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과 행복에 이르는 최후 여정은 至高의 사랑인 연민과 절대 자유
불만에서 만족, 불행에서 행복에 이르는 여정(旅程·旅情)만족과 행복에 이르는 최후 여정은 至高의 사랑인 연민과 절대 자유
하늘소풍길 단상
행복(幸福)의 반대말은 불행(不幸)이 아니라 불만(不滿)이라 한다. 불만에는 자신과 세상사에 대한 비관, 질시, 허무, 역겨움, 구차함, 열등감 등 온갖 부정적 마음들이 담겨있으니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불행의 총체적 실체가 곧 불만이며 행복은 만족(滿足), 자족(自足) 등 긍정적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일 게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나 자신은 변함없는데 세월 따라 불만과 만족이 교체되며 행불행을 바뀌는 것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내 인생길에서도 그것을 절감하게 된다. 불만에서 만족, 불행에서 행복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내 인생길과 세상사를 복기하다보면 흥미로운 깨달음을 준다. 그 ‘여정’은 인생길, 세상사 여행의 과정이나 일정을 말하는 ‘旅程’이자, 그 ‘旅程’에서의 감정을 뜻하는 ‘旅情’도 된다. 지금 이 나이 쯤에 여정 전체를 짚어보기는 불가능하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해볼만한 작업이 되겠다 싶었다.
▲ 나의 어린 시절은 괜한 열등감으로 불행했다. 새로 지은 우리 기와집과 비교해 동네 언덕 담장 넝쿨 있는 2층 양옥집이 부러웠고 그 집에 사는 예쁜 소녀에 비해 나는 초라하고 가난했다. 중학교 1차 시험에 낙방하고 2차 학교에 다니며 소위 일류학교에 다니는 남녀학생과 차별되는 내 교복과 가방을 부끄러워했다. 대학도 2차여서 재도전을 꿈꾸면서도 실력의 한계가 느껴져 절망했다. 50~60년 세월 지나 보니 당시 나와 같은 중산층 가정은 극히 드물었고, 중고등대학 내 모교가 괜찮은 학교였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 시절 자족하지 못한 생활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그때는 열등감과 불만에 불행했었고 이제 와서라도 자족하며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으니 행복하다.
▲ 가정과 학교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 대한 불만과 열등감도 있었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외국의 헌옷 등 구호물자와 미군부대서 나오는 전투식량이 얼마나 고급스러웠는가. 누더기옷에 거지 깡통이 넘쳐나는 우리나라는 원래 이런 운명으로 태어난 국가와 민족이란 생각에 우울했고 기가 죽었다. 백인의 피부와 금발, 우람한 체격에 비해 우리는 왜소하고 꾀죄죄한 인종이었다. 그들에게 감히 영어로 대화할 용기조차 생기지 않아 머뭇거렸다. 그러나 연이은 올림픽경기 개최, 경제성장과 더불어 서구 선진국과 우리가 다를 바 없다는 자긍심이 생기자 심지어 그 옛날 섬겼던 중국까지 못사는 미개한 나라로 깔보게 됐다. K-컬쳐 등 한국의 위상이 한없이 높아지며 새삼 우리의 고조선 역사와 이후 쌓아온 문화에 대한 의식이 고취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란게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열등감에 젖어있던 과거가 후회됐다.
▲ 사춘기부터 청년기에 이르는 시절에는 사람과 사람 사는 행태가 구차스럽고 역겨워져 우울한 청춘을 보냈다. 내 환경과 의식을 삐딱하게 부정적으로 점령한 유교적 생활윤리관, 기독교적 원죄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다. 다양하게 급변하는 종교적, 윤리적 혼재 속에 누구로부터 그릇된 영향을 받은 줄도 모르겠다. 명료한 가치관, 사생관, 생활관이 없어 그저 혼미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냥 기성세대들이 사는 방식에 다소곳이 수긍하며 산다는게 내심 구차스러웠다. 돈과 재물에 귀가 솔깃해 있으면서도 그를 내색하는 것을 금기시 했고 이성에 눈을 떠 가면서도 ‘성은 죄악이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스스로 만들었다. 인간세상의 쾌락과 영화 모두가 추잡하다면서도 그것을 슬쩍 꿈꾸는 이율배반적 스스로의 삶을 발견하고 더욱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이율배반적 허위, 가식의 인간으로 보게 만들었다. ‘산다는게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는 허무주의적 실존주의도 배부른 자의 공허한 넋두리로 폄하시켰다. 그래서 더 허무했고 절망하고 불행했다. 그러다가 군대 다녀오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는 과정을 거치며 삶의 구차함, 비루함, 허무함, 자괴감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냥 살아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차츰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게 되는 과정이었다. 처자와 부모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버는 숭고한 모습들이 보였으며 섹스가 추잡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남녀의 관계라고도 보게 되었다. 세상 사는 모습들은 그대로인데 불만, 불평. 부정으로 대했을 때는 불행하고 허무했던 삶이 긍정, 인정, 만족의 마음으로 대하니 살만한 삶이 되었다.
▲ 언론사에서 종교를 담당하면서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 종교의 부패와 독선과 배타성에 거부감을 느끼던 것이 아예 종교의 근본적 오류와 무용론을 연구하게 됐고 종교 뿐 아니라 성직자, 종교단체가 종교사업, 종교업자로 보였으며 그를 믿는 신자들까지 몽매한 인간으로 무시했다. 훗날 은퇴를 하면 ‘종교공해론’를 집필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을 미망과 현혹에서 헤어나게 해야한다는 집필 취지도 작성해 놓았다. 그러다가 50대 들어 모든 종교를 다루는 ‘범종교신문’을 창간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 활동이 종교공해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기성교단에서 이단으로 괴물 보듯이 하는 신흥종교세력들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기성교단에선 사탄으로 몰고가겠으나 포용력 있으신 하느님께선 기특하게 봤으리라 믿는다. 하느님을 비롯 이성과 과학의 입징에선 무속, 이단을 포함한 모든 종교와 신이 미신, 미망 아니겠는가. 잘난 척 내 의견도 허깨비 망상일수 있지만 어떤 믿음이든 평화, 평안, 아름다움이 있지 않은가. 소위 이단으로 일컫는 신흥교단 교인들을 접하다보면 순수함, 진정성은 내가 도저히 갖출 수 없는 심성이었다(다만 내가 그들과 같은 교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인정하다보니 아내의 교회출석을 예전보다 더욱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내가 찬양대 합창에 감동하는 것을 보면 나에게도 감동이 전이되는 기분이다. 찬양대의 합창을 북한 지도자에 대한 열광같이 취급했던 내가 아내의 신심과 감동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공감은 못한다하더라도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종교공해론 집필을 모색할 때보다 지금이 몇백배 더 행복하다.
▲ 애들 교육을 위해 진입한 소위 ‘강남8학군’ 20여년 생활보다 현재의 호숫가 임대아파트 생활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강남아파트 주변 가정의 과외교육과 유학 등을 쫓아가기 위해 아등바등했고 환경과 투자가치가 좋은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 몸을 바쳤다. 상가와 주식투자에 정신을 팔았으며 무모한 사업도 마다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욕심 부린 중장년기의 세월은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그렇기에 노년기 맞은 우리 부부가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고 사는 임대아파트가 더욱 소중해진다. 방 두칸, 거실과 주방이 있는 46제곱미터 공간은 우리 부부 살기엔 좀 넓은 듯 싶다. 광교호수공원이 바로 우리집 정원이다. 아내는 우리집보다 2-3배 넓은 집에 사는 손주들이 우리 집을 ‘광교호텔’로 부르며 놀러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찾아오는 손주들을 위해 아내는 장식을 만들며 흐믓해했다. “집이 넓으면 수십만원찌리 대형 트리로도 눈에 띄지 않지만 이렇게 조그만 둥근 벽걸이 장식으로도 화사해지니 좋군요” 중장년기 시절, 이 아파트에 살았다면 불만에 차 이렇게 행복감을 느낄수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노부부의 행복을 절감한다.
▲ 청소년기 시절과 학교, 직장생활 등 삶의 여정을 정리하며 스스로 ‘참 잘했다’ 싶다. 비록 유치하고, 난삽하지만 이런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과거는 불만과 불행, 현재는 자족과 행복‘ 이란 등식으로 일관되게 정리했는데 이는 글쓰기란 형식과 구성에 얽매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차리리 아내의 아크릴화, 수채화에서 드러나는 삶의 여정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과거가 후회거리 과오만은 아니였으며 그 여정 역시 소중했다고 본다. 그로 인해 현재의 만족과 행복을 알게 된거 아닌가. 부정, 불만으로 세상이 지저분하고 구차해 역겨움을 느꼈으나 이제는 그에 대한 연민이 일어난다. 허무감을 뼈져리게 느끼는 나와 인간에 대한 연민도 생겨난다. 가장 온화하고 깊고 넓은 사랑은 연민이다. 연민으로 모든 사랑뿐 아니라 추잡함, 비루함, 난폭함도 포용할 수 있다. 강아지를 키우다보면 사납든, 폭력적이든 내 강아지는 항상 귀엽다. 하느님이 있다면 인간이 강아지 보듯 인간 모두를 선악, 미추 떠나 너그럽게 볼 것이라고 믿는다. 지고한 사랑, 연민 때문일 것이다. 그 연민의 사랑이 있으면 성속(聖俗), 선악(善惡), 미추(美醜)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자유인이 된다. 하느님과 종교, 우상과 이념에서 해방된 절대자유인이 된다. 만족과 행복에 이르는 최후 여정일 것이다.
PS: 이 정리작업을 하려고 마음 먹은 날인 12월 3일 비상계엄령 사태가 발생했다. 밤새 병정놀이 같은 과정을 지켜보다가 미련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집으로 귀가하니 아내는 하루종일 TV에 집중해 있었다. 언뜻 TV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갑충류, 바퀴벌레같이 보여졌다, 이상했다, 그정도로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었는데 유독 이날은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커다란 벌레가 현실에 나타난 듯 소름이 끼쳤다. 상대를 각각 국사범, 파렴치범으로 몰고가는 양 진영의 아귀다툼이 징그러운 벌레 싸움으로 보였으며 그에 가담하는 페널 등 패거리는 너저분한 잡범으로 여겨졌다. 아내의 TV 시청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슬쩍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아내도 눈치챘는지 TV를 꺼주었다. 그리고 일주일 지나서야 계획했던 정리작업을 위해 도서관 컴퓨터 작업실에 앉았다. 글을 쓰면서 성속(聖俗), 선악(善惡), 미추(美醜), 이념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자유인이 되어간다고 자부하게 된다. 지고의 연민의 사랑을 갖게 됐다며 으쓱했다, 그러나 비상계엄령 사태 후 언론에 나타나는 군상들이 여전히 바퀴벌레, 커다란 갑충류로 보이니 절대자유인이 되긴 힘든가보다. 세월 지나면 오늘의 시대와 군상들에 대해서도 연민을 정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절대자유를 향한 끝없는 여정이다.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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