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지속적인 자아 분석에 의지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98)
불교의 역사는 2,500년이란 풍부한 시간의 길이를 갖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됐다. 브라만교(힌두교)는 의례 체계가 복잡하면서 어쩌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지 모르지만, 불교는 줄곧 자아(自我) 문제에 대한 분석에 의존해 왔다. 도교(道敎), 신도(神道), 힌두교, 본교(티베트)와 같은 다른 동양 종교와 불교의 교차점은 깨달음에 있다. 불교와는 달리 이들 종교는 불교처럼 깨달음에 크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깨달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동양의 종교들과 상호 작용하는 연결된 이념을 보여줌에 있어서 일맥상통하고 있다. 불교와 동양 종교는 모든 유정(有情)이 명확한 생명체의 끝이 없는 환생의 순환을 겪는다는 세계관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도교의 이념과 전통은 불교 수행에 대응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응되었다. 도교 철학은 초기 신화와 민속 종교 수행의 혼합에서 비롯되었다. 도교 이념은 기원전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도교가 조직된 종교 집단으로 형성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도교와 불교는 역사적으로 인도 아대륙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고자 했다. 불교가 정교한 우주론과 내세에 대한 자세한 이론을 제공하는 반면, 도교는 다른 필요를 충족하고 있다.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 1873년~1930년)은 독일의 중국학자, 신학자, 선교사이다. 25년 동안 중국에서 거주하면서 중국어의 구어체와 문어체에 능통했고 중국인들을 사랑하고 존경했다.
도교의 주요 초점은 도(道)의 길이다. 도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형태가 없는 힘으로, 모든 것을 영원한 순환으로 모은다. 도는 추종자들에게 세상에서 각자의 위치를 이해하는 길을 제공한다. 도교와 불교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불교의 도래는 불교가 제기한 실존적 질문에 대한 대응으로 도교가 더 조직적인 종교로 재구조화되도록 강요했다. 불교와 도교의 경쟁은 중국 의학 분야에서 유익한 발전을 촉진했다고 한다.
초기 불교는 원래 도교에 의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일부 경전은 잘못된 도교 어휘를 사용하여 중국어로 잘못 번역되어 다양한 설명 간에 불일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불교와 도교의 영향 체계 사이에는 이념적 교차가 발견된다. 특히 선불교는 도교 철학과 공통된 많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도가(道家)의 단순함은 선(禪)이 불교 이론을 포기하도록 자극했으며,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실천에 완전히 흡수하는 것을 강조하는 또 다른 전통적인 도교적 특징이 수반되었다.
중국불교와 도교의 공존으로 인해 다양한 불교 신들이 도교 판테온(신전)에 수용되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도교에서 중국불교의 천신인 마리지천 보살(威光)은 종종 도교의 여신인 두모(斗母)와 동격화되는데, 두모는 북두칠성의 인격화이자 천상의 우주적 신의 여성적 측면으로 간주된다.
또 다른 예로, 전쟁과 형제애의 도교 신인 관우는 불교에 수용되었고 그는 불교 사원의 호법신(護法神) 역할을 하는 보살 또는 천신인 상가라마 보살(伽藍菩薩)로 널리 숭배된다. 불교 전설에 따르면, 592년에 관우의 영혼이 어느 날 밤 선승 지의 앞에 나타나 스승에게 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스승으로부터 불교의 가르침을 받은 후, 관우는 삼보에 의지했고 또한 오계를 요청했으며 사찰과 법의 수호자가 되기로 맹세했다. 중국 밀교와 도교의 융합은 특히 광범위했다. 예를 들어, 밀교와 진언불교의 두 경지의 만다라의 양계만다라(両界曼荼羅) 구성은 도교의 구궁도(九宮圖) 역경(易經)에서 영향을 받아 채택되었다.
허무주의(虛無主義) 또는 니힐리즘(Nihilism)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음산한 ‘nihill(허무'의 라틴어)’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철학적 견해이다.
우주·인생의 진상을 무(無)에서 보려고 하는 사상은 노자(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나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사상에서도 볼 수 있으나, 자각적인 사상으로서의 본래의 니힐리즘은 19세기 중엽 이후로부터 현대에 걸친 서구 사회의 특유한 사상이다. 곧 근대의 격변기에 서구 근대 시민 사회의 가치 체계가 붕괴하고 그 후에 올 장래의 가치에 대해 전망할 수 없는 역사의 위기적 전환기에 있어서 소시민층의 세계관의 반영으로서 성립한 것이다.
시민 사회를 역사적 진보의 완성으로 성화(聖化)시키는 헤겔의 절대정신(絶對精神) 철학은 그리스적 지성과 유대적 신앙의 대담한 절충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강제적인 결혼은 중매자인 헤겔의 죽음과 함께 파탄을 일으켰다. 합리적·실증적 정신의 발달에 의해 그때까지 가치 목적을 한몸에 집중시키고 있던 신에의 신앙이 상실되었을 때, 그 후에 남겨진 적나라한 자연의 실상(實相)은 가치의 껍데기라고 할 수 있는 허무(니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무한한 불안과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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