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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작가, '물방아골의 전설'

박현선 | 기사입력 2024/12/23 [14:52]

박현선 작가, '물방아골의 전설'

박현선 | 입력 : 2024/12/23 [14:52]

▲ 영장산 밑 임야에 있는 소나무 훼손 현장  © CRS NEWS


「세월도 잊은 채 외롭게 서서

영장산을 지키는 나무들이여

그대들의 벌거벗은 몸뚱어리는

엔진톱에 잘려져 얼음장이 되었네

 

허망하게 도시의 한 구석에서

밑동이 잘려진 채 모로 누운 나무들

깊은 주름에 붙어 있는 죽음의 표시

검은색 숫자는 사슬처럼 이어져

수백 그루 몸뚱어리 묶어놓았네

 

엔진톱 소리에 섞인 노송(老松)의 비명소리

다리와 날개가 있어서 움직일 수 있다면

톱날의 고통도 칼날의 상처도 받지 않으리

고요가 자리한 그 때가 언제였던가

바람타고 훨훨 날아가고 싶구나

 

▲ 아름드리 소나무 훼손은 환경 위협  © CRS NEWS

 

영장산 밑 야산에 서식하는 소나무들은 군데군데 300년 넘게 산 나무도 있다. 이 곳에는 추위를 잘 견디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소나무가 많고 상록수, 가문비나무, 참나무, 잣나무, 뽕나무, 밤나무 등이 있다. 상수리나무도 많아 청설모가 가을엔 유난히 바쁘다. 겨울에도 영장산은 따사롭다. 언제나 사람을 반기는 느낌을 준다. 등산로에 들어서니 잡생각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상쾌함에 젖어 나도 나무들만큼이나 마음껏 호흡해 본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금속성 굉음이 마치 산을 집어삼킬 듯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어제 오후부터 들리곤 하였다. 엔진톱으로 나무를 베는 소리다. 야산에서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올라가보니 낯선이들이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야산 주변 나무를 제거하고자 살육하듯 소나무를 베어 제겼다. 소나무들의 신음 소리가 동네 골목에 흘러넘치는 충격을 받았다.

 

▲ 야산에 있는 소나무 훼손 현장  © CRS NEWS

 

3백 년 전, 이 지역은 물방아 골이라는 지명이 붙어있고 안말과 같이 작은 능선을 놓고 두 곳의 마을이 있었다. 이매동은 풍수상 매화낙지혈이라고 해서 매화꽃이 떨어지면 매실이 열리듯이 사람들의 집집마다 가문에 영광이 찾아든다는 명당혈처이다. 그 시절, 영장산의 마을 물방아골에 살던 이무기가 훼방꾼에 의해 승천을 못 하여 마을에는 불운이 닥쳤다. 물방아골에 살던 원주민들은 이무기 위령제를 지내주면서 액운을 풀었다. 매년 음력 93일이면 마을 전통 풍습으로 산치성의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전설이 있는 곳에서 이런 참극이 벌어지다니, 베어진 소나무들은 서로 뒤엉켜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잘려져 웅크리고 있었다. 밑동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나뭇가지 사이로 무언가 흘러내렸다. 강력한 엔진톱의 입김이 칼부림으로 변하여 소나무에 피비린내를 뿜게 한 것이다.

 

▲ 임야에 있는 소나무 훼손 현장  © CRS NEWS

 

그들은 임목벌채 허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으며 수령이 오래된 고목들을 불법으로 훼손하고 있었다. 임야 소유주가 수목 벌채를 하려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개인이 소유한 임야더라도 수목을 환경과 연계해 공공성이 강한 자산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에 흰 표시를 부착해 검은색으로 번호를 써 논 것이 보였다. 불법으로 야산에 있는 나무를 전부 벌채하려는 계획은 아닐까(?)

 

몇 년 전에도 야산에 엔진톱으로 나무를 통째로 베는 사람들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잘린 밑동을 보니 수십 년 동안 땅의 양분과 물을 끌어들인 듯 나이테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한 사람은 우람한 나무를 자른 후 통째로 눕혀서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불법으로 나무를 자르면 형사 처분 대상이 될 수 있고 훼손된 나무를 원상 복구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 임야에 있는 수목 벌채로 산림을 훼손함  © CRS NEWS

 

태풍이나 장마 때는 나무들이 버팀목이 되어 마을을 보호해 주고 있는데 마구 베어내면 물과 토사가 떠밀려와 주택을 덮치는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때 근심스러워 장화를 신고 야산에 올라가 보았다. 아름드리 고목만 30여 그루 잘려있었다. 몸뚱어리가 잘려나간 나무들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죽은 짐승의 뼈가 흩어져있는 모습으로 바싹 마른 나뭇가지들. 사람들에게는 나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생물에게는 생존과 직결될 수도 있을 텐데. 나무들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생물은 안식처를 잃었다.

 

몇 백 년을 건재하며 이 마을을 지켜주던 수호신 같은 나무들이 위기를 맞아 죽음으로 내 몰렸다. 잘려진 나무들은 이 야산에서 널브러져 썩어 갈 것이다. 누군가 이 야산의 수백 그루 나무들을 전부 베어 양심 없는 개발로 부()를 누리려 하고 있다. 이제 이 넓고 넓은 야산에 있는 나무들은 장구한 시간을 살았으나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몸뚱어리가 잘려져 거대한 몸을 눕히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무들의 울부짖음은 우레가 되고 썩은 나무들은 처치곤란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이제 인간의 사적 욕망으로 이 곳에는 하늘에 나는 새도 볼 수 없고 땅에 다니는 야생 동물도 살 수 없으며 기후의 변덕이 있으면 살인적인 태풍으로 주민들의 안락한 평화는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 임야에 있는 수목에 흰 표시를 부착하고 검은색으로 일련번호를 기입 © CRS NEWS

 

낯선이들은 무차별 사격을 퍼붓듯이 겨울 햇볕을 쬐고 있는 소나무들을 가차없이 기계톱으로 총공격을 하고 쓰러뜨렸다. 옹골진 소나무들은 모진 풍상을 그대로 부등켜 안고 살아온 듯 조금은 삐딱한 형상이었다. 중간에는 옹이들이 깊숙이 틀어 박혀 있었다.

 

그들은 기계톱을 오른손에 들고 다른 사람과 같이 자른 소나무를 토막치고 있었다. 험상궂은 괴물이 인간의 다리를 잡고 훼손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이 장면이 계속 재현된다고 생각하니 괴기영화보다 더 두렵다. 하지만 하늘이 무심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설령 인간세계에서 법의 그물은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드라망처럼 촘촘히 짜인 하늘의 심판망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큰 몫을 다한 나무들이여!

보란 듯이 당당하게

꿋꿋이 견뎌내고

굳은 의지로

용기를 내거라

살고 싶다고

하늘에 대고 외쳐라!”

 

나무의 시린 가지 끝에 누런 눈물이 고인다. 깊은 칼날에 의해 핏기를 잃어가고

살점을 찢기 우는 나무들의 몸부림. 인간의 부()의 욕심 또한 부질없는 망념(忘念)인 것을.

 

다음날,

누군가 수목 벌채 현장을 신고하였는지 영장산 밑 야산에는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평화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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