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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지기(知己) 죽음 앞에서…오락가락·뒤죽박죽 일지

신민형 | 기사입력 2026/04/01 [14:44]
안타까움·허전·허망감 이어 일상 복귀…그리고 ‘달관’ 연습 추모 편지

60년 지기(知己) 죽음 앞에서…오락가락·뒤죽박죽 일지

안타까움·허전·허망감 이어 일상 복귀…그리고 ‘달관’ 연습 추모 편지

신민형 | 입력 : 2026/04/01 [14:44]

60년 지기(知己)가 미국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많은 죽음을 보고 겪으며 모든 죽음, 그리고 내 죽음까지도 익숙, 초연해졌다고 자부했는데 소꿉 친구의 죽음 앞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막막함, 안타까움, 슬픔, 허전함, 허망감 등 복잡한 감정이 그의 재수술 포기, 연명치료 중단과 죽음, 화장까지의 일주일 동안 범벅이 됐다.

 

그러나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감정은 곧 일상으로 복귀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잔인하고 미안한 진리를 절감했다. 그리고 이제 작별 인사를 하는 마음으로 오락가락, 뒤죽박죽 이었던 마음 상태를 기록한다. 그를 추모하며 차츰 늘어날 친구들 죽음과 내 죽음에 대해서도 마음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당분간은 그를 잃은 상실감이 불현듯 되살아 날 것이며 나의 죽음에 대한 변덕스런 개념 또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죽는 날 까지 쇼는 계속되어야’(The show must go on)하고 내 정리, 정돈 작업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는 3년여 투병하다가 지난해 말 폐 이식 수술을 했다. 나는 이미 3년 전부터 그의 죽음에 대해 마음 준비를 했으나 3월 초, 재수술 포기와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자 이제 올 것이 왔구나했다. 그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 빠지자 새삼 어떡하지하는 막막함뿐이었다. 슬픔보다는 안타까움이 나를 짓눌렀다. 얼마나 열심히 성실히 산 친구였나, 그리고 투병생활 중에도 얼마나 삶에 대한 의욕과 투지를 보여주었나. 새벽 4시에 그 소식을 듣고 울컥 눈물이 나왔고 어떻게 그 상황을 견뎌낼지 암담해졌다.

 

 

▲ 그가 투병 중인 지난해 산소통을 메고 한국을 방문해 친구들과 선정릉 산책을 한 것이 큰위로가 된다.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폐이식 수술 후 한웅큼의 약을 들면서 심한 통증과 싸우다 떠난 그의 의지와 집념이 안타깝고 허망할 뿐이다.  © CRS NEWS

 

미국에서 그와 함께 지냈던 죽마고우에게 메시지를 띄웠다. 그가 생명줄 기계를 떼내기 전에 귓속말이라도 '다 내려놓고 편히 가시라' 라는 내 말을 전달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처럼 의연하게 많이 울지 말라고도 했다. 많이 울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내 말은 전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그를 떠나 보낸 허전함이 직전의 막막함, 암담함의 자리를 차지했다. “다신 볼 수 없겠지...” 60년 전부터 근래의 모습까지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갔다. 또한 뼈저리도록 아프게 다가온 것은 허망함.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며 힘들게 살았는가. 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집념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는가.

 

그가 세상 떠나기 바로 전에 나는 정성들여 나이듦이 젊음보다 좋은 이유와 조건이란 글을 썼는데 그의 죽음 앞에서 보니 쓸데없는잡상일 뿐이었다. 내가 열심히 배우고 느끼고 알고 쓰고자 하는 것들이 대체 무슨 필요와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가 자수성가해 쌓아 올린 성공한 삶이란게 무엇인가. 그의 힘들었던 시절을 보상해주었던 부귀와 멋진 여행, 추억들을 모두 간직하고 떠난 걸까.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통증 때문에 보상받은 모든 것을 잃고,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허망, 허무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가 잘하고 다행스런 일로 두가지를 꼽는다. 이 역시 내 허망함만을 좀 달래줄 뿐이지 그의 죽음에 대한 허망함을 해소시켜 주진 못할 것이다. 그게 죽은 자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도 그 얘기를 들춰내며 죽은 그와 살아있는 나를 동시에 위로하고 싶다.

 

우선 내가 그를 살아 생전에 평가하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그에 대한 주변의 존경심을 몰랐었다. 나는 성장한 그를 9급 초급자 바둑을 두었던 그의 용두동 달동네 집 꼬마 시절로 생각하며 60년을 지냈다. 전자, 컴퓨터를 전공했던 그의 업적과 활동은 나와는 무관해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몰라도 좋았다. 미국 유학과 박사 취득, 교수와 기업활동 등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그가 대단히 존경받았던 것을 뒤늦게 전해 듣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그리고 그가 투병 중일 때서야 그에게 그 이야기를 넌지시 전했다. 그가 특유의 으씀거림을 하며 흡족해 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즐겁다.

 

또한 그가 지난해 산소통을 메고 한국에서 지낸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 즐거운 추억인지 모른다. 내 맘속으로는 그의 마지막 한국 일정일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삶에 대한 의욕과 투지만을 보았다. 그래서 그가 지난해 말 폐이식 수술을 감행하면서 사투를 벌이는 중에도 격려의 말을 계속했었다. 그가 재수술 포기와 연명치료 중단을 하기 직전인 설날에도 나는 광교호수공원의 사진을 찍어 보내며 곧 우리 함께 산책하자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고마우이! 그 날이 기다려 지네!’ 라고 답했었다. 알고보니 그때는 그가 이미 죽음에 대비하던 때였다. 그의 의연함에 마음이 아리도록 아팠지만 선정릉 산책 때 산소통을 끌면서도 환하게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위안을 했다.

 

그를 화장한 후 유골을 집으로 가져간 부인이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하늘나라로 보내 드렸습니다. 보내는 마음은 아프지만 이제부터 그 사람이 고통없는 자유라서 훨훨 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평소와 같은 자는 모습이었습니다.”

 

친구의 심한 고통과 죽음을 지켜본 부인은 같이 아팠을 것이다. 메시지를 보며 친구의 편해짐과 부인의 홀가분함이 전해졌다. 차후에 유골을 바다에 뿌려 완전히 자유롭게 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을까? 나는 이들 부부 20대 연애시절에 함께 덕적도 여행을 했었다. 친구보다 자기가 더 좋아해서 결혼했다고 했는데 이제 묘지도 함께 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친구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었기에 그럴까. 그녀도 70을 넘어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달관(達觀)에 이른 것일까.

 

아닌게 아니라 나도 오락가락·뒤죽박죽의 마음 상태에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달관의 행보를 걸었다. 그의 연명중단 소식을 들은 날 오전에 아내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예약해놓았는데 영화관에 가서 팝콘과 콜라를 먹기 전까지 아내에게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들 부부와의 추억이 있는 아내가 힘들어할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영화를 시작하기 직전에야 미국 장례는 못가지만 정수씨가 한국에 오면 뒤늦은 조문을 하자는 말만 해주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친구의 죽음과 부인의 아픔은 곧 잊혀졌다. 아내는 영화가 끝나도 좌석에서 일어나지 않고 나 먼저 나가라고 했다. 컴컴한 극장에서 영화의 감동에 실컷 우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 영화의 여운을 안고 나와 다시 친구 죽음과 부인의 슬픔을 이야기하고서야 또 다른 성격의 눈물을 훔쳤다. 희노애락을 넘나드는 달인의 모습이었다.

 

마음이 어수선한 상태에서 달관의 연습은 영화관 이후에도 이어졌다. 한국에서의 조문이라는 핑계로 동네에서 넉넉한 술자리를 가졌으며 조문과는 상관없는 반가운 술자리를 두곳이나 약속했다. 도서관서 역사와 과학 소설책을 재밌게 읽었으며 손주들의 재롱을 볼 수 있는 애들의 요란스런 카톡 대화에 끼어들었다. .

 

세상 떠난 친구 일이라면 물심으로 발벗고 나섰던 그의 절친에게도 메시지를 띄웠다. 홀로 고난을 감수하며 두문불출 살지만 나처럼 호들갑 떨지 않고 슬픔을 내면으로 삭히고 있을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형모 소식에 새삼 암담해져 눈물 나고 우울했었는데 몇일 지나고 나니 여유롭게 산책할 마음도 생기네. 삶과 죽음이, 슬픔과 즐거움이 뒤죽박죽 동전 뒤집듯 하네. 자네도 강아지 데리고 정발산 오르는 기분전환 산책하시게.다른 때 같으면 즉각 답을 주었을 덴테 여전히 허전·허망함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끝내 답변이 없었다. 아마도 부인은 누워있는 주검을 보며 평소 자는 모습으로 고통없는 자유로 훨훨 날아갔다고 했지만 그는 생존 기계 부착하느라 미용을 해도 얼굴이 상한 모습이 더 눈에 띄어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을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할텐데막막함·안타까움·슬픔·허전·허망감이 범벅되면서도 남겨진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었다. 오락가락 뒤죽박죽 수다의 글을 정리한 이유다. 그렇게 하는 것이 떠날 사람을 잘 떠나보내는 진정한 추모가 되리라 믿고 싶었다. 산자, 죽은 자가 다 그들 세상의 일상으로 돌아가 자유롭고도 평온한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수다를 마무리하고 싶다.

 

그 마무리 글의 제목을 형모에게 보내는 보지 못할 편지와 글들로 정했다. 그리고 산자, 죽은자 모두 되도록 빠른 일상복귀를 위해 그가 세상 떠난 3월의 마지막날까지 청산하기로 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던 그가 하던 똑부러진 방식을 흉내 내어 시한을 정한 것도 잘한 일이다. 또한 메일, 메시지, 카톡 등이 아닌 60년전에 썼던 편지처럼 보내게 되니 그를 즐거운 마음으로 자랑스럽게 떠나보내는 달관 연습도 마무리 되는 듯 하다. 


<형모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와 글들>

 

여보게, 형모

자네의 영전(靈前), 혹은 하늘나라에 보내는 편지와 글이라고 하지 않겠네. 자네 부인 말대로 자네는 하늘나라나 영혼보다 더 평온하고 자유로운 상태라고 믿고 있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죽음의 상태를 일컫는 영면(永眠)‘의 경지일세.

 

준양은 자네가 부착했던 생존기계의 주검의 상흔에 괴로워했지만 영면의 세계에서는 고통스럽던 상흔, 상처란 게 없네. 자네가 3년간 겪었던 고통의 순간들이 흔적없이 사라졌네. 성실하게 치달았던 자네 삶의 힘겨움도 다 덜어냈네. 모든 근심 걱정 고통이 없어졌네. 자네를 갈등과 번뇌 속에 들게 했던 희노애락애오욕을 모두 벗어났네. 인간지사 새옹지마, 흥진비래, 고진감래, 전화위복이라지만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면 다 같아 보이네. 자네처럼 다 살고 나서 인생을 보면 더 그럴 것 같네. 긴 인간의 역사를 보면서도 느끼는 걸세. 나는 내 살아있는 동안 자네를 정말 좋아했고 마음 편했던 친구였구나라고만 기억하겠네. 힘겨웠던 일은 이야기 안하고 아름다운 세상 함께 소풍 잘 했다고만 추억할거네.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8년전 내 블로그 글을 올리겠네. 이젠 자네가 이 글을 볼 수 없겠지만 자네 살아있을 때 들려주고 싶었던 내 신념이자 종교네.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갈 때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는 천상병 시인의 마음을 담았네. 자네는 나보다 먼저 소풍끝내고 이상의 세계에 도착한거네.

https://blog.naver.com/hosabi55/221315772215?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아울러 근래 내가 읽으며 공감하고 있는 철학시집-죽음편중 하나도 보내겠네. “자연과 나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우울한 로맨스는 그게 끝이었다는 시귀가 와닿았네. 자네가 만약 유체이탈해 자네의 주검을 본다면 느끼는 심정이리라고 상상해보네. 자네는 상상 아닌 실제 세상을 먼저 갔네. 영면하시게

 

자네를 사랑하고, 또한 사랑받던 이듵도 조만간 대자연과 대우주의 세계, 영겁의 세계, 엉면의세계로 따라갈거네.

  

 

자연과 나의 로맨스 그 아름답고 우울한 스토리

 

自然

아름다운 이름아.

넌 나에게 밝은 눈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힘찬 근육을 주어

이 세상 너의 품 어디든

마음껏 뛰놀게 했지.

 

너의 세상은 즐거웠고 건강했고 행복했어.

모든 것은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오로지 나를 위해 마련된 것.

난 마음껏 향유하며 스러지지 않는 푸르름을 뽐내었지.

 

그 젊음으로 자식을 낳고 열심히 키워

아이들이 금방 그리고 매우 푸르러 늠름해졌을 때쯤

넌 나에게 다가와 남몰래 살짝 속삭였어.

이제 그만 나가 달라고.

 

놀랄 겨를도 없이 난

네가 나 몰래 오래전에 미리 준비해 둔

무덤으로 치워졌고 그리고

그게 다였어.

 

자연과 나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우울한 로맨스는

그게 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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