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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산에 피어난 불교

보검 스님 | 기사입력 2024/08/12 [07:25]
카슈미르 불교 계승한 화엄경의 산실, 호탄

곤륜산에 피어난 불교

카슈미르 불교 계승한 화엄경의 산실, 호탄

보검 스님 | 입력 : 2024/08/12 [07:25]

지난해부터 어떻게 보면 다소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시리즈의 주제는 어떻게 불교가 인도에서부터 서역을 경유하여 중국에 정착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파된 불교를 수용한 한국불교의 원류를 추적, 현재의 한국불교를 분석 정리하면서 우리 불교를 되돌아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현재 한국불교가 어느 정도 인도의 원형불교에 접근하고 있으며 중국식 대승불교와 선불교가 얼마만큼 한국불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객관화하여 살펴보자는 것이다.

 

▲ 고대 호탄의 불교 여성 시주자 모습.  © CRS NEWS

 

이런 맥락에서 인도불교를 소개하고 불교가 어떻게 중앙아시아에서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타림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 오아시스 나라들에 전파되었는가를 추적해 오고 있다. 사막 오아시스 나라들의 관문이면서 교차점이었던 카슈가르에 대하여 일별하고 이제 호탄 불교를 리서치하고 있다. 호탄의 불교는 우리 한국불교에도 막연하게나마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것은 화엄경이 이 지역에서 성립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수많은 경전이 있는데, 한국불교에서는 화엄경은 대교(大敎)라고 하여 가장 수준 높은 불교 철학으로 인정하여 학습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호탄역사나 호탄 불교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것이 없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이곳 호탄을 방문한 적이 있다.

 

▲ 허텐(호탄)시의 거리 풍경.  © CRS NEWS

 

호탄의 불교는 이란의 호탄 왕국(불교 사카 왕국)과 중국 서부 및 타지키스탄의 많은 특징을 지닌 불교 종교 교리와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는 서기 1000년경 멸망할 때까지 호탄 왕국의 국교였다. 호탄의 지배적인 불교 학파는 마하상기카(Mahasāṃghika, 大衆部派) 였으며, 이 학파에서 대승(Mahayana) 학파와 바즈라야나(Vajrayana金剛) 학파가 발전하게 되었다. 고대 호탄에서는 일찍부터 불교를 내용으로 한 일종의 불교시집인 잠바스타서(Book of Zambasta)가 있다. 호탄어로 쓰여져 있다. 그리고 불교 경전으로는 상가타경(僧伽吒經)이 있다. 이 경은 이웃 국가인 특히 티베트의 불교 관습에 영향을 미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호탄은 타림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일종의 오아시스 타운이지만, 쿤룬산맥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산악과도 친숙해 있다. 

 

▲ 파미르고원에서 바라본 쿤룬산 최고봉인 쿤구르 산.  © CRS NEWS

 

지역 전설에 따르면 인도 황제 아소카 대왕의 아들 중 한 명인 쿠슈타나 마우리아가 불교 왕국의 수도였던 중앙아시아 도시 호탄을 세웠다고 한다. 같은 전설에 따르면, 아소카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땅이 여성의 가슴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땅에 의해 양육되었다. 인도 구법승 현장 삼장 법사와 티베트 기록에도 이와 같은 전설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현장 삼장에 의하면 바이로차나라는 이름의 카슈미르 불교 전법(선교)사가 호탄에 도착하여 불교를 수행했다. 숲속의 명상을 통해서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었다. 그는 호탄 사람들의 영적 스승이 되었고 호탄 최초의 불교 수도원(사원)을 설립했다. 그의 공헌은 당대 왕인 비자야삼바바에게 불교 개념을 소개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호탄 내에 비자야 왕조를 세웠고 궁극적으로 기원전 130년까지 불교 신앙이 공식 종교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 라왁 스투파 유적. 둔황의 막고굴 제17굴 장경동의 유물을 연구해 이를 유럽의 학계에 알려 '둔황학(敦煌學)'을 정립한 아우렐 스타인 경(1862년~1943년)이 촬영.  © CRS NEWS

 

한족 장군 반초(班超32102 CE)의 기록에 따르면 서기 73년 호탄 사람들은 여전히 ​​마즈다교(조로아스터)나 샤머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불교가 일찍 전파되었다고는 하지만, 동한(東漢)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 지역에 불교 미술이 없었던 것으로 봐서 다소 활발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 카슈가르에 있는 반초 장군의 동상.  © CRS NEWS


어느 정도 역사가 지난 다음의 이야기이지만, 번성하는 실크로드 무역 중심지인 호탄 왕국은 이웃 국가, 특히 고대 중국과 빠르게 무역, 외교, 종교 관계를 구축했다. 2세기에 중국 파견 사령관을 살해한 불운한 반란으로 인해 처음에는 호탄과 중국의 관계가 순조롭지 않았지만, 호탄인들은 서기 202년에서 222년 중국에 사신을 파견했다. 이로 인해 5세기와 6세기에 걸쳐 진 왕조와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후 호탄은 이웃 국가와의 관계로 인해 호탄의 문화와 불교에 대한 해석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유입됐다.

 

▲ 호탄 발와스테에서 출토된 바이로차나 벽화.  © CRS NEWS

 

실크로드에서 호탄은 카슈가르보다는 구법승들에게 매력을 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경전 번역은 이름이 나 있었으며, 왕국 내에 존재했던 사원은 화엄경, 금광명경등 대승의 고전 경전을 번역한 사본을 보유한 광대한 도서관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호탄인들은 완전히 토착적인 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더 중요한 컬렉션 중 일부는 번역된 작품이었고, 서구 세계에 유실되지 않았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보검스님이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수폭 금지 2024년 세계 대회에 참석하여 평화를 외치고 있다.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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