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불교사상, 노장사상 용어 이용하여 해석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95)
격의불교(格義佛敎)란 인도에서 중국에 전래된 산스크리트로 쓰여진 불교의 경전을, 중국 고래의 고유의 사상인 유교사상이나 특히 노장사상의 용어를 이용해 해석하려고 한 태도이다.
도교의 삼청(三清)은 하나인 도(道)의 다른 모습인 옥청(玉清), 상청(上清), 태청(太清)을 가리킨다. 삼청은 도교의 천존(天尊) 즉 최고신이다. 옥청은 원시천존(元始天尊), 상청은 영보천존(靈寶天尊) 또는 태상도군(太上道君), 태청은 도덕천존(道德天尊) 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불린다.
삼청은 도교의 우주관에 연유한 사상이다. 이 교의에 따르면 처음에 일기(一氣)가 있었는데 이것이 삼기(三氣)로 나뉘고 삼천(三天)이 되었다. 일기가 대라천(大羅天)이고 삼기는 청미천(淸微天)·우여천(禹餘天)·대적천(大赤天)인데 이것이 또한 삼청(三淸)이고 삼경(三境)이다. 하나인 도(道)가 세 신(神) 또는 신선(神仙) 또는 하늘로 나타나는 것을 일기화삼청(一氣化三清: 하나의 기운이 세 가지 맑음으로 나타나다.)이라고 한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이미 도교사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불교가 중국에 와서 적응하는 데는 도교적 용어 이용과 해석이 필요했다. 인도 서역의 언어로 쓰여진 불교 경전이 중국에서 한역(漢譯)되기 시작한 2세기경에는 기후풍토나 사생관 등 문화적인 차이가 큰 개념이나 중국에는 없는 사물이나 개념을 번역하는 경우에는 황로사상(黃老思想)이나 유교 등 중국문화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와 그 유의에 따른 조어가 쏟아졌다. 따라서 의도하지 않더라도 한자가 가진 중국 사상의 이미지와 불전의 내용을 겹치거나 불전을 개변하는 형태로 이해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붓다(Buddha)'는 중국 성인에 해당하는 '대성(大聖)'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은 '성도(聖道)'나 '성교(聖敎)'로 불리며, 그 학술 연구는 '성학(聖學)'이라고 불렸다.
위진(魏晋)의 시대에는 한역 경전에 근거한 불교가 퍼졌지만, 현학이나 유교를 ‘외전(外典)’이라고 부르고, 유교의 경전 해석학의 수법을 따르고, 중국 고전의 개념을 불법에 적절히 적용시켜 교리를 이해하는 '격의'라고 칭하는 해석법이 '고승전' 중인 인물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축법아(竺法雅)나 강법랑(康法郎) 같은 중국 승려들은 불교의 오계(五戒)를 유교의 오상(五常:仁・義・礼・智・信)에 배당해서 설명해서 귀족이나 사대부에게의 강석(講釋)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오호 16국 시대(五胡十六国時代)가 되어 불도징의 문인이었던 석도안은 격의 불교에서는 불교 본래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불교의 이해에는 불교 본래의 해석에 의한 이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도안 자신도 때로는 스스로 격의를 이용하면서도 안이한 해석법을 비판하고 중국 불교의 수정을 도모했다. 동시대에 장안(西安)에 내조한 쿠마라지바에 의한 새로운 대량의 번역과 함께, 격의불교는 일대 전환점의 계기가 되었다.
격의(格義)는 일종의 해석학(解釋學, Hermeneutics)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석학이란 해석의 이론과 방법론이다. 특별히 성경 텍스트, 지혜문학, 그리고 철학 텍스트를 해석하는 이론이며 방법론이다. 성경 해석학을 포함하여 전통적인 해석학은 기록된 텍스트 특별히 문학, 종교 그리고 법의 분야에 있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해석학은 기록된 텍스트와 관련된 문제만을 포함하지 않고, 해석하는 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이것은 의사소통의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형식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전제, 전이해, 언어와 의미를 다루는 철학, 그리고 기호학과 같은 의사소통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관점도 포함한다. 철학적 해석학은 첫째로 진리와 방법에서 발전된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 지식이론 그리고 때때로 폴 리쾨르와 관련된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초기불교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교 전도사들이 중국에 왔을 때, 유교나 도교는 이미 무르익어 있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 온 것은 한 왕조(기원전 206년 ∼서기 220년)시대이다. 한 왕조시대에 중국에 불교가 수용되었고, 불교 선교사들은 육상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와 해상 경로를 모두 활용했다. 처음에는 불교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으며 종종 도교와 혼동되거나 혼합되었다. 중국인은 두 종교 사이에 많은 유사점을 보았다. 유교 엘리트들은 신흥 외국종교에 대해 많은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초기 선교사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불경 번역이었다. 현존하는 최초의 불교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한 사람은 2세기 파르티아의 안시가오(安世高An Shigao)가 낙양(洛陽)의 수도에서 역경(譯經)한 사실이다. 그의 작업은 쿠샨(월지) 승려 록칵세마(Lokakṣema, 支婁迦讖, 164~186 CE)의 광범위한 대승 번역과 담마락사(축법호 Dharmarakṣa c. 233∼310)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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