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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⑰ 세계불교 중심센터가 된 보드가야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04/24 [07:56]
스리랑카 출신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성지 보호 복원운동 이끌어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⑰ 세계불교 중심센터가 된 보드가야

스리랑카 출신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성지 보호 복원운동 이끌어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04/24 [07:56]

보드가야에는 마하보디(大覺寺) 사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 사원들도 즐비하다. 최근에는 한국사원도 개원해서 활발하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팔공총림 동화사 본. 말사 신도회 인도 성지 순례단이 분황사를 참배하고 기념촬영.  © CRS NEWS

 

고대시대에도 보드가야 대탑(마하보디사원) 주변에는 스리랑카 사원 등이 있었다.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진 13세기부터 약 8백년간 공백기에는 힌두교 승려들이 대탑(大塔)을 관리하고 있었다. 인도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유적지 자체도 희미해진 상황에 처한 인도불교 성지를 복원한 분이 바로 스리랑카 출신 불교 부흥운동가인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18641933)이다.

 

▲ 인도불교 성지 부흥운동가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  © CRS NEWS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는 근대 세계불교계의 최초의 불교 전도사라고 할 수 있으며, 비폭력사상에 의한 싱할라(스리랑카) 불교 민족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영국 통치에 반대하는 스리랑카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다. 사실상 수세기 동안 멸실된 인도 불교 부흥의 선구자이며 아시아, 북미, 유럽의 세 대륙에서 담마(불교진리)를 설파한 근대 최초의 불교지도자이다.

 

▲ 에드윈 아놀드 경(1832〜1904).  © CRS NEWS

 

그는 인도 불교 성지보호와 복원을 위하여 1920년 마하보디소사이어티(Maha Bodhi Society;大覺會)를 당시 영국인도 수도였던 콜카타에 설립했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는 영국 언론인이자 시인이었던 에드윈 아놀드 경의 도움을 받았다. 에드윈 아놀드 경은 아시아의 빛이라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저술했다. 원제는 The Light of Asia, -The Great Renunciation (Mahâbhinishkramana)-인데, 1979년 발간되었다. 아시아의 빛이란 타이틀과 부제가 -위대한 방기(放棄)-이다. 

 

▲ 1885년 판.  © CRS NEWS

 

의기투합한 이들은 본부를 콜카타에 두고, 첫 사무소를 보드가야에 설립하였다. 마하보디소사이어티는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시나가르에 불교사원과 성지를 복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진 다음, 많은 인도인들이 불교문화에 젖어 있었으면서도 스스로가 불교인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힌두교에 속해 있었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와 에드윈 아놀드 경의 노력으로 라다크불교협회, 아쌈불교협회, 히말라야불교협회와 달리츠 불교 운동의 토대가 마련됐던 것이다.

 

그러면 이런 운동을 전개하게 된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는 누구인가를 브리핑할 필요가 있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태어날 즈음, 실론은 브리티시의 직할 식민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실론의 무역상인 가문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이름은 돈 데이빗 헤와위타라네(Don David Hewavitharane)였다. 그는 기독교계학교에 들어갔고, 왕립학교인 콜롬보 아카데미(대학)에서 공부했다. 올코트 대령이 실론에 와서 활동할 때, 돈 데이빗 헤와위타라네는 신지학회에 가입하고, 돈 데이빗 헤와위타라네라는 영국식 이름 대신,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란 법명으로 개명(改名)했다. 아나가리카(anāgārika)란 말의 뜻은 집 없는 자의 의미이다. 집이 없는 자란 바로 출가 수행자를 의미한다. 다르마팔라 (Dharmapala)는 불법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법호(法護)란 뜻 정도의 의미이다. 

 

▲ 보드가야에 있는 스리랑카 사원.  © CRS NEWS

 

상좌부 불교의 전통에서 아나가리카는 출.재가(出在家)를 막론하고 집을 떠나서 수행의 길로 들어선 구도자(求道者)를 이렇게 불렀다. 불교가 아사직전이었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실론불교에는 이런 수행자들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출가 비구와 재가 신도사이의 중간 정도의 신분인 우리식으로 말하면 포교사나 법사(法師) 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신도는 5계를 지키고, 출가 비구는 227(대승에서의 빅슈는 250)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나가리카는 8()를 지키도록 되어있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는 황색 가사는 입지 않았고 삭발도 하지 않았지만, 8계 이상의 계율을 지키면서 실론의 곳곳을 누비며 수행과 불교 부흥운동을 했다. 그는 실론에서 유명인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실론출신의 보살로 통했다. 이럴 즈음에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는 에드윈 아널드 경(Sir Edwin Arnold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이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노래한 담시(譚詩)에 감화를 받아서 1886년 인도 보드 가야 행()을 하게 된다. 에드윈 아놀드 경은 실론의 웰리가마 스리 수망갈라 장로(Weligama Sri Sumangala Thero ,18251905)의 격려와 고무에 힘입어서, 보드 가야의 복원과 불교도들의 보호를 받아야 된다고 주창(主唱)했다. 그러면 에드윈 아널드 경은 누구인가. 잠시 살펴보자.

 

▲ 스리랑카 수상이 보드가야 스리랑카 사원을 방문하여 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리고 있다.  © CRS NEWS

 

에드윈 아널드 경은, 영국의 한 지방의 행정도지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런던와 옥스퍼드를 나와서 교사를 하다가 1856년 인도 뿌나에 있는 국립 산스크리트 대학 교장이 되었다. 7년간 근무하다가 영국에 와서는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 기자가 되었고, 이후 40년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도 문학 활동을 했고, 고산등반(高山登攀)을 하고, 아프리카 사막을 횡단하는 탐험가 등으로 활약하면서 1879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을 발표하자, 일약 유명해졌다. 잠깐 사생활을 살펴보면, 전 부인들의 사별로 세 번째 부인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정황을 보면, 그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문학 사상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동양의 정신문화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은 대승경전으로 부처님 일대기(一代記)라고 할 수 있는 보요경(普曜經) The Lalitavistara Sūtra에서 내용을 자유롭게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일본 터키 페르시아와 시암(태국)에서 훈장을 받았고, 아나가리카 다르마필라와 대각회를 공동 창립했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는 인도방문과 대각회 창립 이후, 1893년 시카고의 세계종교의회(世界宗敎議會)에 남방불교 대표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인도 힌두 구루인 스와미 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1863-1902)를 만나서 인도의 종교 문제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보드 가야를 비롯한 불교 성지에 힌두 승려들의 핸들링에 대해서 설명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보드가야 한국사원 분황사를 참배하고 있는 한국불자들과 필자.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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