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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⑮모든 민족과 바벨(3)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2/12/20 [08:25]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⑮모든 민족과 바벨(3)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2/12/20 [08:25]

창세기 114절에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는 말은 바벨탑을 건축한 동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땅에 번성하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세상에 흩어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충만하게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힘의 분산과 불안을 초래할 흩어짐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과 탑을 쌓아서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118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흩으셨다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는 헤피참인데, 이 말은 흩어지다”, “분산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푸츠로부터 온 말로 그가 그들을 흩어지게 하였다라는 말입니다. 동사 푸츠는 보통 하나님의 강권적인 흩으심에 대하여 사용되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권적인 흩으심을 행하셨을까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사고와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중심에 없는 수고와 노력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함께 모여살기를 좋아하고 흩어짐을 거부한 인간들을 흩어놓으신 것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 “땅에 번성하라는 말씀을 이루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분산은 온 땅에 사람들을 살게 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려고 했던 바로 그 방편을 통하여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기에 바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바벨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2가지의 의견이 있습니다. 첫째는 혼잡하다를 의미하는 발랄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일루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럴 경우 해석은 신의 문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각기 나름대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바벨탑을 쌓은 무리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문에 닿기 원했기 때문에, 또한 그들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높이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이전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게 되었으며 약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바벨탑 건설자들의 계획은 수치와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들의 교만의 기념비는 그들의 어리석음의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동일한 노선자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배척하는 노선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하늘에서 실천에 옮기고자 하던 원칙이요 그의 제사를 드리는 데 있어서 가인을 지배했던 원칙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벨탑 건설의 시도가 흩어짐을 경험하게 되면서 끝났을까요? 단 한번의 시도로 종결되고 말았을까요? 높은 탑들을 건축하고자 한 메소포다미아 사람들의 열정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고자 시도하다가 첫 번 실패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대를 통하여 그들은 신전고탑들, 곧 지구랏들을 계속해서 건축하였습니다. 역사가 흐르는 동안 여러 왕들이 탑을 중건했는데, 느부갓네살이 그 일을 한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결국 바벨탑 사건의 초점은 탑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전혀 개의치 않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한계를 초월하여 이름을 떨치려고 한 교만이 이 사건의 중심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교만은 성경의 역사를 볼 때에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던 것입니다.

 

(1: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바벨론은 바벨탑이 무너진 시날 땅에 신전을 세우고 일어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서의 사건처럼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탑을 쌓았던 조상들과 같이 자기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금신상을 높이 올리고 거기에 절하도록 하였지만, 언어를 혼잡하게 함으로 심판하셨던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인생을 치심으로 교만했던 그의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어떻게 변합니까? 그가 어떤 고백을 합니까?

 

(4:3)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우리는 바벨탑과 바벨론이라는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서 인간의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그런 인생들에게 베푸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탑을 계속 쌓아왔던 것처럼 오늘날도 영적 바벨론에서 바벨탑은 계속 건축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바벨탑을 끊임없이 쌓는 이 마지막 시대의 인생들을 향하여 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는 계속 주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탑 건설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정부를 비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고, 인간의 이성으로 충분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오늘날 하늘에 올라가는 탑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위에 있을 때 바벨론”, 즉 분열과 분쟁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조사의 때가 임박하였습니다. 지존자께서 인간들이 건축한 것을 보시려고 곧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주권이 드러날 것이며 교만한 인간의 사업들은 낮춤을 당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33:13, 14, 10, 11).

 

인간이 만든 구원의 탑, 교만의 탑, 불순종의 탑이 언어의 혼잡으로 흩어짐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의 체험을 한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언어가 하나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나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하여 노력하는 인생이 아니라, 나의 이름은 가리어지고 하나님을 드높이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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