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필자가 직장을 떠나고 보니 삶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이 반복되었지만, 이제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아내와 함께 보내며 지낸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내의 지적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왜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느냐.” “왜 그렇게 나서느냐.” “그건 당신 생각이 잘못된 것 같아요.” “할 일도 제대로 못해 놓고 왜 말을 하느냐.” “설거지도 깨끗하게 못한다.”
심지어 필자가 종교를 비판하는 글을 쓰면 아내는 그 부분까지 지적한다.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종교신문사에서 관계하고 있다. 비판이 없는 신문은 존재 가치가 없다”고.
처음에는 솔직히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사사건건 지적을 받는 느낌이 들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조금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지적을 들을 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다듬어지는 존재
세상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불량품이다.” “휼륭한 목회자 부인은 강단에서 살고 싶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묘한 진실이 담겨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누구나 거칠고 미완성된 상태로 삶을 시작한다.
거친 돌도 사람의 손을 거쳐야 쓸모 있는 돌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삶 속에서 누군가의 말과 관계 속에서 조금씩 다듬어져 간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의 나는 내 생각이 늘 옳다고 믿으며 살았다. 말은 직설적이었고 행동도 거칠 때가 많았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런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말해 주고 다듬어 온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다
종교는 사람을 완전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 사람은 혼자서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거울이 있어야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거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부족함을 비추는 거울은 더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지적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칭찬해 주는 사람을 더 가까이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달콤한 말보다 오히려 불편한 진실일 때가 많다. 부부는 서로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비추어 주는 거울이다. 때로는 따끔하게 말해 주고 때로는 부족함을 지적하며 그렇게 서로를 조금씩 다듬어 간다.
겸손은 신앙의 출발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말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가 인간에게 가르치는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겸손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말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내의 말을 들을 때 예전처럼 쉽게 마음을 닫지 않으려고 한다. 그 말 속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늘도 아내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어 본다.
사람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비추어 줄 때 비로소 나를 보게 된다. 어쩌면 인생이란 서로를 다듬어 주며 살아가는 긴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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