농장과 주택부지를 적절한 가격에 팔아서 정리하고 싶어했다.

농장 주변을 살펴보니농장앞 큰도로를 따라 꽤큰하천이 흐르고 있었고, 토지 위쪽으로 낮은 산이 둘러쳐져 있었다. 더욱이 대 도시 인근이라 개발 가치가 높아 보였다.

 

대전시 서구 신도시에서 20분 거리로 상당히 좋은 위치였다. 용도지역이 계획관리지역으로 개발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타운하우스 부지로 100평씩 분할해 허가만 받아 놓아도 원하는 가격의 몇배는 받을 수 있는 값어치가 있는 토지라고 말씀드렸다.

 

권선생은말씀하셨다.

 

농작물 가꾸는 재주가 없어서,정말이지 ,땅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거든요그런데이렇게 값진땅을 남겨주고 가시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안에서 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선생 남편은 가족에게 큰 선물을 주고 가셨어요.”

밤새 안녕이란 말이 있잖아요우리부부도 건강을 잘 관리해야겠어요!”

 

박현선 수필가

▲ 박현선 수필가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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