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이테(연륜)는 쌓이는게 아니라 쌓는 것이다
하늘소풍길 단상●설날에 생각해보는 사람의 나이테(1)
▲ 설날이 되면 신년 새해로 바뀌는 것보다 한 살 먹는 느낌이 더 하다. ‘만 나이’ 통일로 법제화했지만 ‘세는 나이’라는 전통과 문화에 젖어온 탓이다. 지난해 만 나이로 아직 70이 안됐으나 세는 나이로 7순, 고희(古稀) 행사를 치루며 나이를 실감했었다. 올해는 만 나이로 행세하니 70살 한해를 덤으로 얻는 셈이지만 설날이 되니 다시 세는 나이 71살을 떠 올린다.
나이테로 확실히 ‘만 나이’를 드러내는 나무와 다르게 사람의 나이테는 가늠할 수가 없다. 중국어로 나이테를 연륜(年輪)이라고 한다. 우리말에서는 나무는 ‘나이테’, 사람‘에겐 ‘연륜을 사용하는데 훨씬 세밀하고 정확한 단어 구사이다. 나무 나이테는 자르면 볼 수 있지만 사람의 연륜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공자는 사람의 나이테를 열다섯부터 칠십까지 구분한 바 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라 칭한다.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고, 마흔 살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뚫려 한번 들으면 곧 그 이치를 알았고 일흔 살에는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論語 ’爲政‘)
공자는 사람의 나이테가 기껏해야 70까지 기록되는 것으로 판단한 거 같다. 그 역시 만 72살에 세상을 떠났다.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고 읊어 ’고희(古稀)란 단어를 유행시킨 당나라 시성 두보는 59세까지 살았다.
수명은 날로 늘어나 공자의 ‘사람 나이테’ 구분법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서른까지 공부하고, 마흔에도 부모에 의존해 사는 캥거루족이 많아졌으며 ‘지천명’ ‘이순’ ‘종심’은 천년을 살아도 이루기 힘든 경지일게다.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약 4850년 된 메투셀라 (Methuselah)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ns)에 있는데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할아버지‘므두셀라’의 이름을 빌렸다. 그는 969살 까지 살았다고 기록됐는데 가장 오래 산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웨덴의 올드 티코(Old Tjikko)는 9,500년 동안 같은 뿌리를 사용하며 새로운 줄기를 재생성하는 복제생장방식으로 생존해왔다. 한때 기독교인들은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족보와 그 생을 계산하면서 인류와 지구의 역사가 6000년이라고 믿어왔는데 그보다 더 오래산 나무이다. 이런 나무들은 단순히 오래된 존재를 넘어, 자연의 비밀과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한다. 한 자리를 지키며 상상하기도 힘든 환경 변화와 인간의 역사를 겪어온 나무들의 연륜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태평스런 나무의 속살에도 지나간 시간들이 파편처럼 박혀 있다 공으로 건너갈 길이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이우걸 시집 ‘아직도 거기 있다’ 중 ‘나이테’>
▲ 나무의 나이테가 공(空)으로 생긴 것이 아니듯 사람의 연륜 또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거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나이테는 볼 수 없으나 그 연륜으로 쌓여진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경탄스럽다. 나무가 지구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록해 왔다면 사람은 새 역사를 기록하는 동시에 창조해왔다. 인류 진화 역사 38억년과 우주 역사 137억년을 상상하고 복기한다는 것만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나 사람 하나를 나무 하나와 비교해 보면 별 볼 일 없어 보인다. 70년을 한해살이 초목, 하루살이처럼 살면 창조적이고 격조있는 연륜이 쌓일 수 없다. 설날 되면 거저 생기는 연륜(나이테)은 ‘공으로 건너가지 않은’ 나무의 나이테만 못하다. 연륜은 쌓여지는 게 아니라 쌓는 것이다. *애초 이 글을 시작할 때는 ‘종심(從心)의 연륜’이 쌓이지 않은 내 자신을 나무 나이테와 비교하며 탄식과 회한을 늘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글을 전개하며 갱각해보니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창조해온 인간의 위대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회한이 주제가 되는 ‘나이테’(2) 편을 다시 구상하기로 했다. 내 연령별 나이테의 변화를 솔직하게 고백, 참회해보려 한다. ‘마침내 從心에 이르렀다’는 순간의 착각까지 그대로 밝혀 놓은 거야말로 제대로 된 연륜을 쌓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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