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의 영혼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작별식”
「안장식을 거행하는 마지막 이별 장면이 보입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먼 길을 떠나는 저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어요.
슬픔의 무게가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소중히 생각하셨으면,
어머니는 온 몸을 비틀며 소리 없는 통곡을 하셨지요.
슬픔을 달래 주던 사람들마저 눈물이 바다를 이루네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혼자 떠나게 된 다는 건
참으로 외로운 길입니다.
하지만 병사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인 현충원에서
평온하게 잠들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행복합니다.」
로타리안은 서울 현충원을 방문하여 묘역 정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백여 명의 회원들은 묘비에 묻어 있는 먼지도 털어주고, 이물질도 깨끗하게 닦아준다. 화병에 무궁화 꽃도 꽂아주고 묘비 옆에 태극기도 꽂아준다. 옛적 궁궐처럼 웅장한 현충문에 들어서니 중앙에 현충탑이 서 있다. 현충탑 안에는 무명용사들의 위패와 납골당이 자리하고 있다. 분향소 앞에는 순국선열,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드리고 있자니 헤아릴 수 없는 감사함과 그들이 절규했던 고통의 끝이 느껴져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바뀐 듯. 묘비가 양 옆으로 줄지어 서 있는 샛길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개울물이 흐르는 살곶이 다리를 지나 정화할 묘역에 다다르니 끝없이 펼쳐진 국가유공자, 애국지사, 장군, 사병 묘역이 정한 신분에 맞게 질서 정연하게 잠들어 있다. 회원들이 정화할 묘역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귀한 생명을 펴보지도 못한 채 순직한 젊은 병사들이 안장된 묘역이다. 안내문에는 묘역에 잠들어 있는 전사자들의 업적을 소상히 기록해 놓았다.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1952년 중부전선인 김화(철원군) 지역에서 국군 보병 사단이 북한군 지원병으로 온 중공군에 맞서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 진지를 빼앗기 위한 공방전이 있었다. 이 전투는 산 전체가 쑥대밭이 될 정도로 치열했다. 적군은 아군 진영에 포탄과 폭탄을 쏘아대며 맹공격을 퍼부었고 나날이 시체가 겹겹이 쌓여갔다 산봉우리는 무너져 완만한 능선이 되었고 나무와 풀꽃들은 시커멓게 녹아 내렸다. 폭탄이 투하되었던 장소는 큰 구덩이들이 군데군데 파헤쳐져 흉물스럽게 변하였다. 우리 군인은 16개 포병대대의 폭격 지원과 함께 시작한 공격이 6주간 공방전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철의 삼각지대인 김화 저격능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
남·북 휴전 후, 정부는 전투에 참여해서 작렬하게 전사한 병사들의 유해를 찾아내기 위해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유해 발굴단을 조직하여 치열했던 전투 지역으로 병사들의 유해를 찾아 나선 것이다. 바위 덩어리나 소나무에는 포탄과 총탄으로 인한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대를 샅샅이 수색한 결과 이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유해들이 발견되었다. 현충원으로 모셔와 비석에는 전사한 장소와 발견한 년·월·일을 기록해 안장하고 넋을 위로해 주고 있다.
묘지 앞에 앉아 태극기를 꽂아 주다 병사의 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가족들은 안 일병의 군복무 중에 일어난 사고의 진상과 추모의 글도 함께 적어 놓았다. 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길 원했으나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해군에 지원 입대하였다. 진해 해군 훈련소에서 훈련 중 통영 충렬사 참배 일정을 마치고 예인선을 타고 귀환 중 충무항 해상에서 거센 파도의 힘에 선체가 복원력을 잃고 전복되었고 예인선은 침몰하였다.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 폭풍 주의보 발령 상태라 오전 11시경 임에도 불구하고 해상이 어둡고 높은 파도에 구조가 힘들었다. 스무 살의 청년들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이 조난 사고로 해군 동기생 백여명이 순직하여 이 묘역에 다 같이 잠들어 있다는 피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아들 권 일병을 향한 어머니의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
0 0 아!
보고 싶구나
너의 모습이...
듣고 싶구나
너의 그 목소리…
잘 자라
사랑하는
내 아들 (권 일병 묘비의 글)
“가족들이 김 일병의 명복을 빌며 새겨 놓은 추도문”
장한 너의 기개여!
넌 비록 갔지만
물려받을 후대가 있지 않느냐
서러워를 말렴
광풍이 몰아치던 그날
몸서리나는 비보가…
오열을 삼키며
널 보내야만 했구나.
하늘에 계신 아빠시여
가시는 길 환히 밝혀주옵소서.
고인이시여
못다한 말일랑 접어두고
고이고이 잠드소서. (김 일병 묘비의 글)
“언제나 함께 사는 가족이 이 일병에게 보내는 위로의 글”
추 도
조국 위해 꽃다움 바쳐
유유한 창공 면면한 강물
누워 지킴은 우리 가슴에
한을 남겼어도
너희 죽음이 헛될 수 없다는
그 젊은
자랑 때문이리라. (이 일병 묘비의 글)
[그대들이 여기에 있기에 조국도 영원히 있다]
소중한 생명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숨진 영령들이여!
조국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울 때
그대들은 조국을 위해 죽음으로 조국애를 꽃피우고
저 멀리 아득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그대들의 소중한 목숨을 조국에 바쳤지요.
병사들이여!
그대들이 못다 이룬 평화는 지금에 살고 있는
후손들이 그대들의 몫까지 지켜나갈 것이며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이룩하여
이제는 전쟁으로 죽어가는 병사들이
없도록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조국을 위해 숨진 호국 영령들이여!
그대들은 아직도 어지러운 세상을 맴돌며
상심에 젖은 영혼은 또 얼마나 곤고하십니까?
바램은 이제는 아픔의 기억을 잊으시고
이곳 천국에서 안락하게 정착하길 바랍니다.
아울러 현충원에서 영원을 누리며 대한민국의
안녕과 평안을 지켜주길 손 모아 부탁드립니다. (박현선)
로타리안 회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용맹했던 호국영령들 묘역 앞에 서서, 사는 동안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순직한 병사들의 묘지를 정갈하게 단장해 주고 태극기를 꽂아주며 목숨을 바쳐가면서 이 대한민국을 지켜낸 충성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국가를 지켜낸 전쟁 용사들의 비석에는 이름 석 자가 적혀 있는 병사들도 있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무연고 병사의 묘비도 비바람을 맞고 꿋꿋이 서 있다. 대한민국을 영원히 지켜주며 솟대처럼 박혀 있는 호국영령의 비석. 우리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을 지켜준 ‘평화의 사도’라고 칭한다. 하얀 솟대들은 광풍의 바람에도 꼿꼿하다. 발걸음 옮기는 곳마다 무궁화 꽃이 피어나고 태극기가 펄럭인다. 서러운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호국 영령들. 피를 받쳐 조국을 지켜야만 했던 병사들이 부르는 군가에는 승리를 위한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 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전우야 잘 있거라)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