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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과 묵조선의 성립

보검 스님 | 기사입력 2025/11/24 [09:09]
임제종 화두 주창 대혜 종고 선사

간화선과 묵조선의 성립

임제종 화두 주창 대혜 종고 선사

보검 스님 | 입력 : 2025/11/24 [09:09]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152)

 

우리나라 불교가 오늘날 선불교 일색에다가 염불 위주의 불교가 된 것은 전적으로 중국불교의 영향 때문이다. 당나라 때부터 시작해서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선종이 왕성하게 세상을 풍미하게 된다. 특히 남송대에 이르러서 선종 불교는 크게 융성했다. 

 

▲ 1141년의 남송(자주색).  © CRS NEWS

 

송나라(960~1279)의 종교는 주로 유교, 도교, 불교의 세 가지 제도적 종교와 중국 민간 종교로 구성되었다. 송나라 시대에는 도교의 일파인 정일도(正一道)가 국가 지원 종교로 부상했고, 도교와 불교에 대한 유교적 대응으로 성리학(Neo-Confucianism)이 탄생했다. 성리학은 처음에는 이단으로 여겨져 금지되었지만, 이후 1241년에는 주류 엘리트 철학이자 국가 정통 교리로 자리 잡았다.

 

▲ 대혜 종고(大慧宗杲:1089년∼1163년).  © CRS NEWS

 

송나라 휘종(11001126) 치세를 제외하고는 송나라 시대에 불교는 억압받지 않았다. 송나라 정부는 불교 사원을 공적 사원과 사적 사원으로 구분했다. 부유한 경향이 있는 공적 사원의 주지들은 지방 관리로 임명되었다. 공적 사원은 전몰자를 위한 위령비, 황제의 생일과 기일을 위한 종교 공간 관리, 황제의 서예물 보관, 황제의 초상화 전시관 등 국가적 업무를 수행했다.

 

불교 시설 또한 착유기, 수력 제분소, 전당포, 숙소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했다. 대규모 불교 영지에서는 경작할 수 있는 소작인에게 토지를 임대했다. 대부분은 선종과 정토종에 속했다. 그러나 10세기 초부터 수행자들은 두 종파를 더욱 가깝게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영명연수(永明延壽:904~975)와 같은 승려들은 선종과 정토종을 모두 가르쳤다. 1221년 기록에 따르면 왕조에는 40만 명의 승려와 61천 명의 비구니가 있었다. 영명연수는 학승으로서 종경록宗鏡錄)100권을 지었다.

 

영명연수는 선종5(禪宗五家)의 일파인 법안종(法眼宗)에 속하며, 천태(天台화엄(華嚴법상(法相) 등의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을 융화회통(融和會通)케 하려는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주장한 선승이다. 종경록도 이러한 입장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역설하고 있으며, 불심종(佛心宗)이라고 불리는 선종의 마음과 불어종(佛語宗)이라고 불리는 교종 각파에서 말하는 마음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여러 예증(例證)을 들어서 논하고 있다.

 

▲ 중국 송나라 때 남자 신도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모습.  © CRS NEWS

 

전체적으로 체계화에 다소 결함이 있으나 경···(經論章疏)의 폭넓은 인용이 백과전서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오늘날 상실되어 찾아볼 수 없는 일서(逸書일문(逸文)의 인용이 들어 있어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의 불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선불교는 송나라 시대에 국가의 지원으로 인해 중국 불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형태였다. 선승들은 국가의 인정과 재정 지원을 받았다. 선승들은 일반적으로 궁정과 정계 생활을 피했다. 선승들은 직관과 깨달음은 공개 토론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선승의 전통은 소수의 승가 집단 내에서 스승에서 제자에게로만 전수되었다. 조동, 임제, 운문, 위앙, 법안의 다섯 선종파 중, 10세기와 11세기에 선종을 이끈 것은 법안종이었다.

 

▲ 중국 선종 전래 조동(曹洞) 47대, 임제(臨濟) 43대, 운문(雲門) 12대, 법안(法眼) 제8대, 위앙(溈仰) 제8 법맥을 계승한 허운(虛雲:1840∼1959) 대사. 119세까지 생존.  © CRS NEWS

 

중국 선종의 선5가 종파의 선맥을 계승한 허운 대사는 중국 서태후를 만나서 한여름에 눈을 내리게 하고, 허운 대사 자신의 19591013일 임종 입적 날짜와 서태후(18351908) 및 마지막 황제 푸이(19061967)의 죽는 날짜를 모두 정확하게 예언했다고 한다. 허운대사는 제자들에게 모두 중국을 떠나도록 명령했는데, 제자들은 홍콩. 대만. 싱가포르. 미국 등으로 모두 망명하였다. 다시 남송으로 돌아가서 담론을 더 전개해 보자.

▲ 가지산문의 본사 전남 장흥 보림사.  © CRS NEWS

 

남송(南宋:1127~1279) 초기에 모두 남종선에 속하는 임제종(臨濟宗)과 조동종(曹洞宗)에서 각각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默照禪)이 성립되었다. 간화선은 화두(話頭)를 이용하여 득도하려는 선풍(禪風)으로서 임제종의 대혜종고(大慧宗杲:1089~1163) 선사가 주창하였다. 묵조선은 망상과 잡념을 없애고 고요히 좌정하여 득도하려는 선풍(禪風)으로서 조동종의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이 주창하였다.

 

▲ 도의국사가 머물렀던 양양 진전사.  © CRS NEWS

  

선종의 한국 전래는, 당나라의 서당 지장(西堂 知藏)에게서 법을 받아 784(선덕왕 5)에 신라로 귀국한 도의를 시조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남북국시대 말기와 고려 초기에 9산선문이 성립되어 한창 번성했으나 점차 쇠퇴하였다.

 

고려 시대(918~1392)의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조계산에 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했으나 그 뒤부터 승행(僧行)이 타락하면서 차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태고 보우(1301~1382)는 중국 호주 하무산(霞霧山)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법을 받아 왔고 나옹 혜근(1320~1376)은 강서(江西)의 평산 처림(平山處林)의 법을 받아 와서 두 파로 갈리었다. 그러나 나옹의 법계(法系)는 얼마 안 되어 없어지고 태고의 법계만 지금까지 전래한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 지난 11월 5일 아잔타 담마찰 대법회에서 설법하고 있다.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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