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헬레니즘 사상 융합을 떠난 대승불교 존재, 가능하겠는가?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48)
불교연구에 왜 그리스가 끼어드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의 헬레니즘이 대승불교 형성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간다라 예술은 확실하게 그리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예술이나 사상 면에서 불교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와 상호작용했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이런 상호작용에 의한 불교를 그리스-불교 또는 그레코-불교라고 한다.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 사이에 간다라에서 발전한 헬레니즘 문화와 불교의 문화적 혼합주의를 말한다. 거의 1천 년의 역사가 쌓인 문화이다. 지역으로 본다면 파키스탄 북서부 및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일부가 주 무대가 된다.
그레코 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는 혼합주의와 헬레니즘을 먼저 학습해야 한다. 싱크리티즘(syncretism) 또는 혼합주의(混合主義)는 본질적으로 상이하거나 혹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러 믿음을 조화롭게 공존시키고 다양한 학파의 사상들을 융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신학과 종교적 신화의 영역에서 근본이 전혀 다른 몇 개의 전통을 하나로 합하고 유추하여 조화시키려는 시도로 흔히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각 도시와 지방의 신과 신화, 신학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강력한 신앙을 만들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서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 시대에 각지의 다른 종교들이 서로 결합되었다. 기원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 융성하였던 나스티시즘은 고대의 대표적인 혼합주의 종교 운동 중 하나이다. 3세기에 페르시아의 마니는 기독교·조로아스터교·불교의 요소를 혼합하여 나스티시즘(영지주의)의 일파인 마니교를 창시하였다. 16세기에는 무굴 제국의 구루 나나크가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요소를 혼합하여 시크교를 창시하였다.
종교 분쟁의 역사가 곧 인류 역사 자체였다는 반성 위에서 세계 종교 통합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19세기에 일어난 바하이 신앙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혼합주의적 경향은 문학, 음악, 그리고 문화의 표현양식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헬레니즘 문명은 기원전 323년에서 146년 사이의 고대 세계에서 그리스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한 시대를 일컫는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고전기 이후의 시대로, 이후 로마가 그리스의 정복지를 지배하게 되면서 로마 시대로 넘어간다. 그러나 로마 시대에도 그리스 문화, 예술, 문학은 로마 사회에 스며들어, 로마의 지도층은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어를 구사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은 서남아시아(근동 혹은 중동)에서 고대 이집트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그리스 문화와 언어가 그리스인 지배자들과 함께 새 제국 전역에 널리 퍼졌으며, 반대로 헬레니즘 왕국들은 각지 토착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어 필요나 편의에 따라 지역 관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불교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사상과 미학은 실제로 동양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에 따라 그리스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교는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사이의 어느 시점에 고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불교는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의 가르침과 삶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고대 시대에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기원전 357년 알렉산더 대왕의 인더스 계곡 침공 이후, 가장 강력하게 형성된 그리스와 인도 사이의 정치적 유대로 인해 그리스 사상과 불교는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이러한 연결은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서 그리스와 불교 요소의 문화적, 종교적 혼합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학자들은 그리스 사상, 미학, 불교의 이러한 혼합을 그리스-불교라고 부른다.
알렉산더의 아시아 원정은 그리스인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강력한 연결을 구축했지만, 이 지역 간의 연결은 훨씬 더 멀리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리우스 대왕의 통치 아래에 있던 아케메네스 즉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5세기에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그 땅은 많은 그리스인들이 살았던 아나톨리아에서 인도까지 뻗어 있었다. 제국의 외곽 지역은 그리스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서아시아의 사람들과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다리우스는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에 살고 있는 그리스인들이 그의 통치에 반항할 경우 자신의 영토 깊숙한 곳으로 파견하고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과 인도까지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더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그리스인 이동정책 실시 100여 년 후에 이 머나먼 땅을 여행했을 때 그리스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전역에 수많은 그리스 도시를 세웠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거대한 제국은 분열되었고, 기원전 321년에 알렉산더 대왕 군대의 장군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바빌로니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점령했다.
그 후 장군은 안디옥을 설립하고 이전 마케도니아 제국에 속했던 근동 지역의 대부분을 포함하도록 그의 영토를 확장했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오늘날의 쿠웨이트,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일부를 포함한 더 많은 영토를 점령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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