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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⑫홍수(3)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2/11/07 [14:18]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⑫홍수(3)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2/11/07 [14:18]

(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여기 21절에서 중심에 이르시되라는 말은 마음에 굳게 다짐하거나 스스로 결연한 선택을 내리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중심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레브라는 말인데,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말씀하셨다라는 것은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을 결코 변경하거나 그 뜻을 후퇴시키지 않으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생각을 마음에 완전히 고정시켜서, 피조물의 행태에 의해 그 뜻을 변개치 아니하시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결심은 홍수 후에도 인류가 죄악의 길을 걸을 것을 미리 아셨기에 말씀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노아가 드린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창세기 317절의 저주를 없앤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대홍수와 같은 전 세계적인 격변이 다시는 인류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줄 뿐이었습니다.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와 같은 인류와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보존의 약속은 참으로 은혜로운 언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의로움과 선함에 근거한 언약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인하는 언약입니다. 심판으로는 인류의 회복이 불가능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 인류에게 다가가시는 모습을 우리는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9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셨다라는 표현이 3번 등장합니다.

 

(9:9,10)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9:17)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언약은 창세기 9장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언약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반복되는 것이 창세기 9장입니다.

 

이 언약은 홍수 이전에 창세기 618절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인데, 그 때는 그저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9장에 이르러서 언약에 대해 다시 한 번 상세하게 말씀합니다.

 

99, 10절에서의 언약은 모든 피조물들의 영속적인 미래에 대한 언약을 인류의 대표인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10절에서 세우리니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헤킴인데, 이것은 지키다”, “수행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없는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확실하게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9: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은 9장에서 언약의 증거를 주시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무지개를 보여주십니다. 무지개를 볼 때마다 인류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할 것입니다.

 

여기 언약의 증거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성을 인치는 것입니다. 이 증거를 통해 인류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류와 세상의 보호자이심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밧모섬의 이상 중에 하나님의 보좌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를 보았습니다(4:3). 사람들은 무지개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성취하십니다. 무지개 가운데서, 인간의 믿음과 신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불변하심을 만나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 역시 이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모습 가운데 무지개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는노아에게 맺으신 은혜의 언약처럼, 하나님께서 비록 유다 왕국을 심판한다 하실지라도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고 회복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끝까지 자기 백성을 붙드시며 회복시켜주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분의 언약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지 아니하고 늘 의지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이 말씀 가운데 네피림떨어지다라는 뜻을 지닌 나팔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하여 하늘로부터 떨어진 타락한 천사의 후손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장부”, “용사등으로 번역되어 이해됩니다.

 

네피림을 가리켜 천사와 인간의 혼합 결혼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모든 인간들이 다 기골이 장대했기 때문에 육체적인 거인들을 뜻하기보다는 성격이나 지혜 등 다른 면에서 탁월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신장과 체력이 탁월하고, 지혜가 걸출하고, 가장 정교하고 놀라운 일들을 고안하는데 재간이 있는 거인들이 많았습니다. 죄악을 엄격하게 제어하지 않는데 있어서의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재간과 정신적 능력에 비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전에 살았던 이 사람들에게 풍요한 선물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선물을 자신들을 영화스럽게 하는데 사용했으며, 그들의 애정을 선물들을 주신 분에게가 아닌 선물들에만 둠으로써 그것들을 저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금··보석과 상품의 목재를 써서 그들 자신을 위하여 주택을 건축하였고, 그들의 가옥을 가장 공교한 솜씨로 아름답게 꾸미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앞지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의 욕망을 만족시키기만을 추구했으며 쾌락과 사악의 길에 빠졌습니다. 결국 이 네피림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이해하는게 좋을까요? 장부들, 지혜로운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명성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네피림이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태어났습니다. 경건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하고, 타락한 이들과 가족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결과 별 볼일 없는 후손들이 나온 것이 아니라 지혜롭고, 똑똑하고, 세상에서 명성이 높은 이들, 네피림들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진정한 축복이 세상에서의 능력과 명성과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인의 후예는 성을 쌓고 도시를 만들고 문명을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들어 낸 문화와 문명은 놀라왔고, 그들에게서 인재들이 태어나 용사가 되고, 권력자가 되고, 스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돌아올 이유가 점점 없어졌습니다. 세상에서 명성 얻고, 돈 많이 벌고,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보니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네피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은 홍수가 임하기 전에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홍수가 닥치리라고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홍수 이전에만 존재했을까요?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탐꾼들을 보내는데,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정탐꾼들이 보고하기를, 그들이 본 아낙자손 거인들은 네피림의 후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네피림들은 결국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홍수 때 멸절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낙자손이 네피림의 후손이 될 수가 있습니까? 유전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네피림은 어떤 거인의 생물학적 유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많은 인간 속에 존재하는 세상을 사랑하고, 재물과 안락함과 명예를 추구하는 그 죄성의 유전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세상을 사랑했던 네피림의 그 정신이, 말세에 세상을 다시 한번 지배하고 있음을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노아를 비롯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노적들은 이러한 환경 가운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랐을 때, 세상의 명성과 재물과 안락함보다는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네피림의 정신에 굴복하느냐,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간 믿음, 순종, 그것이 노아가 구별되도록 하여 주었습니다. 재물과 명성과 힘의 우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 네피림의 시대에, 오늘 우리는 노아처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내게 주신 귀한 사랑과 신실하심에 감사하면서, 내가 믿고 있는 주님덕분에 행복해하며, 내가 기다리는 그 날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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