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찬린의 ‘선고[僊(仙)攷’-風流道(풍류도)와 甑山思想(증산사상)
풍류도는 천하의 신기(神器)요 대기(大器)이므로 모든 종교를 포용변찬린의 ‘선고[僊(仙)攷’-風流道(풍류도)와 甑山思想(증산사상)
<연재순서> 종교의 본질 2. 선[僊(仙)의 본의 3. 풍류도(風流道)에 대한 재고찰 4. 풍류도에로의 회귀 ─ 원시반본(原始返本)
종교 본원(本源)의 자리인 풍류도의 입장에서 보면 유불선[儒佛仙(道敎)]은 열교(裂敎)요 아류임을 알았다.
증산이 삼교를 초월한 자리에서 새 날의 선경(仙境)을 개벽하려함도 그 심성이 풍류도의 심성임을 알았다. 참 단군의 혈손(血孫)이요 풍교(風敎)의 얼이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외래종교인 유불선에 정신을 빼앗기는 못난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증산은 순조선(純朝鮮)사람이었다.
증산의 다음 말을 음미해보자.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시속((時俗)에 남조선(南朝鮮)사람이라 이르나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란 말이다. 동서(東西) 각교파(各敎派)에 빼앗기고 남은 뭇사람에게 길운(吉運)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리치라 하시니라」 (大巡典經, p.121)
<남은 조선사람>은 유불선에 도취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바로 풍류도의 혼(魂)을 이르는 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참 도(道)는 선(僊)밖에 없다. 유불선은 잘못된 선천(先天)에서 발생한 비본래적 종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후천선경이 개벽되면 유불선을 초극하여 대도인 선(僊)만이 조조(照照)히 빛날 것이다. 후천이 오면 모든 종교는 그 뿌리인 풍류도로 회귀할 것이다. 이것이 참 의미의 원시반본(原始反本)이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기 전까지는 강의 이름이 있다. 한강, 낙동강, 금강 따위. 그러나 바다로 흘러가 일미(一味)가 되면 강의 이름은 무의미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각종 종교는 인류가 진보하는 도상에 있을 때에는 유불선의 이름이 있었으나 풍류도의 바다에 이르면 다 함께 무명(無名)의 자리에 돌아갈 것이다. 풍류도는 천하의 신기(神器)요 대기(大器)이므로 모든 종교를 포용할 것이다. 이것이 도(道)의 원시반본(原始反本)인 것이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江海所以能爲白谷王者(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以其善下之(이기선하지) 故能爲白谷王(고능위백곡왕>(老子, 第8章)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은 그 몸을 낮은 곳에 두기 때문에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된다)
<上善若水(상선약수)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악) 故幾於道(고기어도)>(老子, 第41章) (지극히 착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 이 꺼리는 곳에 있나니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풍류(風流)의 하늘을 개천하여 선(僊)의 대도를 이룬 단군의 후손들이 이 날까지 무교(巫敎)의 옷을 입고 온갖 외래종교의 하수구 노릇을 했고 바다처럼 낮은 자리에 처하여 온갖 고난과 시련을 반만년 동안 받아왔다. 그러나 낮은 자리에 처한 하수구와 바다가 모든 강물을 포용하듯 고난 속에서 연단된 백의민족이 선(僊)의 대도로서 인류를 구원할 빛을 발할 것이다.
증산이 이상했던 대도도 선(僊)이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법언(法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나의 일은 여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 동빈(洞賓)이 인간에게 인연이 있는 자를 가려서 장생술(長生術)을 전하려고 빗장사로 변장하여 거리에서 외쳐 가로되 이 빗으로 빗으면 흰 머리가 검어지고 굽은 허리가 펴지고 쇠한 기력이 강장(强壯)해지고 늙은 얼굴이 젊어지나니 이 빗값이 천냥이로다 하거늘 듣는 사람이 모다 허턴(虛誕)하게 생각하야 믿지 아니하니 동빈(洞賓)이 한 노파에게 시험함에 과연(果然) 말한 바와 같은지라 모든 사람이 그제야 다투어 모여드니 동빈(洞賓)이 드디어 승천하니라>(大巡典經, p.167)
비록 상극(相克)인 선천세계(先天世界)에서는 선(僊)의 길을 개명(開明)하지 못하고 죽었으나 후천(後天)이 열리면 풍류도는 모든 인간의 가슴 속에 선맥(僊脈)을 연결시켜 줄 것이다.
증산은 자신을 미륵(彌勒)의 화신으로 생각했는데 이 미륵이 펴실 도가 곧 선(僊)인 것이다. 삼국유사 미시랑전(未尸郞傳)을 보면 <미시(未尸)>는 미륵불(彌勒佛)의 은어(隱語)였다.
왜 미륵을 미시(未尸)라고 은어화(隱語化)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숨어있다. 첫째는 미시(未尸)는 문자 그대로 시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선화(僊化)의 도는 시신을 남기지 않으므로 미시(未尸이다. 그러므로 이 미시(未尸)라는 이름 속에는 선(僊)의 비의(秘義)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석가불은 불도(佛道)를 펴서 인간을 제도했지만 그의 도는 선(僊)이 아니었다. 제악(諸惡)을 멀리하고 제선(諸善)을 행하기 위한 방편의 도였다. 미륵불이 출현해야만 선(僊)의 대도를 열어 모든 사람을 장생불사(長生不死) 시키므로 그의 이름을 <미시(未尸)>라 은어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 보면 미륵불은 용화수(龍華樹) 나무 아래서 성도(成道)하므로 미륵이 출세하는 때를 용화세계(龍華世界)라 했다. 둘째는 미시(未尸)의 시(尸)자는 이두(吏讀)에 <리>음으로 발음되므로 미시(未尸)는 곧 <미리>이다. 이 미리는 용(龍)의 고어(古語)이다. 용(龍)을 미리라 한다. 그러므로 미리(未尸)는 용(龍)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미륵으로 자처한 증산도 미리(未尸)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불교는 예로부터 미래불인 미륵불신앙이 이 유달리 깊었다. 더구나 민중의 가슴 깊이 미륵을 사모하는 신앙이 깊었다. 그 원인은 잃어버린 선(僊)의 자취를 미륵불에서 찾아보려는 도적향수(道的鄕愁)였을 것이다. 신라의 승(僧) 眞慈(진자)가 發願(발원)하여 彌勒(미륵)은 잠시 未尸郞)으로 現身(현신)하여 花郞(화랑)의 우두머리로 있다 홀연히 바람처럼 그 자취를 감추었다. 이 미시랑(未尸郞)이야말로 선(僊)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석가불이 인간제도(人間濟度)의 길을 완성했다면 미륵불이 출세할 필요가 없다. 미륵이 출세한다는 뜻은 곧 지난날의 불교가 낡았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륵불이야말로 본래의 도인 풍류(風流)의 길잡이로 후천용화세계(後天龍華世界)에 또 나타날 것이다.
선(僊)에의 회귀──이것이 원시반본(原始反本)인 것이다.
결어-낡은 종교, 낡은 도덕, 낡은윤리, 낡은 가치관 탈출해 대도의 하늘 개천하자
선(僊)에 대한 고증은 문헌과 사료가 전무한 상태이므로 그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다, 선(僊)은 황무지와 같은 상태에서 폐기되어 온갖 잡초가 무성하다. 이 졸고가 선(僊)의 황무지에서 무성한 잡초를 뽑는 작업을 시도해 보았다. 잃어버린 대도를 향해 희미한 오솔길이라도 뚫고 싶었다. 필자가 지은 졸시 <송화(松花)가루처럼>을 읊어 맺는 말에 대신하고자 한다. 이 시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소재로 하였다.
푸른 하늘을 나는 송화(松花) 가루처럼 이 육신(肉身)을 흩어 미세한 원소(元素)의 꽃으로 쯤뿍 허공(虛空)에 뿌리자 푸르스름한 산(山)바람에 풀어져
내 숨결 현묘(玄妙)한 풍류체(風流體)가 되면 넘실거리는 송도(松濤)에 실려 투명하게 기화(氣化)한 내 영(靈)은 어디로 몰입(沒入)될까?
곡신(谷神)이여 하늘과 땅 사이에 구멍을 뚫어 놓고 바람을 풍겨내어 탁약(橐籥)의 피리를 부는가
갈매빛 청산(靑山)허리에 한줌 꽃가루를 날리고 이내(嵐)에 파묻혀 나는 종적(蹤迹)을 감추리
끝으로 한가지 부언해 둘 것은 잃어버린 대도인 풍류도는 천하의 신기(神器)이므로 이 날까지 유불선의 개념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허황한 말로 들릴지 모른다. 신선(神仙)이라면 신화(神話) 속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사고능력으로는 선(僊) 개념이 이해될 지 의문이다. 인간은 대도를 상실했으므로 신선(神仙)의 존재도 신화적(神話的)인 존재로 착각하고 있다.
이는 법화경 속에 나오는 궁자(窮子)의 비유와 같다. 어려서 부모를 떠난 장자(長子)가 외지에서 고생 끝에 제 본성을 잃고 거지가 되어 본가로 돌아오나 자기가 본래 이 집의 장자(長子)임을 잊고 종이 되어 일하면서 잃어버린 본성을 회복하여 부모를 찾음과 같이 인간도 본래는 선적존재(僊的存在)였으나 타락과 무명으로 인하여 제 본성을 잃어버리고 죽어서 영혼이나 천당 극락 가는 것이 당연한 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여 선(僊)의 길이 본래의 상도(常道)임을 깨닫자.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笑不足以爲道> (으뜸가는 선비는 도를 듣고 힘써 실천하며 중간선비는 도를 듣고도 있고 없음을 의심하며 아래 선비는 도를 듣고 크게 웃나니 그가 비웃지 아니하면 도라할 수 없다,)
이 말씀처럼 하사(下士)들은 선(僊)에 대하여 크게 비웃을 것이다. 대도인 풍류도를 유불선의 억압 속에 매달린 하사(下士)들이 어찌 알 것인가? 낡은 종교, 낡은 도덕, 낡은윤리, 낡은 가치관에서 탈출하여 대도의 하늘을 개천하여 선(僊)의 성일(聖日)을 맞이하자.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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