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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기독교의 원효’, ‘기독교의 고운’, ‘기독교의 퇴계와 율곡’은 없는가

이호재 | 기사입력 2024/09/27 [05:55]
이호재의 ‘한국종교사상가 한밝 변찬린’⓶-(2)

어찌하여 ‘기독교의 원효’, ‘기독교의 고운’, ‘기독교의 퇴계와 율곡’은 없는가

이호재의 ‘한국종교사상가 한밝 변찬린’⓶-(2)

이호재 | 입력 : 2024/09/27 [05:55]

<연재순서>

1.란밝 변찬린은 누구인가?

2. 풍류의 화신체 : 풍류객, 풍류심, 풍류체

(1) 풍류객 : 고통을 극복한 무소유의 면류관

(2) 풍류심 : 새로운 성경해석으로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혁신의 기틀을 놓다

(3) 풍류체와 포스트휴먼 : ‘로고스늄을 점화하라

3. 동방의 선맥 르네상스의 대선언: 고조선문명 풍류(선맥)담론 영성(靈聖)시대

4. 동방의 구도자 새밝'의 탄생

 

풍류심을 구현한 역사적 위인은 선맥에서 발현한다. 원효, 지눌, 서산, 퇴계, 율곡, 다산, 혜강, 한밝 등은 외국에 유학하지 않고 종주국의 사상을 포용·회통·창발하는 저술을 낸 토종 사상가이다. 변찬린이 진리를 향한 구도의 길에 나가게 된 동기도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자신을 자각하는데서 비롯된다.

 

얼이 빠진 이 나라의 구도자들은 선교사들이 전해준 교파와 교리의 주형에 찍혀 고정화되었고 우리들의 몸에 맞지 않는 피에로 같은 서구신학의 옷을 입고 어릿광대의 춤을 추고 있습니다. 교파와 교리의 주형에 찍혀 죽은 내 심령을 자각하던 날 저의 출애굽은 감행되었고 그날부터 시작된 방황과 고뇌와 모색과 초극의 가시밭길은 저를 현대의 광야로 퇴수시켰습니다.(변찬린,성경의 원리 , 572-573.)

 

 

변찬린은 그동안 종주국에서 발생한 종교와 철학 등 종주국 담론을 수용하여 사상의 대리전을 열었던 사대주의자와 식민주의자들의 학문적 경향을 탈피한다. 그의 당초 꿈은 세계 경전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종교계에서 성서가 서구 기독교의 교파신학과 교리에 의해 성서의 진리와 영성이 충분히 해명되지 못한 사실을 직시한다. 이는 그가 기독교의 성서라는 틀을 탈피하여 인류의 경전인 성경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포착하는 계기가 된다. 이를 근거로 원효, 퇴계, 율곡 등과 같은 한민족의 경전 해석의 정신을 계승하여 기독교의 성서 해석에 착수한다.

 

더럽혀진 역사를 보면 원효같은 위대한 화쟁혼이 있었고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서도 풍류의 얼을 고이 간직한 고운이 있었고 썩은 선비들이 사색당쟁의 개판을 칠 때도 퇴계와 율곡과 같은 사상의 거봉들이 정신의 산맥을 융기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기독교의 원효’, ‘기독교의 고운’, ‘기독교의 퇴계와 율곡은 없는가(변찬린, 성경의 원리 , 9-10.)

 

원효가 당나라의 종파불교가 신라에 재현되자 화쟁론으로 통불교라는 한국 불교 전통을 만들었듯이, 변찬린은 서구의 다양한 교파신학이 한국에 재현되자 풍류심으로 서구 성서해석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성서읽기로 성경해석의 전통을 전환시킨다.

 

성경의 원리4부작은 어느 교파의 교리를 막론하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도록 일관된 해석을 한 교파는 없다.”고 진단하며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한국의 선맥으로 서구의 성서해석학적 전통을 포월한 새로운 성서해석을 내놓는다. 게다가 과학을 포함한 현대 학문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서구의 성서읽기를 뛰어넘는다. 더 나아가 역()과 성서, 한자와 성서, 민족종교의 경전과 성서, 경전과 과학을 간텍스트적으로 대화시켜 풍류심을 내장한 한민족의 경전해석의 우월성과 보편성을 증명한다.

 

그의 저술 자체가 한국의 고유한 선맥의 풍류성이 가진 사유의 자발성과 포용성과 회통성과 창발성을 학술적으로 증명한 현대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는 구약의 야훼는 이스라엘의 부족신으로서 신적 존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모세와 예수의 부활의 도맥과 에녹과 멜기세덱과 엘리야의 변화의 도맥을 제기하여 서구 신학의 배타적인 구원관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심지어 기독교의 부활과 불교의 윤회사상을 대화시키고 있다. 그의 사상적 기저에는 한국의 전통 도맥인 선맥(僊脈)’이라는 종교적 기제가 작동한다.

 

성경 속에 뻗어내린 대도의 정맥(正脈)은 선맥(,))이었다. 성경은 선()을 은장한 문서이다. 에녹과 멜기세덱과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로 이어지는 도맥은 이 날까지 미개발의 황금광맥이었다. 산자의 영맥인 선()은 동방의 지혜가 아니면 해독할 수 없는 비의이다. 성경의 원리··하 삼권은 선맥을 따라 난삽한 성경의 암호를 해독하였다.(변찬린,성경의 원리 , 11.) 

 

수입신학이 범람하는 식민신학과 상황신학에 자족하는 사대신학의 경향을 가진 기독교 신학자와는 괘를 달리하여 변찬린은 새로운 성서해석서를 쓴다. 새로운 성서해석이 없는 기독교의 다양한 신학은 서구 신학의 아류적 신학사유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성서해석이 없는 기독교 신학은 다른 종교를 정복하는 배타적인 태도 혹은 종교 대화를 표방한 느슨한 기독교 지상주의에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신학적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류심은 특정 사상과 특정 교리의 대리인의 입장이 아닌 풍류객으로서의 역사적 자의식을 가지고 진리를 찾는 한국인의 해석적 전통이다. 풍류심은 다양한 언어를 회통하여 메타언어로서 독창적인 해석을 하는 의미체계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런 경전해석의 원리와 구조는 다른 종교의 경전해석에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포용적이다. 한국교회사가 박종현은 성서 전체를 하나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해석한 경우는 변찬린이 처음이었다. 그의 이러한 성서 이해는 기독교를 서구의 역사적 전통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 탁월한 시도였다.”라고 평가한다. 성서학자 조용식은 변찬린의 성서해석이 성서해석의 나침반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종교학자 윤승용은 변찬린 선생의 성경해석학과 한밝 사상은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 등과 같은 기독교 정복주의 태도를 가진 토착화 신학 그룹, 유영모, 함석헌 등의 주체적인 성경해석그룹, 영통계시파들의 문제의식을 아우르는 신학사상으로, 또한 새 축()의 시대 한국적 기독교의 해석 틀로 평가한다.

 

변찬린만큼 한국의 경전과 성서를 능통하게 대화시키고 한국의 도맥인 선맥과 세계경전인 성서를 포월적으로 해석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래 통전적인 성서해석서로는 성경의 원리4부작이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다. 풍류심은 변찬린의 저술에서 보듯이 다른 사상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창발하는 포월적인 마음이지만, 동시에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인간의 자유한 본성을 말하기도 한다.

 

풍류심은 선맥에서 발현하는 자유한 한국인의 본성이다. 이런 인간 본래의 마음을 회복한 풍류심은 인공지능과 같은 비유기체 생명과는 근본적으로 차별화된다. 인공지능은 지식의 축적으로 작동되지만, 풍류심은 축적된 지식을 버릴 수도 있는 자율적인 심성이다. 지식의 노예가 된 인공지능과 인공생명과는 달리 풍류심을 가진 인간은 지식으로부터 자유롭다. 풍류심은 인공지능의 노예에서 탈피할 수 있는 한민족의 심성에 내장된 풍류의 향기이다. 나날이 지식을 더하는 것(爲學日益)은 인공지능의 삶이지만, 나날이 덜어내어 도를 구현하는(爲道日損) 풍류심은 풍류체로 탈바꿈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필자 이호재(전 성균관대학교 교수)의 주요 저서로 한밝 변찬린 : 한국종교사상가〉 〈선맥과 풍류해석학으로 본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 포스트종교운동: 자본신앙과 건물종교를 넘어등을 비롯하여 중국 종교와 한국 종교에 대한 국내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이번 연재는 14명 철학자들을 시대별로 정리한 한국철학 다시읽기-인물로 보는 한국철학사’(모시는사람들 )에 발표한 변찬린-선맥과 풍류도의 하늘을 열다편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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