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사람이 우주의 본체요 주인이다

이옥용 | 기사입력 2026/02/02 [11:27]
추앙하고 숭배할 이는 없다

사람이 우주의 본체요 주인이다

추앙하고 숭배할 이는 없다

이옥용 | 입력 : 2026/02/02 [11:27]


나는 누구인가?
 

 

필자는 강화도 마니산 자락에서 거주하면서 20년간 여러 방면으로 공부하며 사람이 우주의 본체요. 우주의 주인임을 깨달았다.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하나님-)도 거룩히 여기고 추앙하고 숭배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존하면서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감사하면서 살면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성인도 먼저 깨닫는 사람일뿐 추앙하고 숭배하고 의존해서도 안 되는 다만 선각자이다. 이 우주 삼라만상 자연만물도 숭배하고 의존하는 상대가 아니라 공존하면서 사람이 주인으로써 보살피는 대상이다.

 

필자는 지난날 돌이켜 보면 매일종교신문을 창간하여 한국의 종교수장들을 단독으로 만나 공부를 했었다. 백두산 정상에 서 있어 보았고, 태산 정상에 있는 사당에 들어가 보았고, 이스라엘 성묘교회당 답사도 했었다. 한국에 신통력을 행한다는 사람들을 만나 그 들의 실상을 보았고, 강원도 정선에 도인을 찾아서 만나보기도 했었다.

 

껍데기 뿐인 필자 자신을 모르고 자신을 높혀 주는 신령들의 계시에 의존하여 놀아났고, 신통력과 이적권능이 천하를 얻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문자에 얽매여 이것이 다 인줄알고 문자에 갇혀 살았고, 허공에 맴도는 허상을 쫓아다니며 살아왔다. ‘사는 것이 죽는 것이요. 죽는 것이 사는 것인 줄 모르고 더 얻고자 더 살고자 추앙하고 숭배하며 의존하며 살아왔던 것들이 다 헛되고 헛된 부질없는 것이라는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주인임을 모르고 시녀가 되고 종 노릇하며 살기보다는 하루를 살고 죽더라도 주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필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번뇌를 버리고 하산했다. 아무리 방대한 우주만상일지라도 사람만큼 존귀하고 높고 크지는 못한 것을 깨닫고 우리의 삶에 무엇이 사람을 비하하고 유린하는 행위인가를 추척하여 본다.

 

두려움과 복종

 

오늘날 사람은 존귀하다는 말을 입으로는 누구나 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그 존귀함이 가장 손쉽게 짓밟힌다. 권력은 사람을 이용하고, 종교는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도구화하며, 사회는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가치를 유린한다. 이처럼 사람의 영혼이 훼손되는 시대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사람을 비하하고 유린하는가.’

 

종교의 본래 목적은 시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내면을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오늘의 종교 현장은 그 본령을 잃고 있다. 교주는 신의 이름으로 신도를 지배하고, 목회자는 교권을 유지하기 위해 교인들을 예속시킨다. 불교의 자비도, 기독교의 사랑도, 천도의 평등도 종종 조직의 논리 속에서 왜곡된다. 신앙은 자유여야 하지만, 현실의 종교는 복종을 요구한다. 그 복종은 믿음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을 유린하는 세력은 언제나 거룩한 명분을 앞세운다. “신의 뜻”, “진리의 길”, “공동체의 질서라는 말이 사람을 억압하는 수단이 된다.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고, 교리의 이름으로 비판을 금지한다. 그러나 종교의 권위가 신의 권위와 같을 수는 없다. 신은 사람을 지배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 안에서 자유를 일깨운다. 진정한 종교는 통제의 장이 아니라 해방의 공간이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그 유린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의 명령에 의문을 품지 않고, 부당한 교권에 침묵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비합리를 받아들이고, 권력의 언어를 은혜로 포장한다. 이 침묵이야말로 사람을 유린하는 가장 교묘한 폭력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유린은 더 이상 물리적 폭력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짜 믿음으로 양심을 마비시키고,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생각을 지워버리는 것도 유린이다. 경제적 착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으로 스스로 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신앙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면, 이미 유린당한 것이다.

 

이제 종교는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지배한 순간, 그 종교는 신의 자리를 침범한 것이다. 목회자는 교인을, 승려는 신도를, 교주는 추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람으로서 자유롭고 존엄하게 서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 종교의 권위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이 먼저다. 사람은 우주의 본체요 주인이기 때문이다.

 

누가 사람을 유린하는가?

 

그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신의 뜻을 독점하려는 자, 사람의 영혼을 도구로 삼는 자, 그리고 그 부당함에 침묵하는 우리 모두가 그 유린의 공범이다. 진정한 신앙은 사람을 유린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일으킨다.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짓밟는 그 모든 행위는 신앙이 아니라 배신이다. 죄악이다.

 

필자는 스스로 사람이 우주의 본체요 우주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존하며 살자고 주장하며 내 주위 사람들을 우주의 주인으로 대하고 자연만물들을 보살피며 감사하며 살자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신이나 정치 종교 지도자나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사람을 의존하게 하여 유린하는 것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우주를 유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이옥용 CRS NEWS 매일종교신문 고문  © CRS NEWS

 

 

  • 도배방지 이미지

이옥용 '和平書信'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