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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⑤ 인도 아소카 대왕, 그리스까지 불교전도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1/25 [08:40]
불교의 담마(진리)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스라엘, 그리스에 전해져

서양문화와 불교-⑤ 인도 아소카 대왕, 그리스까지 불교전도

불교의 담마(진리)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스라엘, 그리스에 전해져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1/25 [08:40]

 

▲ ‘담마(불교진리)에 정복된 영토’라고 아소카 칙령 No.13에 기록되어 있는 지역 지도. 불교는 인도에서 지중해 그리스 본토까지 전파됐다.(기원전 260~218년)

 

불교의 담마(진리)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스라엘, 그리스에 전해져 

 

사람들은 불교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서양에 전파된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고대 시대부터 불교는 지중해 세계에 알려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헬레니즘과 불교는 인도 서북단에서 조우했으며, 상호 사상적 탐색전이 이루어졌었다. 결과적으로 그레코(그리스)-불교라는 한 범주가 형성됐다.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다. 오히려 근대에 들어와서 서양의 불교학자들에 의해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서양언어 특히 영어로 된 자료가 풍부하다. 어학소양이 없다면 접근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영어자료가 한역(韓譯)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도불교가 페르시아, 소아시아, 레반트(시리아, 이스라엘), 이집트, 그리스본토까지 전파되었다는 증거는 아소카 칙령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아소카 대왕(재위:기원전 273~기원전 232)은 마우리아 제국(기원전322~기원전 185)의 제3대 왕으로 인도 아 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함으로써 마우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까지 칭송되는 아소카는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불교도 왕이었다.

 

그는 제3회 불교경전 결집 대회를 후원했고, 여러 지역에 불교를 전파하는 전도승(傳道僧)을 파견했으며, 33개의 아소카 칙령 비문을 인도 아 대륙 전역에 기둥·바위·동굴의 벽에 새겨서 사람들이 칙령을 따르도록 했다.

 

이 칙령에 사용된 언어는 인도 중부 지역에서 사용된 언어로서 브라흐미 문자로 기록했는데, 비문은 현대의 방글라데시·인도·네팔·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지에 흩어져 있으며, 인도 초기 불교 역사에 대한 최초의 실증적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인 담마(진리)를 언급하고, 자신의 불교적 신념을 강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불교 철학적 차원보다는 사회적 도덕적 규범에 초점을 맞추고 공공장소에 비문을 새겨서 사람들이 잘 읽을 수 있는 위치에 설치했다.

 

인도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발견된 비문들은 브라흐미 문자를 사용한 마가디어(불교 발생지역)로 쓰여졌으며, 북서쪽에서는 카로슈티 문자, 그리스어, 아람어 문자를 사용한 지방어가 사용되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이 카로슈티 문자, 그리스어, 아람어 문자이다. 카로슈티문자는 아람문자에서 유래한 것은 확실하지만, 아직도 연구중이다. 카로슈티 문자는 고대의 남아시아 서북부 및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된 문자이다. 현재 알려진 불교와 관계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이 문자로 쓰여져있다. 브라흐미 문자가 남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준 반면, 카로슈티 문자가 사용되는 지역은 남아시아 서북부로서 현재의 파키스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에 한정되어 지방방언의 일종인 간다리어를 표기하는데 사용되었다.

▲ 아소카 칙령 13과 14의 그리스어 비문.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발견.칸다하르는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창건된 알렉산드리아 폴리스(도시국가)였다.  

 

아람어는 한때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후 600년 무렵까지 고대 오리엔트 지방의 국제어로 사용되었으며, 아프로아시아어족의 셈어파의 북서 셈어군에 속하는 언어이다. 현재는 시리아 일부 부족과 이라크 일부 부족이 사용한다.

 

기원전 1000년 전후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아람인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전역에 침투하여, 아람어는 그에 따라 화자 인구와 그 활동 범위를 한꺼번에 확대했다. 그 후 계속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등의 대제국에서도 아람어가 국제적인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고대 아람어 연구는 아시리아학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갈릴리 지방에서 생활하였던 예수가 사용한 언어라고도 한다. 고대에는 아람 문자로 표기했으나, 현재는 아람 문자에서 파생된 시리아 문자를 쓴다.

 

그리스어는 인도유럽어족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다. 3,500여 년에 걸쳐 기록되어 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어는 그리스, 키프로스, 불가리아, 알바니아, 북 마케도니아, 이탈리아, 터키 등에서 약 1,500만 명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그리스인 이민자 공동체를 비롯한 전 세계의 여러 그리스인 이민자 공동체에서 사용한다.

 

아소카 칙령 13자비로운 왕(아소카)은 담마에 의한 정복을 가장 훌륭한 정복이라고 생각한다. 자비로운 왕은 그의 영토에서 뿐만 아니라 국경 지방의 사람들과 심지어는 6백 요자나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담마에 의한 정복을 성취해 왔다. 그 나라들은 앙띠요까라는 이름의 요나(그리스) 왕과 앙띠요까의 영토 그 너머의 땅에 사는 뚜라마야, 앙띠끼니, 마까, 그리고 알리까수다라라는 이름의 네 왕들의 나라이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쪼다, 빤디야, 그리고 땅바빵니 나라만큼 멀리까지이다. -<바위 담마 칙령 No.13.>

 

아소카 대왕은 불교전도 특사를 그리스에 파견한 것은 분명하며, 헬레니즘 세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더 연구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리스 문자와 그리스 철학적 언어로 된 칙령의 존재는 칸다하르에 존재했던 헬레니즘 공동체에 그리스 지식인과 인도 사상 사이에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의 그리스 이집트 역사학자이면서 금석학자인 루이스 로버트(Louis Robert 19041985)는 인도 문화에 매우 익숙했던 칸다하르 지역의 그리스 교민들이 셀레우키아,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펠라 또는 키레네에서 차례로 인도 사상을 지중해 세계의 헬레니즘 철학계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하였다. 그는 아소카의 바위 담마 칙령 제13호에 따라 서부 헬레니즘 지역으로 파견된 유명한 아소카의 전법 사절단이 그 사행 임무를 수행할 충분한 능력을 가진 칸다하르의 그리스인 교민과 칸다하르 주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스리랑카 역사서인 마하왕사(大史)에도 아소카 왕의 재위 17, 3차 불경 결집 말기에 아소카가 남아시아의 8개 지역과 '요나스의 나라'(그리스)에 불교 전도사를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정리해본다면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알렉산드리아 도시국가 건설, 그리스 공동체에 아소카 바위 담마 칙령을 세웠고, 불교전도사를 지중해 그리스 본토까지 파견했으며, 비문 상으로는 불교가 전파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 알렉산드리아(이집트)의 헤론(기원후10년경~70년: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고대 그리스인 발명가이자 수학자)에 따르면 위의 그림은 이집트 사원의 바퀴(법륜)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비석에 있는 그림은 수레바퀴(법륜)와 트리술라(삼지창) 기호를 상징한다.    

 

불교가 그리스 본토나 레반트(시리아, 이스라엘), 이집트까지 전해졌다고 해서, 이 무렵부터 서양에 불교 신자들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 서양학자들은 헬레니즘 세계, 특히 알렉산드리아에 불교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1세기 로마의 역사가 디오 크리소스톰(고대 그리스철학자)은 알렉산드리아인에게 쓴 글에서 "너와 함께 볼거리를 보며 매사에 너와 함께 있는 인도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기원후 83년경~168년경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점성학자)도 알렉산드리아에는 인도인들이 있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인도 지식을 익히고 배우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신학자)도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인도인의 존재를 언급하였다.

 

영국의 이집트학자 플린더스 페트리(18531942)에 의해 발견된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비석은 불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법의 수레바퀴(법륜)와 인도 힌두교의 시바 신의 삼지창을 상징하는 트리슐라를 묘사한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11세기 이슬람 역사학자 아부 라이한 알 비루니에 따르면 이슬람의 등장 이전 불교도들이 서아시아의 최전방 시리아까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불교와 키레네학파(기원전 4세기),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 기원전 341기원전 271년 아테네)는 철학적 사유의 유사성이 주목된다. 키레네의 철학자들의 입장은 불교에 가까웠고, 그의 사상들은 고통의 불교 교리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들은 아소카가 보낸 전법사들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에세네파나 알렉산드리아의 테라페아(테라와다)와 같은 종교 공동체도 아소카 대왕의 사명을 좇아 불교 수도원주의의 모델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세네파는 유대종교 시대에 사두개, 바리새와 함께 형성된 유대교 유파이다.

 

▲ 클레멘트(클레멘스 기원후 150〜215)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교 신학자였으며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신학교의 수장이었다.    

 

에세네파는 기원전 3세기에 형성되어 기원후 1세기에 사라졌다. 쿰란 공동체가 발견되면서 유대교의 공동체 생활을 한 지파인 것으로 밝혀졌다. 에세네파가 흔히 쿰란 공동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금욕생활을 하던 곳이 정치적 이유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들의 정착지 중 하나였던 곳인 쿰란(Qumran) 동굴이 온전히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으로 도래할 종말에 대한 기대와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세상을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로마제국 사회와 격리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반로마제국 성향이었던 에세네파는 유대독립전쟁 와중에 로마군이 공격하여 궤멸된 것으로 보이며, 쿰란 유적에서 현존하는 구약성서 사본들 중 가장 오래된 사해사본이 1947년 발견됐다.

 

테라페아파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필로: 기원전 20년경기원후 50년경)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필론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이며,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사용하여 알레고리(풍유) 해석을 최초로 시도한 학자이다. 이 방법은 오리겐(오리게네스 185년경254년 경: 알렉산드리아학파를 대표하는 기독교의 교부. 매우 독창적인 신학 체계를 세웠기 때문에 이단과 논쟁하였고 극단적인 금욕주의 생활을 고수했다.)에게 알레고리 성경해석을 만들게 했다. 필론의 사상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의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테라페아파는 인도의 테라와다(상좌부)라는 부파불교파일지도 모른다는 연구가 진행중에 있다. 그러므로 초기기독교와 불교의 관련설이 서양불교학자들에게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원크 코리아 대표>  

▲ 아야 소피아(하기아 소피아) 박물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필자 보검스님. 터키,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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