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자 아닌 천문도 스물여덟 별자리 따른 훈민정음 28자를 되살리자
현재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이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되어 있는 보배로운 글자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에 대한 각론연구도 필요한 때다.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천문도 내지 천부경과 관련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의 중성 순서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가 훈민정음의 중성 순서 •ㅡㅣㅗㅏㅜㅓㅛㅑㅠㅕ와 다르고, 현재는 초성 순서가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로 되어있다. 훈민정음의 초성순서인 ㄱㅋㆁ,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ㆆㅎㅇ, ㄹ,ㅿ(아음 木→설음 火→순음 土→치음 金→후음 水, 반설음, 반치음)와 다르다. 이는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를 근거한 ㄱㄴㄷㄹㅁㅂㅅㅇㅋㅌㅍㅈㅊㅿㆁㅎ(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을 따른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현재의 초성 중성, 자음 모음은 그 순서가 세종의 훈민정음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다시 그 순서를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28자 중에 현재 사용하지 않는 네 글자의 ‘•’는 아래아(깊은 아), ‘ㅿ’은 반치음 또는 반시옷(여린시읏), ‘ㆆ’은 된이응(여린히읗), ‘ ’ 은 옛이응(여린기윽)이라 하는데 한글연구가 반제원이 ‘옛이응’이 아닌 ‘여린기윽’임을 발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이 네 글자에 대한 첫소리 이름을 통일해 불러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은 초성, 중성 모두 천문도인 하도(河圖), 낙서(洛書)에서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우주천문 자연법칙에 따라 만든 글자이다. 천지인을 기본으로 창제된 이 훈민정음 문자는 인간을 비롯해 천지만물, 우주, 하늘의 소리와 하나님의 심정 까지 다 표현할 수 있는 글자다. 천부경은 천지인(• ㅡㅣ)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때문에 훈민정음을 천부경과 관련하여 그 창제원리를 연구하는 작업도 시도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훈민정음이 28자로 만들어진 것은 천문도의 스물여덟 별자리를 따른 것이라고 했다. 탁월한 천문지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음운학자인 세종으로서 그것이 훈민정음 창제에도 이론적인 바탕이 되었으리라 본다. 자음, 모음이 과학적 철학적인 글자이다. 그런데 왜 넉자(•ㆆㅿㆁ)를 뺀 24자만 사용하게 되었는가. 그 연유가 무엇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치고 있거나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사실상 의도적으로 뺀 네 글자의 음가를 되살리고 이 네 글자를 모두 사용해야 보다 정확하게 제 소리를 내고, 또 제대로 적을 수 있다고 본다.
이 넉자가 뚜렷이 사라진 것은 일제시대부터였다. 우리 말과 글을 말살시키는 것도 그들 식민정책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네 글자를 복원해 사용할 때 외래어도 보다 정확한 표기가 가능할 것이다. 차제에 이에따른 기능성 한글자판기 연구개발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단기고사(檀奇古史)』(발해. 대야발 저)에 의하면 단군조선 제3세 가륵단군이 “박사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국문 정음(正音)을 정선(精選)하다.(白岳 馬韓村에 古碑文이 있다)”라고 했고, 고려 때 행촌 이암(李嵒. 공민왕 12년, 서기 1363년)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같은 기록을 전하고 있는데 특히 정음 38자에 대한 글자 모양(가림토문<加臨土文>)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특히 모음 11자를 포함해 이 38자는 세종의 훈민정음 28자와 모양이 같고 오히려 세종 때에 10자를 줄인 것 같다. 이는 천문도의 28 별자리의 이치에 맞추려는 데에 의미를 둔 것은 아닌가.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이나 『동국정운(東國正韻)』 등에서 보듯이 그 창제원리를 명확히 밝힌 글자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세종이야 말로 최고의 음운학자라 할 것이다.
정통(正統) 3년(1435년)에 신미대사가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를 훈민정음으로 풀이해 간행했는데 이는 세종의 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보다 이미 8년 전이된다. 신미대사는 1462년 『능엄경언해』(세조 5년), 1477년 『법어록』을 언해 했는데 이것이 『훈민정음해례본』 『동국정운』 등과 훈민정음 글자가 일치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당시 신미대사는 정음청 도감이었다. 궁중에서 출간되는 모든 책을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문종이나 수양·안평대군도 신미대사와 사제관계였으며, 세종의 딸 정의 공주의 부군 안맹담도 그에게서 공부했다.
아무튼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극찬하는 우리 한글을 더욱 다듬고 빛내는 일에 우리 모두가 긍지를 가지고 힘써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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