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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파미르계곡을 넘어 오아시스로

보검 스님 | 기사입력 2024/07/15 [07:46]
타클라마칸 사막에 불음(佛音)이 전해지다

불교 파미르계곡을 넘어 오아시스로

타클라마칸 사막에 불음(佛音)이 전해지다

보검 스님 | 입력 : 2024/07/15 [07:46]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81)

 

한 장소의 문화경관은 그 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진화, 형태, 특성 등을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때로는 명시적으로, 더 자주는 암시적으로 표현한다. 문화의 표현과 구성, 자아정체성, 독특성을 드러낸다. 또 한 문화적 연속성과 불연속성 외에도 장소나 공간에 대한 서사와 그 역사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공간적 상호작용 현상, 더 정확하게는 문화 전달이나 문화 확산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 파미르고원과 쿤룬산맥과 천산에 둘러싸인 서역(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지도.  © CRS NEWS

 

불교 동점(東漸)의 과정에서 파미르고원을 넘어 사막 오아시스 서역 국가인 카슈가르의 고대 문화경관의 형태는 불교 문화와 전통의 흔적을 담고 있다. 카슈가르의 고대 문화경관 창조에 있어 불교의 역할은 지대했다. 비록 현재는 고대 기념물(스투파 및 수도원) 유적이 희소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유적은 역사적인 풍경에서 볼 수 있는 요소 중 일부에 불과하다. 역사적 경관의 특징 중 많은 부분이 사라지거나 수정되었다. 남아 있는 기존 특징은 풍경의 문화적 가치를 드러 내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풍경의 중요성(의의)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리탑과 수도원의 존재를 해석하게 한다.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불교 역사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는지. 또 한 불교 문화경관의 발전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활동을 해석하게 해 준다. 불탑과 사찰의 공간적 구성이나 위치는 단독으로 평가되기보다는 문화적 상호작용의 측면에서 평가되어 왔다.

 

▲ 파미르 고원과 계곡.  © CRS NEWS

  

힌두쿠시와 파미르를 가로지르는 불교의 영역에 대한 연구와 인식은 중국불교는 물론 한국불교 인식에도 하나의 척도가 된다고 하겠다. 힌두쿠시, 카라코람, 쿠엔룬(곤륜) 및 서부 히말라야산맥의 거대한 산악 장벽에도 불구하고 고대부터 인도와 중앙아시아 사이에는 육로 무역 연결이 존재했다. 이는 두 지역의 사회 문화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캐러밴 상인들은 예술과 문화, 사상과 기술을 교환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여 문화 확산 과정을 도왔다. 발흐 사마르칸트 타슈켄트와 같은 투르키스탄의 오아시스 도시는 잘 알려진 무역 및 문화 중심지였다. 이 오아시스 도시들은 수천 년 동안 무역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이러한 무역로를 따라 중앙아시아의 사막과 산, 오아시스 도시를 거쳐 중국 문화권으로 전파되었다. 

 

▲ 타클라마칸 사막 오아시스 나라였던 카슈가르의 옛 도심지역.  © CRS NEWS

 

중국의 서부 지역은 중국 역사상 항상 특별한 지리적 위치였다. 도시나 국가는 고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위치로 인해 항상 그 중요성을 차지했다. 역사적 과거에도 '개척국가'로 남아 있었다. 카슈가르의 존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슈가르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도시였다. 이곳은 중국과 중앙아시아 서부 중심부를 연결하는 대부분의 주요 통신로가 만나는 주요 지점에 위치해 있다. 고대에는 중앙아시아 동부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다. 수 세기 동안 카슈가르는 두 개의 위대한 문명 사이에서 중요한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인도와 중국. 도시로서 이 지역의 문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것은 타림 분지의 북부와 남부 지역에 불교 문화를 전파하거나 전달하는 데 기여했다. 초기 카슈가르 불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카슈가르 주민들이 인도 문화를 언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았다.

 

▲ 카슈가르의 모르(일명 굴뚝) 수투파(탑).  © CRS NEWS

 

그러나 카슈가르는 불교도들이 중국에 진출하는 주요 거점이자 최초의 진입 지점 중 하나이다. 4세기 훨씬 이전에 카슈가르에는 불교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한 장소의 문화경관은 그 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한다. 현재 카슈가르(카시)는 중국 신장 지역(위구르 자치구)에서 가장 중요한 주이다. 가장 가까운 국경은 키르기스스탄 공화국과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곳은 위구르 문화의 중심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 현재 와칸 회랑(Wakhan Corridor)의 극동 쪽 끝에 살고 있는 키르기스 유목민들은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도보나 야크를 타고 4일 동안 이동해야 한다.  © CRS NEWS

 

카슈가르는 불교의 확산과 다른 종교의 확산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불교가 왕국에 성행하던 시기에도 다문화 사회였다. 여기에는 조로아스터교도, 힌두교도, 기독교, 그리고 샤머니즘과 정령숭배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이 포함되었다. 카슈가르는 아마도 중앙아시아 최초의 불교 유적지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곳은 불교가 중국 투르키스탄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일반적으로 불교는 인도 북서부에서 카슈가르에 전래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지역에서 불교의 확산은 두 가지 경로를 따랐다. 박트리아에서 카슈가르, 그리고 더 동쪽으로 나아 갔으며, 인도 북서부와 카슈미르에서 호탄과 동투르키스탄 남부 오아시스까지 진출했을 것이다. 인도와 카슈가르 사이의 최단 경로는 인더스강 상류 계곡을 통과했다. 이 경로는 길기트 계곡을 휴경지로 삼아 두 경로가 만나는 타슈쿠르간(Tashkurghan)에 도달했다. 종교의 전파는 와칸 회랑(아프가니스탄)과 파미르를 거쳐 마지막으로 슐레(카슈가르)로 이어지는 고대 무역로를 따라 이루어졌다. 당연히 쿤제랍(Khunjerab) 고개를 통과했다.

 

카슈미르 출신의 비로자나(Vairocana)라는 저명한 승려가 기원전 1세기(기원전 73년경)에 이 지역에 왔다고 믿어진다. 그는 호탄 왕국과 슐레(카슈가르)에 불교를 전파했다. 이는 중국에 불교가 소개되기(한 왕조 5875)보다 100여 년 전의 일이다. 사실 불교는 슐레(카슈가르)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확산이 제한되었다. 초기에도 불경은 기록되지 않았다. 포교활동은 주로 승려 개인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구두(口頭)로 설교하곤 했다. 그래서 불교 승려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외워야 했다. 당장의 지지자는 없었다. 정해진 설교 장소도 없었다. 따라서 종교는 지역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차차로 불교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져 가고 있었다.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인도 불교 승가 대법회에 참석하고 있다.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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