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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무제 장건 보고로 서역 정세 파악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4/05/13 [09:03]
신독(인도)에 불교라는 종교가 있다는 어렴풋한 정보 입수

한나라 무제 장건 보고로 서역 정세 파악

신독(인도)에 불교라는 종교가 있다는 어렴풋한 정보 입수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4/05/13 [09:03]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72)

 

천신만고 끝에 한 나라로 돌아온 장건은 서역에 대한 보고를 한나라 무제에게 했다. 전한(前漢)의 한 무제는 세종 효무황제 유철(世宗 孝武皇帝 劉徹, 기원전 156730~기원전 87329)로서 전한의 제7대 황제(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 한 무제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대완열전>에 의하면 장건의 서역개척 이야기가 전개된다.

 

▲ 장건의 서역 여행도.  © CRS NEWS

 

장건의 서역 여행에 대한 보고서는 한 나라에 신선한 정보를 제공했다. 장건은 페르가나의 대완(大宛), 트란속시아나의 월지(月氏)의 영토, 그리스-박트리아 통치의 잔재가 남아 있는 박트리아 국가 대하(大夏)의 영토, 강거(康居)를 직접 방문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방문하지 않은 주변 국가인 안식(安息)(아르사케드 영토), 조지(메소포타미아의 셀레우코스 제국), 신독(身毒)(인도), 오손 등 주변 국가에 대해서도 풍문을 보고했다.

 

▲ 서안 섬서 역사박물관 장건 조상.  © CRS NEWS

 

장건은 흉노의 포로에서 풀려난 후, 타림 분지 서쪽 ​​페르가나 지역에 위치한 대완국을 방문했다. 대완 사람들은 파르티아나 박트리아와 유사한 세련된 도시 거주자로 묘사되었다. 대완이란 이름은 기원전 4세기부터 2세기까지 이 지역을 점령했던 그리스 후손인 요나(Yona 그리스)라는 단어를 음역한 것으로 고려된다. 장건이 이곳에서 본 한혈마(汗血馬)는 키가 크고 강력한 피땀을 흘리는페르가나 말을 보고한 것이다. 대완국이 이 말을 한의 무제에게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자, 한 왕조는 이 말을 무력으로 획득하기 위해 두 번의 징벌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 감숙성 박물관이 소장한 동한(東漢) 시대 청동 비마상(飛馬像).  © CRS NEWS

 

▲ 한혈마.  © CRS NEWS

  

한혈마 때문에 이른바 천마전쟁(天馬戰爭)이 발발했다. 천마전쟁은 기원전 104년과 기원전 102년에 중국 한 왕조와 사카가 통치하는 (스키타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사이에 그리스 최동단 페르가나 계곡에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이다. 이 전쟁은 한-흉노 전쟁을 둘러싼 지정학적 확장과 무역 분쟁으로 인해 촉발되었으며, 그 결과 두 번의 한 원정이 한의 승리로 이어졌고, 한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 장건의 보고서에 설명된 국가들. 장건이 방문한 국가는 파란색으로 표시.  © CRS NEWS

 

사기<대완열전>에서, "대완은 흉노 영토의 남서쪽, 중국에서 직접 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있다. 사람들은 그 땅에 정착하여 밭을 갈고 쌀과 밀을 재배한다. 그들은 또한 포도로 포도주를 만든다. 사람들은 요새화된 도시의 집에서 살고 있으며, 그 지역에는 다양한 크기의 도시가 약 70개 이상 있다. 인구는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건은 대완왕의 도움을 받은 후, 남서쪽으로 월지국으로 가서 흉노에 맞서 군사동맹을 맺기로 되어 있었다.

 

"대월지족은 대완 서쪽, 옥수스 강 북쪽 약 1,500km에 살고 있다. 그들은 남쪽으로 대하(박트리아), 서쪽으로 안식(파르티아), 강거(康居 박트리아) 북쪽에는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유목민족으로 그 풍속은 흉노족과 비슷하며 그 수가 10만 명 내지 20만 명 정도 된다.”고 했다.

 

장건은 또한 월지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그들이 타림분지의 동쪽 부분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일부 역사가들은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들을 타림의 코카서스 미라와 연결시키게 되었다. 

 

▲ 타림분지 지도.  © CRS NEWS

 

▲ ‘샤오허 공주’ 미이라.  © CRS NEWS

 

신장 박물관에 전시된 샤오허 미라는 가장 오래된 타림 미라 중 하나로 연대가 3,800년 이상 전이다. 같은 장소의 또 다른 미라는 샤오허 공주이다. 월지족은 원래 기련(천산)과 둔황 사이에 살았으나 흉노에게 패배한 후 대완(페르가나)을 넘어 서쪽으로 멀리 이동하여 대하(박트리아) 사람들을 공격했다. (박트리아) 그리고 옥수스 강 북쪽 기슭에 왕의 궁정을 세웠다."고 했다. 월지의 소규모 그룹인 작은 월지는 탈출을 따라갈 수 없었고 티베트계의 강족(羌族)들 사이에서 피난처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가 인도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불교가 동점하는 데는 이처럼 한나라 장건의 서역개척 이야기가 전제되어 있다.

보검스님<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보검스님이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 모래사장에서 포즈를 취하다. 이 곳은 부처님께서 생존 시에 방문한 곳이다.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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