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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령 강림과 수운의 시천주,증산의 태을주는 근원적 모성을 향한 원시반본의 주문

박종천 교수 | 기사입력 2024/11/07 [09:46]
변찬린의 새종교관과 증산사상 이해에 대한 연구

기독교 성령 강림과 수운의 시천주,증산의 태을주는 근원적 모성을 향한 원시반본의 주문

변찬린의 새종교관과 증산사상 이해에 대한 연구

박종천 교수 | 입력 : 2024/11/07 [09:46]

<연재순서>

. 머리말: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와 민족종교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종교관 제시한 변찬린

. 변찬린의 선() 중심적 종교론

. 풍류도/선도의 관점에서 본 변찬린의 증산사상 이해

. 한국 근대 자생신종교의 비교: 동학의 시천주와 증산의 태을주

    (맺음말 : 풍류도의 회통적 영성과 선도적 특성)

 

1. 변찬린의 주문관 : 신인감응의 주술적 기도문과 주문의 음악성

 

한국 근대 자생신종교들은 상대적으로 수행이나 수련을 중심으로 삼는 유교나 불교에 비해 주송(呪誦)이나 부적 등의 술법을 통한 통신(通神) 선도적인 경향이 강하다. 유교나 불교 등이 상대적으로 엘트적인 자력 수행이 중심이 되어 대중 전통을 이끌어 가는 반면, 최수운이나 강증산 등의 카리스마가 창도한 선도 중심의 민족종교들에 서는 수명이나 복록에 대한 기복적 욕구가 강한 대중들의 민간종교 전통에서 주목받았던 기도, 주문, 부적 등의 타력 신앙이나 주술-의례적 술법이 종교적 호소력이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근대 민족종교들에서도 원불교처럼 자력수행의 수련을 강조하는 우도적 경향과 동학이나 증산계 종단들처럼 타력수행의 통신 주술-의례를 역설하는 좌도적 경향이 공존했으나 선도를 중심으로 유불선을 종합하는 민족종교들은 대체로 유교나 불교에 비해 대중적인 주술-의례적 수행이 현저하게 부각되었다. 주문이나 부적 등의 주술-의례적 수행은 고매한 종교적 이상의 추구를 위해서 경전적 공부나 수양/수행에 정진하는 엘리트적 흐름과는 달리 기복적이고 직관적이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호응이 컸다.

 

그러나 주문을 포함하여 음악성이 강한 짧은 운문 형식은 반복적인 구송(口誦)의 실천으로 대중적 종교 전통 뿐만 아니라 엘리트적 경향이 강한 불교와 유교 등에서도 상당히 광범하게 나타났다. 실제로 불교의 진언(眞言) 외에도 유교의 강독(講讀)이나 불교의 강송(講誦) 등에서도

일정한 음악적 리듬에 따라 경전을 독송하는 전통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정하게 정례화되어 의례화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나아가 조선 후기에는 주술적 효과를 기대한 짧은 주문은 아니어도 일정한 음악적 형식을 갖춘 종교가사가 불교, 유교, 천주교, 동학, 신종교 등을 막론하고 광범하게 종교적 연행의 의례적 예술 형식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요컨대, 엘리트 전통이든, 대중 전통이든 간에, 자력신앙이든, 타력신앙이든 간에 음악적 리듬의 반복적 실천으로 나타나는 주술-의례적 실천은 정신의 집중이나 신적 존재와의 소통을 위한 보편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변찬린은 흔히 대중의 저급한 기복적 욕망의 발현으로 평가절하 당하곤 했던 주문을 기도와 같이 대중 전통과 엘리트 전통, 저급종교와 고급종교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새롭게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저급종교나 고등종교를 막론하고” “주문, 진언, 영가, 기도문이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모든 주문(呪文)은 강신(降神)의 비의(秘義)”이자 종교적인 신비(神祕) 경험 또는 이적기사(異蹟奇事)와 연관된 주술(呪術)의 중심으로 이루는 내용으로서 일종의 기도문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주문을 일종의 기도문으로 이해함으로써 종교적 보편성 차원에서 이해하는 한편, 강신을 통한 종교적 신비 경험이나 이적기사와 연관된 주술적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특히 강신의 소통과 연관하여 주문이 신앙 대상인 종교의 신들을 강령(降靈) 혹은 강신케 하는 영()적이고 종교적인 다이얼이나 채널이자, 천계(天界), 신계(神界), 영계(靈界)에서 지상으로 발신하는 영파(靈波)와 영감(靈感)에 감응(感應)하고 수신하는 영적 매스미디어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상에 수신하는 현상이 종교와 교파별로 각각 다르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주문은 강신 혹은 강령을 통해 신명계와 인간계가 소통하는 영적 감응을 이루는 주술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변찬린은 일반적으로 간과되었던 주문의 음악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역설하였다. 그는 주문의 반복적 암송이 영적이고 음악적인 리듬과 템포를 형성하여 종교적인 신비한 엑스터시 경험을 하게 만든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주문의 영적 음계에 따라 강신현상과 엑스터시의 경험이 일어난다는 점을 불교의 진언과 김일부의 영가무도를 통해 논의하였다.

 

나아가 음악 가운데서도 농악(農樂)만을 즐겼던 증산의 사례를 통해 단순한 리듬과 빠른 템포를 반복함으로써 흥을 돋우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음악성이 종교적 황홀감인 엑스터시와 상통하는 음악성임을 강조하였다.

 

변찬린의 설명에 의하면, 종교적 엑스터시와 상통하는 농악의 흥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농민들의 표어가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사람 농사하는 도의 벼리/강령임을 대각(大覺)한 증산이 시천주(侍天呪)와 태을주(太乙呪)의 반복적인 리듬과 템포 속에서 신이 강령하는 비의를 터득하는 매개체였다.

 

이에 따라 변찬린은 농악의 흥과 상통하는 시천주와 태을주라는 주문의 영력(靈力)이 민중 농민들의 심성과 혼 속에 깊은 감화를 주도록 만든 수운과 증산이 주문의 주술적 음악성을 통해 부르조아와 지배계급의 종교를 만들지 않고 민중과 농민의 종교를 만든 위대한 종교적 천재라고 평가하였다.

 

변찬린은 증산이 추구했던 후천개벽의 선경이 대중의 종교, 광제창생의 종교이므로 당시 민중인 농민들의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농악과 상통하는 주문에 뿌리박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으며, 그 증거로 농민, 여성, 무당처럼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하층 서발턴들과 양반, 남성, 제도권 성직자 등의 상층 지배층 간의 선천상극의 갈등을 해소하는 해원공사의 차원에서 선천(先天)의 도가(道家)에서 음식 금기로 설정했던 개고기를 증산이 상등인의 고기로서 즐겼다는 점에 대해서 개고기를 탐식(貪食)한 것이 아니라 도식(道食)한 것을 설명하였는데, 이는 개고기의 도식에 대해서 소수의 부르조아와 지배계급의 종교로 타락한 선천 종교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농민 대중의 광제창생을 위한 후천개벽의 일환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대순진리회의 전경에 의하면, 증산이 개고기를 상등인의 고기로서 즐기셨다라는 점과 더불어 천지 망량(魍魎)이 즐기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개고기를 금기로 설정하는 선천 도가에서는 망량이 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음식 습관은 주문 실천과 더불어 주문은 강신 혹은 강령을 통해 신명계와 인간계가 감응하고 소통하는 영적 감응을 이루는 주술-문화적 실천으로서, 해원상생을 이루는 신인합발과 광제창생의 탈-서발턴적 의례화라고 할 수 있다. 

 

 

▲ 기복신앙으로 평가절하 당했던 주문은 기도와 같이 대중 전통과 엘리트 전통, 저급종교와 고급종교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사진은 수운의 시천주주문(上)과 와 증산의 태을주문(下). STB 상생방송 캡처

 

동학과 시천주와 증산의 태을주 비교

 

한편, 변찬린의 <주문고>에 의하면, 천지비괘로 표상되는 상극의 선천도수를 극복하고 지천태괘로 상징되는 상생의 후천도수로 이행하는 것이 후천개벽의 새 하늘과 새 땅이며, 태을주는 후천선경의 개벽을 시도하는 대주문으로서 어미소를 찾는 송아지의 울음을 상징하는 주문을 통해서 천지비괘의 상황에서 지천태의 후천선경을 바라고 성서에서 예언한 새 하늘과 새 땅을 갈망하는 상태를 표상한다. 변찬린은 훔치’(吽哆)의 주문이 유사율(law of similiarity)에 기초한 동물상징의 유감주술(homeopathic magic)임을 지적했다. 그리고 태을주의 어미소를 노자의 도덕경의 현빈(玄牝)이자 기독교 요한계시록의 해를 옷 입은 여인과 연계하면서 근원적인 모성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그는 기독교의 창세기159~11절에 나오는 암소, 숫양, 비둘기 등 아브라함이 바친 번제의 세 제물들을 ()의 시운(時運)’으로 해석하면서, 암소는 혈맥(血脈)과 육대(肉代)를 잇는 더럽혀진 여성의 타락한 상징으로 우상숭배의 구약 시대를 상징하고, 숫양은 죄를 대속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 시대를 표상하며, 비둘기는 성령 강림으로서 지천태, 훔치, 현빈과 상통하며 타락 이전의 거룩한 모성으로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후천개벽의 새 시대를 뜻하는데, 원시반본은 타락한 암소와 만나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거룩한 모성의 새로운 미래로의 회귀라는 점이 중요하며, 타락한 암소와 거룩한 모성의 현빈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면 대도의 정맥을 펼치는 새종교가 아니라 혹세무민의 신흥종교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비해 동학의 시천주는 한울님을 모시려는 강령주(降靈呪)로서 접촉율(law of contact)에 근거한 감염주술(contagious magic)이다.

 

변찬린은 시천주의 지기(至氣)를 기독교의 성령으로 해석하고 시천주를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는 주문으로 해석하는 한편,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를 성령이 거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화신체가 되어 영생하는 것으로 재해석하였다. 나아가 진리의 바탕은 같으나 그것이 표현되는 방법이 서학과 동학이 다르다는 부분에 대해서 기독교의 성령 강림이 동학과 증산교의 시천주와 증산의 대순과 천지공사의 형태로 달리 나타났지만 동서양의 전통에 따라 리()의 방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 동일한 도()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다만 보편적 동일성을 강조하는 변찬린의 관점은 상대적으로 서학에 대응하는 동학의 우월한 차별성을 강조하는 동학의 논리나 기독교를 상대적으로 낮게 보는 증산 계통의 종단들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수운은 서학의 한계를 극복할 동학의 우위를 강조했으며, 증산과 증산을 따르는 종단들은 서양의 기독교를 동양의 유불선보다 낮게 보았을 뿐만 아니라 선, , 불의 순으로 유불선의 상대적 위계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수운의 시천주와 증산의 태을주를 비교하는 변찬린의 관점에서도 독특하게 변주된다. 변찬린은 시천주와 태을주가 모두 주술이지만 각각 유사율의 유감주술과 접촉율의 감염주술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양자가 각각 개봉되어 해석할 수 있는 이치/진리의 양적 주문과 인봉되어 해석할 수 없는 신령/비의의 음적 주문이라는 점을 주목하면서 양자를 각각 불교의 교()와 선()에 대비시켜 설명하였다.

 

변찬린의 이러한 설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면, 시천주가 유사의 이치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논리적 교의 양적 주문인 반면, 태을주는 접촉의 비의를 느끼고 드러내는 직관적 선의 음적 주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동학과 증산, 시천주와 태을주는 각각 논리적 이해의 강령주와 직관적 통찰의 개벽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참동학을 표방하는 증산사상이 동학과 맺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단서를 제공할 것을 기대된다. 다만 변찬린의 논의를 확장하면, 도의 보편성의 관점으로는 기독교의 성령 강림과 수운의 시천주와 증산의 태을주는 근원적 모성을 향한 원시반본의 주문-실천이자 신인합발의 의례화이지만, 리의 차별성을 강조하면 그것의 대도의 정맥에서 지류의 세계/고등종교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 '한밝' 사상의 진수를 담은 저서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에 있는 32세 때의 친필

 

맺음말 : 풍류도의 회통적 영성과 선도적 특성

 

변찬린은 증산사상을 정점으로 하는 근대 한국의 민족종교 혹은 자생 신종교를 미신과 혹세무민의 신흥종교가 아니라 후천개벽의 새하늘과 새 땅을 개명하는 새종교의 관점에서 높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풍류도 혹은 선의 관점에서 본래적 대도(大道)의 정맥(正脈)에서 벗어나서 피안의 종교를 배타적으로 선교하면서 열교(裂敎)로 전락한 세계/고등종교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종교의 창조적 진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종교성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영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SBNR의 시대를 예고하는 구도자적 통찰이자 예언자적 일갈이었다.

 

이러한 변찬린의 영성관은 류영모, 함석헌, 탄허 등의 한국 근대 종교사상가들이 특수한 종교성을 벗어나서 보편적 영성으로 회통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그러나 그들이 대체로 엘리트적 지향성을 지닌 채 기독교나 불교를 중심으로 회통하면서 거대한 문명권을 형성한 세계종교에 집중한 반면, 변찬린은 풍류도의 선적 관점을 중심으로 회통하는 가운데 대중적 지향성을 수용하여 무()와 더불어 흔히 미신이나 혹세무민으로 폄하되곤 하던 근대 한국의 민족종교 혹은 자생 신종교까지 확장하면서 대안종교적 가능성까지 읽어내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러나 유의할 점이 있다. 변찬린은 자신의 저술들에서 야만적이고 미개한 무명의 동물성으로 표현되는 육() 혹은 혈()과 인간 문명을 구현하는 혼 또는 정신을 철저하게 구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과 혼()의 구별도 명확하게 견지하였다. 육과 혈이 인간 이하의 동물성이라면, 혼과 정신은 보편적인 인간성이며, 영은 궁극적인 신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변찬린에 의하면, 육과 혈의 종교가 정령과 우상숭배와 무당의 다종교라면, 혼과 정신의 종교는 축의 시대를 구성한 낡은 세계종교이며, 영의 종교는 선() 혹은 선()의 대도(大道)인 것이다. 그는 육과 혼을 구별하는 것 이상으로 영과 혼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그렇다면 증산사상을 비롯한 한국의 민족종교 혹은 자생 신종교는 영의 종교인 대도의 정맥인가? 아니면 혼의 종교인 비본래적 종교의 지류인가? 이에 대해 변찬린은 기성 세계종교의 모순과 한계를 넘어 서서 종교의 종합과 통일을 통해 원시반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혼의 종교에서 영의 종교로 승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혼의 종교에서 영의 종교로 진화하는 창조적 진화의 도상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변찬린은 3차원의 시공간을 넘어서서 풍류체로 불리는 영적 존재로 선화 혹은 영화하는 것을 선의 대도라고 보았는데, 영은 이미 그 자체로 보편적이고 궁극적이며 초월적이고 내재적이다. 주체와 대상이 구분되는 현상적 개별자는 혼이지, 영이 아니다. 따라서 증산사상을 비롯한 한국 근대 자생 신종교들은 무명과 죄악에 따라 생사의 유한한 윤회 현상계에 얽매이는 피안의 종교로부터 벗어나서 변화나 부활를 통해서 무한한 영생을 누리는 선의 대도로 원시반본하는 새종교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변찬린은 증산사상을 비롯한 근대 한국의 민족종교들은 자력과 타력이 어울리고 자기수련 전통과 절대적 신에 대한 믿음이 상호 합력하는 신인합발의 종교로 설명하였다. 특히 증산사상은 이러한 종교의 토대로서 신명계와 인간계가 상호 작용을 주고받는 신인동형론적 신관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세계종교의 엘리트적 성향보다 무()나 민간종교의 대중적 성향을 반영하면서 부각되는 독특한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해와 관련하여 신인일체의 신비주의와 신인합발의 민족종교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후천개벽에 따라 모든 도인이 도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모든 인간이 신화 혹은 선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증산이 자신을 미륵불 혹은 상제로 자임하는 의식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종도들의 믿음을 요구한 점이나, 천상의 신명계와 지상의 인간계에서 종교적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점 등은 초월신과 기능신이 지상정부처럼 신명계의 천상정부를 구성하는 점에서 후자의 가능성을 지지한다. 이 점에서 볼 때 증산사상이나 민족종교는 혼의 종교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사상과 민족종교 등이 지향하는 후천개벽과 해원상생은 영의 대도를 지향하는 혼의 종교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변찬린의 새종교관과 증산사상 이해를 주제별로 고찰하였으나, 이러한 관점이 지닌 특성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시대 다른 종교인들이나 연구자들의 관점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본 논문은 변찬린의 새종교관과 증산사상을 포함한 민족종교에 대한 이해를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완성태로서 정합적으로 설명하였으나, 그러한 사상이나 관점이 발전해 온 과정을 발전사적으로 추적하기 위해서는 동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변찬린의 새종교관과 그 대상이 되는 민족종교 교단들의 관점을 비교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충분히 다루지 못하였다. 본 논문의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고 성과를 확장하기 위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추후의 연구과 제로 삼고자 한다.

<박종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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