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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학 그 표준이론』 제8장 ‘주요 인간론’ -‘성령과 기독교 인간론 등’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3/17 [11:34]

『영혼학 그 표준이론』 제8장 ‘주요 인간론’ -‘성령과 기독교 인간론 등’

정영부 | 입력 : 2023/03/17 [11:34]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8주요 인간론(人間論)’ 성령과 기독교 인간론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참고로 제8장의 목차와 그중 이번 회에서 다룰 부분은 다음과 같다.

 

8. 주요 인간론(人間論)

8.1. 그리스 철학과 영언여작의 삼혼설

8.2. 기독교의 인간론

8.2.1. 기독교의 영혼창조의 시기와 방법

8.2.2. 유대교의 인간론

8.2.3. 기독교의 인간론

8.2.3.1. 기독교 인간론의 내용

8.2.3.1.1. 표준이론에서 본 기독교의 인간론

8.2.3.1.2. 영육이원론의 전통교설

8.2.3.1.3. 영혼육삼원론의 소수설

삼원론의 역사

표준이론과 기독교 삼원론

8.2.3.2. 성령과 기독교 인간론

8.2.3.3. 기독교 인간론에 대한 표준이론의 결론

8.3. 불교의 인간론

8.4. 원불교의 영기질 인간론

8.5. 자이나교의 혼육이원의 인간론

8.6. 힌두교의 인간론

8.7. 정기신(精氣神)의 인간론

8.8. 도교의 인간론

8.9. 도가의 인간론

8.10. 우리나라의 민속적 인간론

8.11. 영지주의의 인간론

8.12.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8.13. 대종교의 인간론

8.14. 정신분석학의 인간론

8.15. 동의보감의 인간론

8.16. 카발라의 인간론

8.17. 헤르메스주의의 인간론

8.18. 신지학적 인간론

8.19. 뉴에이지의 인간론

8.20. 통합적 인간론

8.21. 기타 여러 가지 인간론

 

성령과 기독교 인간론

 

기독교에서 성령(聖靈)은 성부, 성자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는 요소로 예수님이 승천하며 보내주신 하느님의 영을 이르는 말로 하느님의 인격성과 임재성(臨在性)이 그 속성이며 각인에게는 영적 생활을 이끌어갈 힘을 주고 죄를 사하며 교회는 천국으로 인도한다.

 

기독교의 혼육이원론은 성령의 역할을 혼의 영화(靈化)로 보고 영혼육삼원론에서는 영의 성화(聖化)로 본다. 이들이 관련 성경구절(1)을 각각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하여 표준이론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해 본다.

 

영육이원론의 성령

 

기독교 영육(혼육)이원론에서 성령은 인간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혼에게 믿음을 주어 혼을 하느님의 영의 상태’, 즉 영화(靈化)상태에 들게 한 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이다.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하느님께서 창세기 2:7에서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네샤마는 자의식인 에고다. 에고는 동물의 각혼인 네페쉬(Nephesch)를 사람의 혼인 네페쉬 하야(Nephesch hayah), 즉 생령(生靈)으로 변화시켰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이 네페쉬 하야를 영의 상태에 들게 하여(靈化)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고레스나 사울이 하느님의 성령이 임하심으로 일시적으로 영의 상태에 있었던 적이 있었으나 신약에 와서야 비로소 예수님의 성령으로 사람이 영원한 영의 상태에 놓여 그 혼은 명종 후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2)그러므로 성령은 혼을 靈化시키시는 성령이다. 단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sola fide) 순식간에 신지학의 제4단계 비전(祕傳, initiation)에 들게 되고 불교의 아라한이 되며(3)표준이론의 혼영이 되는 것이다. 가성비 최고의 교리지만 진실은 아니다.(4)

 

영혼육삼원론의 성령

 

삼원론 입장에서 성령은 이미 사람에게 있는 영을 깨워 하느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聖化시키시는 성령이다. 또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네샤마(창세기 2:7)으로서, 이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지혼만 있는 사람을 영혼육의 존재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구약의 은 아담의 죄와 허물로 잠들었다. 그런데 신약의 시대가 도래하여 예수님이 오셨고 그를 믿으면 잠들었던 구약의 영이 성령으로 성화(聖化)되어 의로운 영으로 다시 깨어난다. 그리고 명종 후 이 영과 혼은 일체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한다. 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영과 혼은 일체가 되어 지옥으로 보내진다.

 

소수설은 자기들의 주장을 입증하는 성경구절로 데살로니카 전서 5:23,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간 4:12, 마태오복음 10:28, 고린도전서 14:15 등을 들고 있다.

 

기독교 인간론에 대한 표준이론의 결론 

창세기 2:7의 네샤마의 해석

 

성경내용만 놓고 보면 창세기 2:7의 네샤마는 이 아니라 각혼을 지혼으로 변화시키는 에고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원론이 맞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보자.

 

표준이론에서 최초의 인간은 지혼(知魂)의 탄생 그리고 문명의 등장과 함께 지구상에 나타났으며 이 이야기는 성경에 창세기 2:7네샤마 사건과 에덴동산이야기로 기록되었다. 인류역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5)이 등장한 대략 8,000년 전에 시작된다. 그전에는 현생인류를 포함한 짐승이 지구 최고 진화체였다. 짐승이 가진 혼은 각혼(覺魂)이다. 각혼은 육체에 감각의 생기체와 하위정신체인 감성과 욕망의 이드를 갖추었을 뿐이다. 물론 여러 짐승 중 현생인류의 각혼이 개체성과 이로 인한 기초적인 자의식을 상당 부분 확보하여 그 진화 수준이 짐승 중에 가장 뛰어났을 것이나 지혼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아담의 창조설화인 창세기 2:7은 바로 이 각혼이 지혼으로 변화되는 순간의 이야기로, 때는 에덴동산이 열리기 직전이다. 이때에 하느님께서 짐승상태인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몸에 완벽한 개체성과 자의식을 불어넣어 문명인류인 호모 키윌리사티오로 진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 영은 당연히 없었다.(6)

 

다시 말하면 창세기의 에덴동산 이야기(7)는 현생인류의 각혼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동식물의 혼과는 다른 지혼으로 변화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혼이 하느님의 불티가 아닌 하느님의 불씨를 품게 된 사건이다. 하느님의 숨인 네샤마는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의 각혼을 영적인 혼인 생혼(네샤마 하야)’ 즉 지혼이 되게 하셨다. 영적인 혼은 하느님의 불씨를 품은 혼이다. 언젠가 영이 될 자격을 얻은 혼이다.(8)이 지혼은 예수님의 救贖사건 이후 구원의 성령까지 얻게 되었다. 이는 지혼이 가진 신의 불씨를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여 영의 길로 속히 인도하려 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인 것이다.(9)

 

표준이론은 기독교 삼원론을 지지한다

 

그러나 표준이론은 당연히 삼원론을 지지한다. 창세기 2:7의 네샤마는 각혼을 지혼으로 진화시킨 상위정신체였으나 이후 지혼은 진화하여 그 일부가 영이 되었고 그 영은 비록 지구인구의 10%라고 하지만 어쨌든 지금 사람의 몸에 들어와 혼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영성사를 돌아보면 고대문명시대에 영은 정말 희귀하였다. 스스로의 혼을 돌아보아서 알겠지만 혼이 독력(獨力)으로 어찌 열반하여 영이 된다는 말인가. 따라서 인류의 정신 발달은 더디기 짝이 없었고 이를 불쌍하게 여기신 하느님께서는 드디어 문명 이후 어느 때쯤에 신영을 창조하여 인류의 영적 진화를 촉진하셨고 그 전형이자 대표적인 사건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로서 예수님의 구속사건이다.(10)

그러나 예수님 시절에는 이미 혼영이 없지 않았고 게다가 커다란 양심체를 가진 사람들이 제법 등장한 때이기 때문에 사도 바오로는 영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 자신이 이미 혼영 또는 신영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오늘날 성경에는 이원론과 바오로의 삼원론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혼(靈魂)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 안에서 영과 혼은 혼영일체로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합일되어 있다.(11)그러니 영과 혼을 하나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건재함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기독교 교리는 문자 그대로 조직의 논리인 교리(dogma)’. 한번 선언되면 고치기 어려우며 이후의 모든 연구와 해석은 이에 준거하여 이루어진다. 그만큼 한번 교리가 된 주장은 이를 변호하는 언설도 방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 해석에 있어 이원론 관련구절을 몸과 영혼’, 물질과 비물질구성에 대한 언급으로 본다면 삼원론 또한 소수설을 넘어 정설로 용인한다 하여도 성경 해석상 문제 될 것은 없다고 하겠다.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은 표준이론의 해석에 따라 구약시대는 혼육이원의 시대였고 신약시대에 즈음하여 영혼육삼원의 시대가 본궤도에 올랐다고 보면 성경 여기저기의 이원론 구절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註釋> 

1) 성경에 나타나는 성령

 

(고린도전서 2:12~15)

12) 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Now we have received, not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Spirit who is from God, that we might know the things freely given to us by God,

13) 우리는 그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which things we also speak, not in words taught by human wisdom, but in those taught by the Spirit, bringing together spiritual men(pneumatikois) with spiritual things(pneumatikà).

14)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But the soulish man(psychikós) does not accept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cannot understand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appraised.

15) 영적인 사람은 무엇이나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신은 아무에게서도 판단 받지 않습니다. But the spiritual man(pneumatikòs) appraises all things, yet he himself is appraised by no man.

16) 성서에는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알아서 그분의 의논 상대가 되겠느냐?” 하였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For “who has known the mind of the Lord, that he should instruct Him?” But we have the mind of Christ.

 

(고린도전서 3:1~3)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할 때와 같이 말할 수가 없어서 육적인 사람, 곧 교인으로서는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And I, brothers, could not speak to you as to spiritual men (pneumatikois),but as to carnal men(sarkínois),as to infants in Christ.

2) 나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고 젖을 먹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때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아직도 그것을 소화할 힘이 없습니다. (I gave you) milk to drink, not solid food, for you were not yet able (to receive it), for even now you are not yet able,

3) 여러분은 지금도 육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있으니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들이고 세속적인 인간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for you are still carnal (sarkikoí). For since there is jealousy and strife among you, are you not carnal (sarkikoí), and are you not walking like mere men?

 

(로마서 7:22-23)

나는 내 마음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내 몸의 지체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의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For I delight in the law of God after the inward man; but I see a different law in my members, warring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bringing me into captivity under the law of sin which is in my members.

 

2) 가톨릭은 미사전례 시 사제가 입당한 후에 팔을 벌리며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그러면 신자들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고 대답한다. 이때 사제의 영은 무엇일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Et cum spíritu tuo)” Spirtus는 사제에게 혼이 아닌 영이 또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혼을 두리뭉실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제가 서품식 때 받은 성령과 그 성령께서 주시는 직무수행의 은사를 말한다고도 한다.

 

3) 불교에도 같은 설화가 있다. 999명을 죽이고도 깨달음 하나로 아라한이 된 앙굴리마라(央掘摩羅) 존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과장이 기독교의 우도(右盜)이야기를 훨씬 능가한다.

 

4) 자기 자신을 보라. sola gratia를 감안하더라도 그럴 자격이 있겠는가?

 

5)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BC 4,000~6,000년경에 출현하였고, 뒤이어 곧 이집트 문명이 출현하였다.

 

6) 최초의 神靈이 이 직후 나타나 인류의 영적 진화를 이끌었을 수 있다. 신지학자 베산트는 지구 지혼 역사의 초기에 외계 출신의 영들이 지구에 지원되었다고 한다(미주 44 ‘신영과 혼영의 탄생참조).

 

7)

1. 지구가 만들어진 시기는 46억 년 전이고 에덴은 6,000년 전에 열렸다. 영국의 어셔(James Ussher 1581~1656) 대주교에 따르면 창세기 5장을 비롯한 성경의 내용에 따라 계산했을 때 아담은 BC 4004, 지금부터 약 6천 년 전 사람이다. 그러니 중간에 빠진 계보 등을 고려하더라도 아담의 연대는 1만 년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담은 6천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다시 말해 신석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양승훈, 논문 역사적 아담과 아담의 역사성 논쟁참조).

2. 그렇다면 성경에서 에덴이 열린 때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시기인 8,000년 전과는 2,000년 차이 난다. 그러나 에덴이 6,000년 전에 열렸다는 계산은 신화와 비유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해석한 것이다. 설사 논픽션이라 하더라도 성경해석 상 에덴이 10,000년 전까지 소급될 여지도 있다 하니 2,000년은 의미 있는 차이가 아니다. 또 메소포타미아에서 청동기문명의 본격적인 시작은 6,000년 전이니 에덴은 이때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는 불필요한 논의다. 인류의 영적 역사의 시점(始點)은 하느님께서 지혼을 지으신 때이며 이는 곧 문명인류(homo civilisátĭo)의 탄생과 문명의 시작을 불러왔고 성경은 이를 에덴동산의 이야기로 표현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미주 25 ‘지혼의 조건(표준이론)’ 참조).

 

8) 이때 모든 현생인류의 각혼이 일거에 지혼으로 변화하였는지 그중 일부 그룹만 그 혜택을 입었는지 아니면 성경대로 아담 부부만 그리되었는지는 상식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부분이다.

 

9) 기독교 인간론의 표준이론적 해석

 

1. 표준이론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숨 네샤마는 靈火로서 하느님의 불티를 가진 각혼을 하느님의 불씨를 가진 지혼으로 키운 은총이자 은혜다. 이로써 아담의 역사, 문명의 역사, 혼이 영으로 진화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또 예수님의 성령은 영에게는 하느님의 불꽃하느님의 횃불로 키워 해탈에 이르게 하시려는 도움의 성령이고 혼에게는 하느님의 불씨하느님의 불꽃으로 키워 혼을 영()으로 이끄시려는 구원의 성령으로서 영화(靈化)의 성령이다.

 

2. 한편 하느님께서는 진화의 방법으로 기르시는 영(魂靈)에 직접 창조의 방식으로 만드신 영(神靈)을 더하여 혼영의 탄생을 도우셨다. 이는 문명의 시작 후 어느 때 쯤이라고 보이는데 예수님의 구원사역이 신영의 맏이로서 지혼의 영화(靈化)를 돕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미주 44 ‘신영과 혼영의 탄생참조).

 

3. 이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하느님께서는 창조 시 생명체에게 기의 생명력인 네페쉬를 불어넣으셨으며 생명력인 네페쉬는 진화하여 각혼이 되었고 마침내 이 중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현생인류)종의 각혼이 선택을 받아 하느님의 네샤마를 받고 사람의 혼인 지혼이 되었다(창세기 2:7). 이 모든 것을 보기 좋게 여기신 하느님께서는 신영의 맏이인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지혼에게 구원의 성령을 주셨는데 이는 지혼이 가진 신의 불씨를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여 영의 길로 속히 인도하려 하신 구원의 손길인 것이다. 이러한 구원의 손길을 기독교에서는 구속(救贖)이라고 표현한다.

 

10) 표준이론의 예수님

 

1. 표준이론에서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神靈으로, 혼의 구원(靈化)를 위해 이승에 부임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로 본다. 이때 인류에게 아들은 성령과 함께 하느님과 삼위일체다. 삼위일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의 일체이지 의 일체가 아니라면 는 같은 가 여럿 있을 수 있으니 예수님도 여럿 있을 수가 있겠다. 그렇다면 한 분이신 성령도 수없이 많은 같은 역할자를 지칭할 수도 있다. 또 모든 영과 혼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들은 全中一一中全하는 만물조응의 플라톤 또는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화엄세계의 아들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가장 완전한 계시를 하셨다.

 

2. 켄 윌버는 기독교인이 그 자아의 수준에 따라 예수님의 정체(正體)를 어떻게 보느냐가 달라진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백색으로 밝게 빛나는 구름을 보는 절정체험을 했는데 그 구름이 예수님으로 보이는 사람 모습의 빛으로 된 존재처럼 보였고 자기가 그 빛과 융합되면 무한한 사랑과 희열을 느꼈다고 하자. 이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면 그의 좌하 4분면이 그가 자기 체험을 어떻게 해석할지 예견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그의 의식수준이

1) 적색 높이(마법적 수준, 자기중심적 자아)에 있다면 그는 물 위를 걷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빵과 물고기를 불리는 마법적인 예수를 본 것이다.

2) 호박색 높이(신화적 수준)에 있다면 영원한 법을 주는 자, 신화와 교리를 믿고 선택한 백성들에게 내린 율법과 규례와 언약을 따르는 사람 그리고 유일한 성경을 믿는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는 자로서의 예수를 본 것이다.

3) 오렌지색 높이(합리적 수준, 성취적 자아)에 있다면 보편적인 박애주의자, 그러면서도 신적인 존재, 세계중심적인 사랑과 도덕을 가르치는 자, 하늘에서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이번 생에 어느 정도 구원을 가져다주는 자로서의 예수를 볼 것이다.

4) 초록색 높이(다원적 수준, 민감한 자아)에 있다면 그가 보게 될 예수의 모습은 여러 영적인 스승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진정한 영적인 길에 충분히 깊이 들어가면 모든 길이 다 동일한 구원 또는 해방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다른 문화는 각자 자기에게 더 좋은 영적인 길을 택하겠지만, 자기는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 예수를 선택했기 때문에 열심히 그 길을 가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5) 이 사람이 만약 청록색 높이(통합적 수준)로 올라가면 예수를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그리스도 의식의 한 顯現으로 볼 것이다. 그에게는 예수가 우리 모두를 휘감고, 상호 관통하면서, 밝은 빛을 발하며 역동적으로 흐르는 광대한 시스템의 일부인 변형된 의식의 상징이 될 것이다.

6) 보라색과 자외선 높이(메타 마인드, 오버 마인드)에서는 그리스도 의식을 초월적이고 무한한 것의 상징, 자아 없는 참자아의 상징, 예수와 우리 안에 있는 신적인 의식의 상징, 모든 것을 완전히 품고 있는 빛과 사랑의 상징, 시간과 에고의 죽음을 넘어 부활한 생명의 상징, 죽음과 고통과 시간과 공간과 눈물과 두려움을 이기는 운명이 있음을 증명한 존재의 상징으로 볼 것이다(켄 윌버 통합비전5장 참조). 보라색과 자외선 높이의 진술 중 일부는 윌버가 너무 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른 사람이 가보지 않은 데를 가본 분일 수도 있으니 마냥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3. 신지학의 대스승인 K.H.(쿠트후미)대사와 D.K.(드왈 쿨)대사는 그리스도를 일컬어 마스터들의 마스터(The Master of Masters)’라고 하였다. 표준이론에서도 예수님을 여러 영적인 대스승들 가운데 한 분으로 보니 신지학의 생각과 같다.

 

4. 독자가 혹시 기독교인이라면 어느 수준인가? 신지학자 애니 베산트는 그의 저서 고대의 지혜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지학을 공부하였다고 해서 기존의 자기 신앙을 거둘 이유는 없다. 오히려 신지학을 공부하면 자신의 신앙에 대해 통찰력이 더 깊어지고 가르치는 영적진리를 더 확실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신지학이나 영혼학은 학문이지 종교가 아니다. 자기의 종교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 공부(工夫). 그 공부의 열매는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그래서 믿음이 더 깊어지는 것그것이다.

 

11) 영혼일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1.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회색으로 표현하거나

2. 빛과 어두움이 섞인 것으로 표현하거나

3. 파장이 긴 빨간색에서 짧은 보라색으로 변화하는 무지개의 일곱 색깔로 표현하거나(파장이 짧을수록 靈的)

4. red, green, blue의 빛의 삼원색 또는 yellow, magenta, cyan의 색의 삼원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3번이 제일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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