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백여 명과 회원 백여 명은 과천 서울랜드에 모여 서로 짝을 이룬다. 회원들은 마음을 통해서 세상을 볼 수 있게 그들과 식사도 같이 하고 놀이기구도 함께 타며 사랑의 수고를 선물해 준다. 지역 발전을 위한 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 위원이나 중증 장애인 목욕 봉사, 소외된 이웃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참여하는 성격이지만 시각장애인과 놀이기구를 타면서 배려의 행동과 사랑을 몸소 실천해야 하는 강한 이유 때문에 살짝 긴장도 된다. 짝이 된 시각장애인에게 미리 연락을 해 두고 당일 집결 장소인 대공원역 2번 출구 앞에서 오전 9시에서 9시 30분 사이에 상대자를 맞이한다.
“고 선생님! 봉사를 맡은 박현선이에요. 오고 계시는 거죠?” “아, 네, 전철로 가고 있는데, 20분 후 도착입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2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기다릴게요.” “전, 노란색 재킷을 입었고 청바지 차림이에요.” “하하하……, 시각 장애인이라 볼 수가 없습니다.” “저를 찾는 게 더 빠를 걸요. 챙 달린 모자를 쓰고 흰 지팡이에 배낭을 멨어요.” 화들짝 놀란 나는, “어머! 죄송해요. 앞이 안 보이신다는 걸 깜빡 했어요.”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그는 흰 지팡이를 든 손끝에서부터 어둠이 회복되지 못하는 눈을 이끌고 서울랜드로 지하철을 타고 도착했다. 육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소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였다. “고 선생님! 반갑습니다. 봉사자가 동성끼리 매칭되는데 제가 여성이라…, 괜찮겠어요?” “네, 저는 여성 봉사자가 더 좋은데요. 제가 현선씨 팔 쪽을 잡고 다니면 됩니다.” “로타리안에서 제공하는 생수를 챙겨 왔어요. 드릴까요?” “전, 괜찮습니다. 화장실 문제 때문에 물은 잘 안 마십니다.” “그래도, 제가 한 병 가져갈게요.”
고 선생은 마음이 편했는지 시력을 잃게 된 사연이나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의 일들을 주저하지 않고 들려주었다. 그는 20년 전 양쪽 눈이 습성 황반 변성으로 망막이 손상되어 점점 시력이 저하되더니 지금은 형체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선글라스를 바꿔 끼면서 더 이상 진행이 안되게 예방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한다.
시력을 잃게 된 처절했던 과거는 그가 비즈니스를 하면서 겪었던 생활과 무관하지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해외를 넘나들며 개인사업을 했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시력을 잃게 된 것이 끊임없는 술 접대가 원인인지, 아니면 유전적인원인인지 모르겠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시각장애인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 길은 아니라고 부르짖어 보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마음에 번번이 생채기만 남겼다.
어둠 속에서 그리운 빛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어도 세상을 볼 수가 없고, 상심한 마음은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었다. 눈에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보이게 되자 병원을 찾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애썼다고 한다. 어떤 때는 공포와 슬픔에 눈물로 밤을 지세우기도 하고 혹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단다. 위로의 말을 들을 때는 희망으로 가득 찼다가도 어느 순간 세상이 무너질 듯 절망감에 빠지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고 선생은, “실명을 눈앞에 둔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은 닦고 또 닦아도 멈추지 않았어요!” 다행스럽게도 가족들이 괴롭고 힘들었던 순간마다 그를 지탱해준 든든한 버팀목이자 마음의 빛이 되어 주었다며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어떻게 살아낼 용기를 얻고 계시냐고 여쭤보니, “특별한 건 없고 모든 일에 집중하며 정성을 쏟고 있어요. 간혹 이런 사람들이요, 스트레스를 물리치기 위하여 마약이나 술, 담배로 자신의 건강을 홀대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건강은 공기와 같아서 한번 잃고 나면 회복하기가 힘들거든요. 저는 좀 느리긴 하지만 점자책으로 독서도 하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신문 스크랩을 해서 읽어 달래기도 하면서 세상살이에 관심을 갖으며 살아내고 있지요. 또한 가까운 사람들과 간단한 기구를 활용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며 명상을 즐기기도 하고요.”
기업인, 각 분야의 예술인, 사업가, 문학인, 법조인, 전문직 종사자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어김없이 봉사 활동을 위해 한 곳에 모여 그들의 손이 필요한 이들에게 마음을 따뜻하게 해드리면서 재미있게 즐기도록 정성을 다한다. 그는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도 따가운 햇살이 싫지 않은 듯, 마치 부모와 나들이 나온 어린아이처럼 연신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다. 봉사자와 시각장애인 200여 명은 두 사람씩 사이좋게 팔을 끼고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서울랜드에 입장했다. 지금부터 이곳에 집중하며 마음껏 놀이기구도 타고 즐기는 정신 치유시간이 주어진다.
“고 선생님! 놀이기구 타는 거 좋아하세요?” “그럼요~저, 놀이기구 타기 위해서 참석했어요.” “어쩌나, 전, 겁이 많아 놀이기구는 못 타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랑 같이 타잖아요.”
놀이기구가 윙윙 거리며 360도 회전을 한다. ‘으아악’ 소리를 질러대는 아우성 소리가 들려온다. ‘도깨비 바람’이라는 놀이기구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쫄깃해진다. 2인 1조로 봉사자와 시각장애인이 동승해서 타야 한다. 그는 은근히 무섭고 짜릿한 쾌감을 기대하는 눈치다. 눈이 건강하던 시절. 어린이날이 돌아오면 가족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놀러와 개선장군처럼 인산인해의 인파를 뚫고 아이들에게 놀이기구를 태워주고 나서,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오순도순 모여앉아 아내가 준비한 김밥에 톡 쏘는 사이다, 과자를 먹던 달콤했던 기억들을 회상하는 건지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현선씨! 이번에는 ‘급류타기’에 도전해 볼까요?” “무섭지 않나요?” “타 본적이 있는데 스릴 있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사람의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곳에서 원시적인 배를 타고 트레킹을 즐긴다고 생각해 보세요. 배 옆에는 어울려 몰려다니는 예쁜 열대어가 한가로이 노니는 곳이라고 상상하며 우리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보트는 물길 따라 유유히 지나가다 터널을 지난 후 꼭대기 지점에 이르러 멈출 때는 침을 꼴깍 삼키고 코로 바람을 내뿜으며 긴장하게 만든다. 쏜살같이 내달리는 보트에서는 폭포 같은 웃음소리가 연신 터져 나온다.
로타리안 회원들은 시각장애인들과 봉사도 이벤트와 같은 축제처럼 즐긴다.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놀이기구를 함께 타면서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해산 과정에서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더러워진 거리를 직접 치우는 환경미화에도 모범을 보인다. 이 소중한 기억은 작은 봉사로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뭔가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어느 풍족한 방법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온정을 그들 마음에 가득 채워 줄 수 있으니까.
봉사자들은 누군가를 위해서 봉사를 제공하는 일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열의를 다한다. 가슴속에만 담아둔 사랑은 결코 참된 사랑이 아니며,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때만이 그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기에…. “그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행동으로 심어주세요. 그러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그들과 같이 누릴 수 있게 될 거예요.”
다음날, “고 선생님! 어제 봉사자로 첫 발을 내 딛는 시간이었는데 인생에 힘이 되어주는 말씀도 해 주시고 자혜로운 마음으로 리드해 주셔서 색다른 기쁨으로 다가왔어요. 놀이기구도 같이 타며 즐기니까, 머리에 쌓였던 찌꺼기가 확 날아가는 게, 외려 제가 힐링이 되었어요.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시지만, ‘도깨비 바람’ 타실 때 너무도 행복해 하셔서 몇 장 찍은 거 보내드려요. 손자들에게 보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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