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찬린의 새종교관과 증산사상 이해에 대한 연구⓶
성경은 동방의 지혜가 담겨있는 선僊)을 은장한 문서변찬린의 새종교관과 증산사상 이해에 대한 연구⓶
변찬린의 새종교관과 증산사상 이해에 대한 연구 <연재순서> Ⅰ. 머리말: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와 민족종교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종교관 제시한 변찬린 Ⅱ. 변찬린의 선(僊) 중심적 종교론 Ⅲ. 풍류도/선도의 관점에서 본 변찬린의 증산사상 이해 Ⅳ. 한국 근대 자생신종교의 비교: 동학의 시천주와 증산의 태을주 Ⅴ. 맺음말 : 풍류도의 회통적 영성과 선도적 특성
1. 선(僊) :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는 영생의 대도
변찬린의 종교론은 근본적으로 단군의 신선사상으로부터 비롯되는 풍류도(風流道)의 관점으로 기독교와 유불선과 민족종교를 회통하는 사상을 보여준다.
변찬린은 죽음의 유한한 한계를 극복하고 무한한 영생으로 존재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종교의 본령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실현하는 풍류도의 본질을 선(僊)으로 보는 가운데, 선을 특정한 역사적 종교 전통과 일치시키는 것을 극력 경계하였다. 특히 김범부처럼 화랑도(花郞道)로 보거나 대도(大道)에서 분립된 열교(裂敎)로 인식하는 것을 거부하는 한편, 죽어서 차안(此岸)인 이승에서 피안(彼岸)인 저승으로 가는 ‘피안종교’가 아니라 ‘비양승고’(飛揚昇高)를 통해 살아서 새 이승인 하늘로 옮겨가서 신선으로 천거(僊去) 혹은 천화(僊化)하는 대도로 보았으며, 선의 도비(道秘)가 상실된 이후 단군처럼 산(山)에 가서 바람결에 신선으로 풍류체(風流體)로서 천거하는 선도(仙道)가 등장했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선이야말로 선도의 본질적 근원이고, 선도는 선의 도비를 상실한 것으로서 구분된다. 이는 마치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생전변화가 사후부활로 변화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죽음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에서는 양자가 동일하지만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초월하는가 아니면 죽음을 경험하고나서 거듭는가로 양자는 구별된다. 특히 변찬린의 주저‘성경의 원리’에 의하면, 선(僊)은 무명(無明)의 죄로 인해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신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선악(善惡)과 생사(生死)의 현상계로 타락한 인간이 영원한 생명나무를 회복하여 ‘생전변화’나 ‘사후부활’의 두가지 방식으로 무한한 영생을 실현하며 선화하는 영적 풍류체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기독교의 성경 창세기2장 9, 16~17절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타락의 죄는 신과 함께 하는 본래적 자리에서 이탈한 실존적 고통을 초래하는데,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 있는 두 가지 나무 중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으면 죽게 되니 먹지 말라고 경고했던 하나님의 명을 어긴다. 그 결과에 따라 인간은 선악과 생사가 오가는 시공간적 현상계의 한계에 얽매이는 고통스런 실존으로 전락하였다. 이에 따라 영생을 상실하고 죽음을 맞는 육적 존재로 전락한 인간은 영생을 회복하는 영맥의 풍류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변찬린의 종교론의 핵심이다.
한편, 성경의 원리 상권 도맥론에서 변찬린은 선악과를 범한 죽은 자의 맥인 육맥(肉脈)과 달리 엘리야적 생전변화의 종교와 모세적 사후부활의 종교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선악과를 범하여 죽음의 실존적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인간은 엘리야나 멜기세덱처럼 생전에 죽 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는 평화의 종교와 선화의 도를 좇아 죽음이 이르기 전에 생전에 영체(靈體) 혹은 풍류체로 변화하여 승천하든가, 아니면 모세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피의 종교, 희생의 도에 따라 죽고나서 부활하든가 양자택일을 통해 무한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전자가 선(僊)의 장생불사(長生不死), 천의무봉(天衣無縫), 환골탈태(換骨奪胎), 우화등천(羽化登天)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생노병사(生老病死), 묘지인 봉(墓地印封), 시해선(屍解仙)의 선도(仙道)에 상응한다. 양자는 영으로 수렴하는 점은 동일하지만, 산 자가 죽지 않고 영체로 변화하는가 아니면 죽은 자가 부활하여 영체로 거듭나는가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변찬린은 무명(無明)으로 인해 혈(血)과 육(肉)에 따라 살고 죽는 생사윤회의 타락한 육적 존재자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시작과 끝도 없어서 생사 윤회로부터 해방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요한복음 3장 6~8절에 근거하여 성령의 바람처럼 풍류체(風流體)를 이룬 존재는 생명의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영생의 존재로 옮겨가는 선(僊)으로 이해하였다.
여기서 죽음을 극복한 영생의 풍류체는 변화나 부활을 통해 선화되고 영화된 존재로서, 혈육의 동물적 육체나 마음이나 정신의 혼과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영적 존재를 뜻한다. 따라서 엘리야적 변화의 종교와 모세적 부활의 종교 또는 변화의 선맥과 부활의 영맥에 따라 영적 존재로서 영생하는 선의 대도는 동방의 지혜에 의해 바르게 대각(大覺)할 수 있고, 성경은 그러한 동방의 지혜가 담겨있는 선僊)을 은장한 문서이며, 성경 속에 뻗어내린 대도의 정맥은 선맥이 된다. 변찬린은 이러한 풍류도와 선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일관성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관점으로 유불선 등의 세계종교를 해석하고 그것을 확장하여 근대 한국의 민족종교들에 대해서도 새종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였다.
2. 원시반본(原始返本) : 세계종교에서 풍류도로의 선(僊)적 회귀
한편, 변찬린은 풍류도와 세계종교를 각각 본래적 대도의 정맥과 비본래적 종교의 지류로 구별하였다. 그는 문명권을 형성한 세계종교 또는 고등종교들이 천국이나 극락을 지향하는 피안의 종교를 제시함으로써 생사의 현상계로 전락하면서 선의 대도가 지녔던 정맥에서 이탈하였다고 보았으며, 선의 정맥, 대도의 본래적 영생으로 선적 회귀를 하는 것을 구원으로 이해하였다. 특히 타락한 인간과 무관한 멜기세덱이 본래적이며 제1의적 도맥인 선맥인 반면, 타락이후의 인간을 위한 예수의 비본래적이고 제2의적인 부활의 영맥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의 선맥과 영맥을 대도인 선의 길, 본래의 길로 확장하여 이해하면서 기독교 외에도 유불선 등의 세계종교들이 제2의적 길로서 등장했음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선(僊)의 길은 인간(人間) 앞에 개명(開明)된 본래(本來)의 길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길을 상실한 후 제이의적(第二義的)인 길인 유불선(儒佛仙)에 의지하여 영원한 세계로 향한 여로(旅路)에 오르기 시작했다. 현대인은 유불선 삼교(三敎)와 다른 종교(宗敎)에 지쳐 있는 몸들이다.
모든 종교는 타락된 다음에 깨달은 종교이므로 이는 본래적인 자리가 아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유불선과 같은 종교는 남상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타락된 다음 무명(無明)의 자리 속에서 깨친 종교가 유불선 기타 다른 고등종교로 나타났던 것이다.
변찬린의 종교관에 의하면, 세계종교는 선의 대도를 잃어버림으로 써 죽어서 영혼이 천당이나 극락에 간다는 피안종교로 변질된 것이다.
본래적인 종교의 도맥(道脈)이 상실될 때 나타난 종교가 유불선 기타 다른 고등종교였던 것이다. 본래의 대도가 폐해진 후 나타난 인의의 종교는 본래적 도인 대도(大道)의 일부분만 본 열교(裂敎)로서 인위적 유위의 도를 노출한다. 이에 비해 “대도(大道)는 장생불사(長生不死), 환골탈태(換骨奪胎), 천의무봉(天衣無縫),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종교이므로 사후(死後)에 죽어서 천당(天堂), 극락(極樂)을 약속하는 종교(宗敎)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대도는 살아서 승천(昇天)하는 종교이지 죽은 다음 영혼을 승천시키는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선의 대도와 세계종교는 각각 본래와 비본래, 대도와 열교, 생전승천의 선과 사후 천당극락의 피안종교로 대별될 수 있다.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분석하면서, 변찬린은 “풍류도는 샤머니즘처럼 유불선을 혼합한 종교가 아니라 본래부터 풍류도는 삼교의 진리를 그 안에 내포(內包)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샤머니즘의 혼합주의와 풍류도의 내포/포함론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한편, 풍류도를 “열교(裂敎)화한 고등종교들을 하나로 통일하고 조화할 수 있는 신기(神器)”로 설명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변찬린은 「대몽가(大夢歌)」라는 시를 통해 선악과를 먹은 죄인의 신화와 종교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생명나무 영생 열매를 따주어 영의 시대를 개명하기 위한 “빛나는 사람, 위대한 사람, 거룩한 사람, 영원한 사람”으로 새 날의 새밝을 기다리며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제사하고 모세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이사야의 열심히 예언하고 세례 요한의 성난 음성으로 증언하는 한밝의 선각자 혹은 구도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고백한 바 있다.
내 뒤에서 한 떼의 씨알이 오고 있습니다. 내 뒤에서 새날의 新民이 到來하고 있습니다. 내 뒤에서 거룩한 全體가 回歸하고 있습니다. 내 앞에서 영원한 하나님이 오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러한 새 날의 새밝의 도래와 영원한 하나님의 강림이 뒤와 앞에서 서로 만나는 신인합발을 노래하였다. 이러한 변찬린의 영성은 신비주의적 영성의 보편성과 다문화적 수용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 한국종교문화의 현대적 에토스라고 평가할 만하다.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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