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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 ‘허무’, 질서있는 ‘혼돈’을 경험한 날의 기록

신민형 | 기사입력 2024/07/22 [09:35]
‘허무’에서 삶의 긍정을, ‘카오스’에서 혼연일체를 찾는다

낙관적 ‘허무’, 질서있는 ‘혼돈’을 경험한 날의 기록

‘허무’에서 삶의 긍정을, ‘카오스’에서 혼연일체를 찾는다

신민형 | 입력 : 2024/07/22 [09:35]

하늘소풍길 단상

 

1.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침, 같은 층에 사는 시각장애인이 조심조심 아파트 현관 앞 계단의 위치를 가늠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장애인용 택시에서 기사가 내려 그녀가 계단을 내려가기 전 택시로 안내했는데 이날따라 스스로 우산을 받쳐들고 나섰다. 담배를 피고 들어오다 그러한 모습을 마주쳤는데 대뜸 택시가 왜 안 들어오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내 불만과는 달리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4103호를 못찾는다고 해서요라고 맑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그리고 내가 보살펴 줄 시간도 없이 우산을 펴고 계단을 내려와 정문을 향해 걸어 갔다. 종종걸음으로 폭우를 헤치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안내해줘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채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면서 안내 못해준 것을 후회하며 그녀의 앞 못보는 현실, 세상 구경 못하는 답답함이 전이된 듯 내 마음이 아파왔다.

 

시각장애인 가족은 세 식구이다. 아내는 전혀 못보지만 남편은 그런대로 아내를 안내할 수 있는 약시이다. 중학생 아들 역시 약시인데 엄마를 보호하고 나선다. 남편과 아들은 인사성도 좋아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먼저 반갑게 인사해준다. 보면볼수록 따뜻하고 명랑한 가족이다. 그들을 마주치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그래서 아들아이를 볼 때면 내가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어디 갔다 오느냐” “오늘 학교생활은 재미있었냐고 반드시 관심을 표명하게 된다. 시각장애인 부부는 좀 더 여유있는 미래 살림을 위해 최근에 각자의 직장을 얻어 각각 출근하고 있다.

  

▲ 폭염 속 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나들이를 보며 그들이 살아갈 세상의 험난함을 미리 걱정하는 것은 부정타는 일이었다. 그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즐거운 현재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희열을 느낀다  © CRS NEWS

 

2.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공원으로 소풍 나온 유치원 어린이들을 마주쳤다. 색색의 양산을 받쳐들고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가는 모습이 앙징스러워 절로 흐뭇해졌다. 그 천진무구함에서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험난함을 미리 걱정하는 것은 부정타는 일이었다. 그냥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즐거운 현재를 마냥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환희를 느낀다.

 

그러나 한편 구석에서 머리와 몸이 뒤틀린 지체장애아가 눈에 띄었다. 유치원 선생의 손에 이끌려 친구들에게서는 소외된채 절룩절룩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사는 세상의 절망감에 휩싸이게 된다. 무더위에 찌든 노인, 병자, 빈민 등의 고충과 아픔이 전이된 듯 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달리 무엇을 할 수 없음은 물론, 나 역시 세상 살아가면서 불치의 심신 장애를 겪고 있다는 자괴감. 비참함, 비루함까지 느끼게 했다.

 

이튿날 공원 계단길에서 엄마와 훈련하는 장애아를 또 만났다. 다리 골절 이후 나 역시 훈련을 위해 도서관가는 길로 이 계단길을 우회하는데 동병상련이 더해졌다. 아무래도 훨씬 말짱한 내가 그들을 앞서게 됐다. 계단에 앉아 쉬는 그에게 잘 올라가는구나라는 덕담을 하며 몇계단 지나치다가 멈춰 계단에 앉았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나를 보며 그들이 절망감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지나칠 때 할아버지보다 잘 올라가는구나라고 외쳤다. 엄마는 신났다. “할아버지가 칭찬해주시네~ 인사드려야지라고 하자 장애아는 어눌하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힘든 발음이었지만 밝은 목소리였다.

 

▲ 삶의 풍경에서 절망감과 희열, 허무함과 낙관을 동시에 느끼고 보는 오락가락 혼란스런 감정. 그러나 이러한 혼돈(카오스)이 사람과 우주의 정확한 제 모습일 수 있다. 사진은 혼돈(카오스)의 픽사 이미지.

 

3.

위와 같은 삶의 풍경에서 절망감과 희열, 허무함과 낙관을 동시에 본 셈이다. 그리고 그 상반된 개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혼란, 혼돈일 수 밖에 없는 상념들이 이중사고(二重思考)로 아무렇지 않게 수용된 것이다.

 

실상 내 안에 뿌리깊은 절망감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던 게 내 삶이었던 것 같다. 일종의 철학공부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자세를 정립하며 인생의 허무함과 무의미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에 대해 그 실체를 절감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도 나는 허무, 절망감, 두려움 속에서 허무 탈피의 시도를 해봤다. 치기어린 감상적 접근이었다. 따사로운 햇살, 부드러운 바람이 살갗에 스치는 감촉으로 허무를 극복한다고 자부했으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창창한 앞날을 위해 받아들여야만 했다.

 

때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삶을 살아야 한다는 철학도 가졌다.

 

이후 과학적 사고에 매력을 느겼을 때는 육신은 죽어도 사랑의 DNA‘는 영원히 이어진다는 또 다른 감상으로 허무탈피를 시도했다.

 

그리고 인류와 우주의 빅히스토리를 접하고는 좀 더 이성적인 결론을 내렸다. “수십억년전 원자로서 생명체가 시작됐듯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다시 원자로 돌아간다

 

그래서 태어날 때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죽음에서도 두려움, 절망감 같은 생각을 아예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 다시 반복해 하나님한테 귀의하거나 더 감상적, 낭만적 접근으로 허무하며 절망스럽기만한 이 세상을 헤쳐나갈지 나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인간 삶과 세계 자체가 무의미하고 허무한 존재인 걸 인정하고 깨달으며 자신이 원하는 목적, 의미, 가치를 나름대로 부여할 수 있는 자유로워지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한 의지가 바로 긍정적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삶과 죽음의 의미, 허무와 낙관, 삶의 희열과 측은지심 등 모든 희노애락에 대한 평가와 수용에서 사람마다 그리고 한 개인의 마음에서도 오락가락 혼란, 혼돈이 있을 것이다.

 

낙관적 허무, 질서있는 혼돈이 우주와 하나님의 이치에 따른 완전한 상태

 

그렇다면 그 혼란과 혼돈 역시 낙관적,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

 

혼돈(카오스.chaos)은 그리스 우주개벽설에서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 혼돈이나 무질서 상태를 이르며 보통 부정적 의미로 쓴다. 그러나 카오스이론의 진정한 의미는 무질서하게 보이는 혼돈 상태에도 논리적 법칙이 존재하므로 무질서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현상 속에 숨어 있는 정연한 질서를 밝혀내자는 긍정적 뜻이 담겼다.

 

더 나아가 장자는 혼돈을 거대한 혼연일체(渾然一體)’로 보았다. 그는 혼돈을 모든것의 근원' '모든 가능성의 총체'로서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및 지리서 ‘산해경’에 나오는 제강(帝江)의 모습. 장자는 제강을 중앙 천제, ‘혼돈’이라 했다.

 

장자 응제왕편에는 혼돈의 죽음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남쪽 바다의 임금을 ()이라 하고, 북쪽 바다의 임금을 ()이라고 하였고, 그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하였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때마다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길이 없을까 의논했다.

"사람에겐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숨 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이런 구멍이 없으니 구멍을 뚫어줍시다" 했다.

하루 한 구멍씩 뚫어주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구멍없는 혼돈이 완전한 상태인데 이에 불완전한 분별의 구멍를 냄으로서 결국 질서를 파괴했다고 하는 것이다. 혼돈 자체가 바로 삶과 우주 질서이다. 혼돈을 분별해 나름대로 정리하다간 삶이 무너진다. 분별심 갖지 않고 긍정적, 낙관적으로 받아들여야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허무절망’, ‘희열측은지심을 동시에 경험했던 혼란스런 날들을 기록하며 그 모두를 혼돈의 질서’-우주와 하나님의 이치로 받아들여야겠다는 단상을 하며 이 글을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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