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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캘린더’ 바꾸며 ‘送舊迎新’ 하기

신민형 | 기사입력 2024/12/31 [14:54]
하루하루도 캘린더 바꾸듯 새마음으로..공감 아닌 연민으로 바라다 보는 세상으로

‘탁상 캘린더’ 바꾸며 ‘送舊迎新’ 하기

하루하루도 캘린더 바꾸듯 새마음으로..공감 아닌 연민으로 바라다 보는 세상으로

신민형 | 입력 : 2024/12/31 [14:54]

  © CRS NEWS



새해를 맞이해도 별다른 감흥이 안든다. 나이가 든 탓이 있겠지만 특히 신정공휴일이 하루가 된 이후로는 새로운 태양이 뜨는 또 하루의 시작일 뿐이다. 손주들은 1231일까지 등교하고 과외학습이 이어지니 우리 집에서 하룻밤 지낼 겨를도 없다. 여느 주말만도 못하다. 무덤덤하게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새삼스레 허전한 기분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탁상일기 바꾸며 송구영신(送舊迎新) 하기이다. 10-20년 전에는 벽걸이 달력을 걸며 송구영신의 의미를 새겼다. 근래 캘린더 앱이 핸드폰에 깔리기 시작하고는 탁상 캘린더 발행 마저 사라지고 있다. 유일하게 볼펜으로 꾹꾹 눌러 기록할 수 있는 탁상 캘린더야말로 매력있는 송구영신의 도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과연 떠나보내기 아쉬운 옛일과 기대에 차 맞이할 내일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영부영, 빈둥빈둥 살구 있구나 하는 각성도 세삼스레 들었다. 그래...그런 각성이라도 하며 송구영신을 해보자!

 

2025년 탁상 캘린더가 새 책을 접하는 것처럼 신선하다. 지난 일정들이 적힌 지난 캘린더에는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을 듯 싶었다. 그래서 몇 년 지난 탁상캘린더도 책상서랍에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막상 지난 캘린더의 일정을 들춰보는 송구(送舊)’의 시간은 실망스러웠다. 매해 비슷비슷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손주들 생일, 부모님 기일이 햇수만 바뀌어 기록됐으며 추억 역시 판박이였다. 친구, 친지와의 만남 일정이 아직 내 건강이 건재함을 보여주었으며 각종 경조사를 통해 내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었다. 각종 공과금 납부일이 꼼꼼이 적혀있었고 점점 많아지는 일정으로는 병원 진료가 눈에 띄었다. 이 역시 각오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일이니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그래도 지난 한해 일정 중 보람있는 것도 하나 찾아 놓아야 송구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 *지난 캘린더의 일정을 들춰보는 ‘송구(送舊)’의 시간은 실망스럽지만 그나마 도서관 생활은 성찰과 감동, 감명의 시간으로 소중했다.  © CRS NEWS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기록과 일정은 도서관 앱에서 이루어지니 캘린더 일정에선 제외된다. 그러나 갑자기 대출할 책이 떠오르거나 대출날짜가 급박할 때 적어놓은 캘린더 일정이 반갑게 눈에 띈다. 며느리가 사놓은 책을 읽다가 도서관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니 흥이 난다. 다른 사람들이 읽다가 반납대에 올려 놓은 책을 보며 그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훔쳐보는 맛도 만만치 않다. 인문서를 대하면 저자의 취향에 따른 갖가지 열정과 지식에 감탄한다. 철학서는 뭔가 어렵게 배운다는 느낌을 가졌었는데 나이 70, 살만큼 산 경험적 철학자가 된 기분인지 그저 문학서를 접하는 기분이다. 종교서적들도 교훈과 교시를 받는다기 보다 인문서 보는 관점에서 읽게 된다. 문학서는 저자와 주인공의 삶을 실감나게 경험하며 내 삶과 비교, 음미하는 독서의 근원적인 매력이 있어 좋다.

어떤 책이든 몰입해 읽게 되면 역사와 사회, 삶에 대한 인식의 틀을 넓혀준다. 매몰돼 있는 통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삶의 자세도 바뀌게 할 수 있다. 이해와 함께 감동, 감명을 받게 된다. 그러면 소위 통찰의 죽비(竹扉)’가 내려쳐진 순간이 된다. 감동, 감명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의 효능도 새 탁상 캘린더의 신선함처럼 잠깐 뿐이란 사실을 익히 경험하고 있다. 올 한해 감동, 감명을 학습하고 읽은 책이 100여권에 이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동과 감명은 퇴색한다. 조금 더 지나면 읽은 책의 목록을 보아도 어렴풋해진다. ‘이제야 다른 사람들한테 추천할 책이 생겼다며 진한 감동, 감명을 표시한 몇권 안되는 책도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도서관 대출책으로는 만족 못해 내 책상에 구입, 비치한 두권의 책도 그랬다. 카찬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로운 영혼과 육체의 소유자인 저자와 주인공에 매료되어 내 삶의 자세도 바뀌게 할 통찰의 죽비로 느껴졌다. 선과 악의 짓눌림과 공포, 모든 사람이 섬기는 우상, 이념 ,추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조르바의 행동과 절규에는 눈물까지 흘리며 읽었다. 동서양의 종교철힉역사를 통합적으로 알기쉽게 고찰정리한 데구치 하루야키의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내 안목을 넓게 깊게 해주는 동시에 내 편견의 벽도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구입해 놓고 보니 감흥은 시들해져 다시 들춰보게 되질 않는다. 새롭게 감동, 감명을 주는 것들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지난해 책을 읽을 때처럼 소중한 시간은 없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짧은 순간들이지만 통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만족한다. 젊은 시절 출판담당 기자로서 수천권의 신간안내, 서평을 해댔지만 기억나는 책은 없다. 책으로 펴낸 反芻-스테디셀러를 읽는다에서는 準古典’ 100여권을 해설해 놓았으나 이마저도 감동, 감명을 주진 못했다. ‘이해하는 척하며 아는 척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책 내용과 출간 이면사를 정리해 놓았을 뿐이다.

 

다만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정리하고 직접 출판한 아버지의 회고담 인생은 아름다워라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감동과 감명을 받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아버지 삶에 대한 공감이 넘쳐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조르바가 나와 현실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면 아버지 회고담처럼 진한 감명을 줄 듯하다. 혹은 내가 영혼과 육체가 자유로운 조르바를 진정으로 무한히 사랑하게 된다면 나의 영원한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아버지의 회고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감동, 감명을 준다.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집필한 책 ’반추‘는 ’이해한 척‘ 하며 ’아는 척‘ 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정리해준 책으로 전혀 감흥이 없다.   © CRS NEWS

▲ 올해 내 고전으로 선정한 ’그리스인 조르바‘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도 막상 내 책상에 구입, 비치해놓았지만 감흥은 시들해졌다.만약 아버지처럼 함께 세상을 산 저자 들이었다면 아버지 회고담처럼 오래 감동,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 CRS NEWS



송구영신 하는 김에 캘린더에 기록하진 못했지만 세모 닥쳐서 겪었던 일들도 정리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202412월 들어서 비상계엄사태로 어수선하더니 세밑에 여객항공기 참사의 비극이 벌어졌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가해자, 피해자가 서로 자신의 옳음을 내세우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해자. 피해자 측 모두 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항공참사의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처참함은 어찌 감당해낼 것인가.

 

6층 노부부 가구의 할머니가 눈길 낙상으로 3주 병원 치료받고 귀가했다. 아파트 현관 앞서 담배 태우느라 자주 만났던 6살 연배 할아버지는 덥수룩한 수염으로 더욱 늙어 보였다.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누워있을 것이라며 한숨 쉬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 2080대 할아버지는 말끔하게 면도하고 날마다 장을 보러 다니는 12살 연배 독거노인이다. 애연가인 그가 담배 나눠 태우며 잘 작동 안되는 핸드폰과 검퓨터를 한탄한다. 늙어서 아무리 설명 들어도 모르겠다며 나에게 부탁한다. 나도 서투르니 안타깝다. 그의 죽고 싶도록 답답한 심정이 전해져 온다.

 

미국서 2년째 투병생활을 하는 친구에게 근래 생일 축하편지를 보냈더니 생일이 8개월 늦게 등록돼 그만큼 보너스로 사는 기분이네라는 답장이 왔다. 위로의 댓글이 된다 싶어 나도 지금까지 사는 거 기적이며 행운이자 보너스라 여긴다고 했다. 요즘 절감하는 내 심정으로 죽음 등에 대한 마음정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튿날 그에게서 절망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더디지만 조금씩 호전되던 상태에서 이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혈중 산소 농도가 너무 빨리 떨어져 숨이 차네. 무력감도 느껴지고 두렵기도 하네그가 두렵다는 말에 나도 덜컥 겁이 났다. 기적. 행운, 보너스를 논할 여건이 아니었다.

 

올 연말 사건은 위와 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일들을 어찌 다 기억하고 감당하란 말인가. 만약 내가 그들 하나하나의 고통과 아픔에 완전 공감한다면 미쳐버릴 것 같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시달릴 것이다. PTSD 발병에 영향을 주는 외상 사건은 전쟁, 자연재해, 폭행, 사고 등 정신적으로 회복하기 힘든 상황인데 당사자와 똑같이 느낀다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완전 공감 아닌 공감에 가까운 이해와 연민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완전 공감은 피해가야 한다. 다만 계엄 사태의 가해자. 피해자 진정한 입장을 한번 쯤은 생각해야 한다. 측은히 여겨야 한다. 항공사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마음 우러나오는 조의를 표하면 된다. 아파트 노인들의 아픔과 고충을 똑같이 겪지 않는 대신 그들 좋아하는 담배 권하며 위로해주면 된다. 친구의 두려움을 절실하게 느끼며 괴로워하는 대신, 자주 메시지 보내 위로해주면 된다. 나의 고통과 아픔, 죽음의 두려움에 항상 젖어있는 대신 연민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바라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나와 주변, 그리고 모든 사람의 삶과 고통을 공감하며 뼈저리게 느끼기 보다는 연민으로 바라다 보아야 한다. 그래야 나와 모든 사람을 더 이해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의 반복을 나열한 탁상 캘린더를 모두 폐기해 버릴 생각을 했었는데 지난해들의 캘린더를 넣은 책상 서랍에 다시 모셔놓기로 했다. 별일 없는 내 주변의 일상사가 세상의 중요한 일과는 달리 소소하고 별 볼일 없다고 쓰레기통에 집어 넣어야 하겠는가. 나와 주변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있어야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소중함도 느끼게 된다. 나를 이해하고 연민해야 주변을 연민할 수 있고 세상도 연민할 수 있다. 모든 아픔을 함께 공감하며 똑 같이 아파 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 삶의 아픔과 함께 있는 즐거움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기록을 담은 인생은 아름다워라가 세상 역사, 우주의 역사보다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올해의 내 고전으로 올려놓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보다 더 감동과 감명을 주지 않는가. 세상에 쓸데 없는 것,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있음을 사랑하고 연민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거야말로 2025 ‘영신(迎新)’의 새겨넣을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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