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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본질에서 새로운 ‘나’를 찾자

이옥용 | 기사입력 2024/05/01 [10:57]
“유럽에서는 그리스도인, 인도에 가서는 힌두교인, 돌아올 때는 불교인”

종교의 본질에서 새로운 ‘나’를 찾자

“유럽에서는 그리스도인, 인도에 가서는 힌두교인, 돌아올 때는 불교인”

이옥용 | 입력 : 2024/05/01 [10:57]
종교간 대화를 할 수 있는 바탕은 인간은 모두 종교적 심성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너무 바빠서 자연에서 왔다는 사실도, 자연을 감상할 방법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화사한 봄이 왔어도 자연이 가져다준 그 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정신을 놓고 바쁘게 사는 일, 바쁘게 나를 추동하는 것은 제정신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그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종교의 본질에서 새로운 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지난 316일 경북 안동에서 의미있는 초종교 심포지엄이 열려 소개하고자 합니다. 근래 한국 종교계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심포지엄이었습니다. 이날 안동시민회관 낙동홀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안동에 있는 안동정경포럼(이사장 김미자)이 개최한 두 번째 심포지엄이었습니다.

 

▲ 지난 3월 안동 정경포럼이 안동시민회관에서 개최한 ‘종교간 대화의 필요성 그리고 불교의 세계관과 구원론’ 심포지엄. 불교신문

 

이날 심포지움은 법인스님(실상사 한주, 전 참여연대 대표)의 사회로 기조 강연과 주제발표 등으로 진행됐습니다. 경경포럼 대표 오경스님(안동 보경사 주지)종교간 대화의 필요성 그리고 불교의 세계관과 구원론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했고, 오강남 캐나다 라자이나대학교 비교종교학과 명예교수가 심층종교의 선상에서 보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로 주제발표를 했습니다.

 

주제발표를 통해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탈종교 시대와 종교간 대화: 구원과 수행 개념을 중심으로, 조성택 마인드랩 이사장이 탈종교 시대, 대화의 걸림돌과 지향점: 한국불교의 성찰을 중심으로, 정경일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가 보리수와 십자가: 고통의 한 대지 위에 서 있는 구원의 두 나무를 각각 발표했습니다. 탈종교 시대에 종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이 주제가 이들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성해영 교수는 비()종교인의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에 주목했습니다. 그 추세는 세계적이지만, 우리나라는 빨라도 너무 빨라서 무종교인의 비율이 2021년에는 60%까지 늘어났습니다. 그중 젊은층(1929)은 무려 78%에 달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종교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템플스테이나, 산티아고길 같은 순례길 참가자는 대부분 비종교인이라는 점입니다. 제도화된 종교로부터는 거리를 두지만 개인주의 시대에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려는 열망은 특정 종교를 넘어서 스스로 길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원래 부처님은 불교라는 종교를 만들지 않았다는 조성택 교수의 지적도 신선했습니다. 예수님이 기독교를 만들지 않았고 부처님은 불교를 만들지 않았는데 그들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종교의 벽을 넘어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경 스님은 틈날 때마다 성경을 보며 예수님의 통찰력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그는 종교를 떠나 함께 모여 탁마(琢磨: 학문이나 덕행을 닦음)하다 보면 서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없다의 저자로 유명한 오강남 교수는 성경이 회개(悔改)라고 번역한 메타노이아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완전히 바꾸는 전인격적인 의식의 전환라고 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신은 선악으로 인간을 통제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오히려 메타노이아는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스스로 묶은 포박을 푸는 힘일 것입니다. 그 메타노이아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사도 바울처럼, 프란체스코 성인처럼 어느 날 이해도, 설명도 되지 않는 존재의 빛에 스스로 동화되어 그동안 자기라고 믿어왔던 가짜 자기가 소멸됨을 경험하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룬 삶도 있지만, 그런 극적인 전환은 추구의 대상일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사회를 견디며 외로움을 견디다 어느 날 문득 우연처럼 보이는 마음속 작은 열정을 따라가다 메타노이아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 교수가 소개한 인물 중에 라이먼 파니카(19182010)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사제였던 그는 사제의 자격으로 인도에 가서 다양한 종교를 접하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유럽을 떠날 때에는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인도에 가서는 힌두교인임을 발견하고, 돌아올 때는 불교인이었다. 그렇지만 한시도 나는 그리스도인임을 그만둔 적이 없다.” 파니카가 인도에 머문 시간은 헛되이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번 심포지엄 기획의 의의 중에 무엇보다 종교간 대화의 필요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왜 종교 간의 대화를 해야 하는가? 모든 종교는 자기만의 교리체계가 있는데, 이 교리체계를 공고히 하는 것만 하면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견해에 갇히게 됩니다. 마치 감옥에 갇혀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탈출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 교리를 도그마라고 하는 것과 같이 종교인이 자신의 견해에 갇히는 경향이 심한데, 세상에 대한 견해가 다른 종교와 대화는 자기 생각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생각(견해)의 감옥을 벗어나게 해주는 구세주(?)인 다른 종교는 또한 서로 비교를 통해 자기 종교의 진정한 메시지를 더 깊고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다시 말해 종교의 근간이 믿음인데,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것은 바른 믿음이라 할 수 없으며 자기 생각을 열어 놓고 바른 진리를 향한 순수한 마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맹세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다는 것만으로는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반성하고 성찰하여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바른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에 부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종교인)은 지금 견해가 다르더라도 서로 지속적으로 무엇이 옳고 바른가를 논의하고 논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틀에 갇혀서 자기 것만 고집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 만나 탁마하고 소통함으로써 함께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향상하는 것이 바른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종교인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 2017년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AP=연합뉴스

 

헨리키신저 종교가 가르치는 도그마는 진실이 아니다

 

20231129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미국 외교계의 거목 헨리 키신저는 냉전의 세계 질서를 바꾼 외교 전략가로 평가받는 세계 외교가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습니다. 키신저가 남긴 명언 중에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진실이라고 인식되느냐가 문제다", "종교가 가르치는 도그마는 진실이 아니다. 당연히 가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가짓말인 종교적 관념을 절대 진리라고 인식한다." 키신저도 진실의 가면을 쓰고 선동하는 거짓 인간들을 고민한 것 같습니다. ‘도그마의 노예가 된 종교인을 지적한 것입니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자 반항적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최근 영국 L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나 자신을 문화적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 나는 찬송과 성탄 캐럴을 좋아한다. (영국에서 사는 것은) 마치 기독교 분위기가 가득한 집에 있는 것 같다기독교와 이슬람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매번 기독교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기도 한 도킨스가 나는 문화적 기독교인라고 밝히자 기독교인들이공허한 문화적 기독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망상에 불과한 하나님으로 대체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의 기독교 정체성은 신앙고백에 의해 거듭난 성도가 아니라 기독교 문화가 저변에 깔린 영국인으로서의 문화적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 기독교신문 크리스채너티투데이(CT)’새로운 무신론, 마침내 기독교를 파괴하는 법을 배우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고 문화적 기독교인이란 신이 누구인지 또는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국가적 관습에 따라 우리와 그들이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기사는 CT의 편집장이자 미국 남침례회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러셀 무어가 썼는데, 그는 마귀는 공허한 문화적 기독교를 이용해 장기적으로 우리를 무신론자로 만든다. (마귀는) 십자가를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복음을 문화와 왕관, 성당 또는 크리스마스트리로 대체하는 것임을 알 정도로 영리하다고 했습니다.

 

샷된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친다

 

이처럼 종교가 담을 쌓으면 불합리하고 삿된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지만, 담을 허물고 서로 교류하며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고 서로 탁마하고 비판하면서 보다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종교가 되기를 경쟁하면 함께 성장하고 향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는 물질적 성장은 이뤘지만 정신적 성숙은 이뤄지지 않고 정신적 성장을 주도해야 할 종교가 사회의 모든 분야 중에서 가장 뒤처져 있습니다. 우리는 전통적 가치체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체계는 확립되지 못한 정신적으로 공허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삶의 방향을 제시할 인생관과 세계관, 가치관을 제공하는 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일반인들을 정신적으로 설득하고 인도할 만한 정신적 수준을 성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갈수록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탈종교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의 질적 성숙과 향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간의 대화가 그 단초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종교간 대화를 할 수 있는 바탕은 인간은 모두 종교적 심성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냥 살면 되는데 사는 게 무엇인지를, 삶 전체를 조망하면서 반성적으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여기는 어디인가? 등 나와 세계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이며 전체적인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해답를 구하고자 하고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삶이라는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려는 내면적 욕구가 있고 이것을 종교적 심성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만 있는 특이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종교적인 동물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옥용 CRS NEWS 고문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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