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많은 삶…‘塞翁之馬’ ‘興振悲來’ ‘苦盡甘來’ ‘好事多魔’ 의 人間訓

신민형 | 기사입력 2023/04/30 [21:44]
하늘 소풍길 단상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많은 삶…‘塞翁之馬’ ‘興振悲來’ ‘苦盡甘來’ ‘好事多魔’ 의 人間訓

하늘 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23/04/30 [21:44]

▲ 환상적인 여행에서의 견문은 잃었지만 근처 호수공원 산책으로 광활한 우주와도 같은 내면 세계를 탐색할 수 있지 않은가.  © CRS NEWS

 

광교산 낙상으로 5월 계획했던 여행이 무산됐다. 바로셀로나를 출발해 나폴리로 가는 크루즈에 이어 로마로 향하는 7순 기념 25일간의 환상적 여정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는커녕 집에서 그림 그리며 호수공원 산책하는게 더 좋다. 여행 다큐 보면 더 멋있다고 했다. 수년 전 여행 때 과음으로 인해 내가 심한 췌장염을 앓은 나쁜 기억도 있었겠지만 그 진심이 느껴졌다. 더욱이 며느리가 5월부터 재취업해 손녀의 하교 후 오후 일과를 돌봐야 하는 일도 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작용한 듯 싶다.

 

말을 잃었다가 다시 얻는 축복에 이어 아들의 낙상으로 다리가 부러지는 불행 중 오히려 그 때문에 징집을 피했다는 변방 노인의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를 읽는 것 같았다. ‘재앙이 복이 될지 모르고 복이 다시 재앙이 될지 모른다며 덤덤한 일상을 살아간 노인의 모습과 아내의 모습이 닮은 꼴이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은 약한 듯 산전수전 겪으며 쌓아온 내공의 결과란 생각도 든다. 한때 대한민국서 가장 화려하다는 코엑스몰 명품점을 운영하는 사모님에서 동네 닭강정집 막일하며 끝내 베이비시터 아줌마로 전락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내 젊은 시절 무절제한 생활에 얼마나 진저리쳤을까? 강남 아파트에서 수리산 밑 단칸방으로 밀려나는 수모는 어떻게 감당했을까? 내가 허심탄회 대화를 나눈답시고 세상물정 모르는 듯한 아내에게 착한여자 콤플렉스라는 핀잔을 주었을 때는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겠는가? ‘興振悲來’ ‘苦盡甘來’ ‘好事多魔의 인간사 부침을 무던히 견뎌온게 신기하다.

 

아마도 그 밑바닥엔 신앙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신앙을 그저 미망에 빠졌다고 치부하던 나로선 짐작만 할 뿐 도저히 그 경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의 신앙이 없었다면 내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인 생활을 포용해줄 수 있었을까? 나락으로 빠진 삶에서 헤어날 수 있었을까?

 

또한 그가 하던 일들이 성공을 거두어 부를 누렸다면 내 생활은 흥청망청 방탕에 빠지지 않았을까도 떠올려 본다. 지극한 신심과 영력의 성직자가, 정의감으로 넘쳐났던 운동권 인물들이 권력과 부를 갖추면 타락하듯이 나 역시 다를 바 없었을 것 같다.  

.......................................................

 

▲ 아내의 아마츄어 그림 색감은 부드럽고 붓 터치는 편안해 내 하찮은 농담에도 깔깔 웃어두는 아내의 모습이 담겨있다. 아무런 감정 동요 없이 무덤덤한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그윽하고 평온한 담담함이다.  © CRS NEWS


아내의 여행 대신하는 그림에서는 興振悲來’ ‘苦盡甘來’ ‘好事多魔의 인간사를 겪어낸 마음이 담겨있다. 삶의 복과 재앙을 경험하며 이제사 철들어가는 사내의 심미안 일수도, 늙어갈수록 마누라에 귀속되는 팔푼이 영감의 안목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후 마음 추스림은 종일 배변. 배뇨, 땀 흘린 후 상쾌한 샤워한 기분과 같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아마츄어 그림 색감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럽고, 붓 터치는 편하다. 내 하찮은 농담에도 깔깔 웃어주는 그의 모습과 내 할머니의 너그러움과 포용력이 담겨 있다. 권력과 부의 남용이나 찌든 삶 등 등 세속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고 근신과 겸손, 절제가 묻어 난다어떤 유명화가의 명화보다 마음에 든다.

   

덤덤함을 넘어서 담담하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는 변방노인의 무덤덤함이 아니라 차분하고 그윽하고 평온한 담담함이다.

 

삶의 희노애락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일희일비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교훈을 준다. 얻는 것도 잃는 것도 많은 삶이다.

 

나도 이제 환상적인 여행의 무산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 다리가 부러진 덕에 이번 어린이날에는 여행가면 갖지 못하는 아들 며느리 딸 사위. 그리고 손주들과의 흥겨운 시간을 갖지 않는가. 여행에서의 새로운 견문은 잃지만 근처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광활한 우주와도 같은 오묘한 내면세계를 탐색할 수 있지 않은가.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