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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서평 ● 신종교 연구의 종교학자 김탁이 해석한 민중 예언서 『정감록과 격암유록』

이호재 | 기사입력 2021/11/26 [07:52]
한국의 묵시록 『정감록과 격암유록』 해석으로 ‘예언학’초석을 놓다

이호재 서평 ● 신종교 연구의 종교학자 김탁이 해석한 민중 예언서 『정감록과 격암유록』

한국의 묵시록 『정감록과 격암유록』 해석으로 ‘예언학’초석을 놓다

이호재 | 입력 : 2021/11/26 [07:52]

한국의 묵시록 정감록과 격암유록해석으로 예언학초석을 놓다

 

종교학자 김탁의 정감록과 격암유록(민속원, 2021)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불현듯 학창 시절부터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읽었던 정감록격암유록(신유승, 세종출판공사)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정감록은 이본만 50여 종 이상 존재할 정도로 민중 사회에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민중의 묵시록이다. 조선 시대의 남사고가 작성한 비결로 전해지고 있는 격암유록은 해방 후 그리스도교 신종교의 교세 확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은폐된 민중의 집단기억을 회고시킨 종교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 신종교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종교학자로 이 분야에 독창적인 연구성과를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 1995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증산 강일순의 공사사상의 박사논문을 비롯하여 증산교(1992), 증산 강일순(2006), 한국종교사에서의 동학과 증산교의 만남(2000)등의 연구로 증산연구를 마무리하고, 한국의 관제 신앙(2004), 정감록(2005), 한국의 보물, 해인(2009), 조선의 예언사상 상/(2016), 일제강점기의 예언사상(2019) 등으로 민중사상 연구로 연구범위를 확장 시키며 이 분야에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중견 학자이다.

 

평자가 이 책에 주목하는 까닭도 한국 신종교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능력을 가지고 한국의 사유체계인 민중종교 사상을 발굴하고 체계화하여 한국 종교사의 여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감록격암유록은 특정 조직과 특정인에 의해 아전인수격으로 편향된 관점에서 해석되어 혹세무민의 대명사로 민중에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깊이 인식하고 왜곡된 민중 예언서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을 교정해 줄 수 있는 해석체계로 재탄생시켰다. 뿐만 아니라 격암유록의 예언 용어를 해설하는 본문에서 다양한 해석의 용례를 제시하고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을 분별하여 열린 해석의 장으로 남겨두는 학문의 정직성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인상이 깊다.

 

격암유록은 현대에 편집된 민중예언서

 

세계 경전은 창교자를 중심으로 과거의 신화적 사건과 역사적 현실과 미래의 예언세계가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엄밀히 말해 예언-미래에 대한 밝은 약속이 없는 경전에 바탕을 둔 종교는 종교적 인간과 호흡하지 못하고 역사적 화석으로 소멸해 버린다. 그리스도교의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예언서, 주역과 정역의 예언, 미륵경전과 정토삼부경이 묘사한 용화세계와 정토세계, 한국 신종교의 경전에도 신관혁명, 지축변화 등의 공간혁명, 신선세계에 대한 미래세계 등에 대해 놀랄만한 예언을 담고 있다.

 

정감록이 풍수지리사상, 천운순환사상, 천문사상, 비결사상, 진인(眞人)사상, 음양오행사상, 승지(勝地)사상 등이 포함된 조선시대의 예언서라면, 이를 바탕으로 한국 그리스도교 신종교측에서 편집한 격암유록은 도참사상, 남조선사상, 기독교사상, 불교사상, 도교사상, 신종교사상 등이 포함된 현대의 민중 예언서이다. 그러나 민중 신앙의 경전인 정감록격암유록은 통치계급에 의해 이단시되고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되고, 외래종교에 의해 터부시되어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중 예언서가 한자로 기록되어 있어서 일부 핵심적인 부분은 파자(破字) 형식의 도움을 받아야 해석할 수 있는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파자 형식의 해석체계가 흔히 논리적인 해석과는 동떨어진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미신과 사이비의 온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예언서에 대한 합당한 평가가 아니다. 해석이 완성된 경전은 경전으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하고 만다. 어느 경전에나 해석의 난해성은 오히려 다양한 해석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어 경전의 생명력을 왕성하게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가 쓴 서문, 정감록에 대한 비판과 예언서의 사상사적 의미(16~40)와 격암유록의 개요 해설(42~55)을 정독하기를 권한다. 민중 예언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저자의 연구관점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정감록에 대한 비판과 예언서의 사상사적 의의이다. 길지 않은 부분이지만 저자가 민중 예언서를 대하는 태도와 안목을 파악할 수 있다. 정감록의 유래와 구성, 편집시기, 조선의 국운을 예언한 도참서의 성격을 가진 예언서로서의 특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감록은 현실 도피적인 성격, 미신과 유언비어적인 내용, 전근대적 세계관의 반영, 특정 세력의 왜곡된 선전으로 악용될 가능성 등도 있지만, 예언서가 특정 개인의 주장이 아닌 조선 민중의 심성이 집약된 예언체계라는 점이 강조된다. 이로 인해 예언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중략) 결국 예언의 본질과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은 바람직한 미래학의 기초를 쌓아가는 작업이라고 주장하며 예언서를 미래학으로 취급하는 저자의 열린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짧은 지면에 너무 많은 내용을 축약적으로 담았기에 정감록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는 저자의 또 다른 책 정감록(2005)일제강점기의 예언사상(24-239)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부분은 격암유록의 서론적 도입 부분이다. 격암유록은 세간에 조선 시대 풍수가인 남사고의 예언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는 격암유록정감록오마주한 훨씬 후대에 등장한 예언서라고 추정한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예언 텍스트에는 철학, 과학, 목욕탕 등 근대에 서구의 학문용어가 번역과정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 조어가 적지 않게 보인다는 실례를 들어 남사고의 격암유록이라는 통설을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격암유록이 서재필, 조만식, 박정희 등 정치가의 운명, 한국전쟁, 남북분단의 정치적 사건과도 연관하여 해석된 사례를 가설적으로 밝히며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셋째 부분은 격암유록의 주요 내용과 용어해석이다. 저자가 정감록격암유록에서 선별하여 해석한 용어해석과 평가는 이 책의 핵심이다. 특히 개별 용어에 대한 자세한 논구는 각 용어에 대한 한편의 용어 개념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치밀하게 다양한 근거를 들어 천착하고 있다. 독자들도 언젠가 들어봄직한 거론된 용어는 다음과 같다. 해인(海印), 십승(十勝), 낙반고사유(落盤孤四乳), 궁궁(弓弓), 궁을(弓乙), 을을(乙乙), 삼풍(三豊), 양백(兩白), 계룡(鷄龍), 계룡백색(鷄龍白石), 정감(鄭堪), 진인(眞人), 정씨(鄭氏), 정도령(鄭道令), 진사성인출(辰巳聖人出), 오미낙당당(午未樂當當), 이재전전(利在田田), 우성재야(牛性在野), 소두무족(小頭無足), 여인대화(女人戴禾), 우하횡산(雨下橫山), 십팔가공(十八加公), 사상가관(豕上加冠), 엄택곡부(奄宅曲阜), 삼인일석(三人一夕), 전내강도산(奠乃降島山), 인부지간야박천소(仁富之間夜泊千艘),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 길성조림(吉星照臨), 사답(寺畓), 찰두(七斗), 석정(石井), 남조선(南朝鮮), 부금냉금(浮金冷金), 천근월굴(天根月窟), 삼십육궁(三十六宮), 혈하궁신(穴下弓身), 이살태수(吏殺太守), 엄마(唵嚰), 묘각(猫閣),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포덕천하(布德天下), 시호시호(時乎時乎), 어양지말(魚羊之末), 대중소어(大中小魚), 흑비장군(黑鼻將軍), 백마신장(白馬神將), 가정(假鄭), 보혜대사(保惠大師), 박씨진인설(朴氏眞人說), 문씨진인설(文氏眞人說), 이씨진인설(李氏眞人說) 등이다. 저자는 이 용어에 대해 정감록과 대비하면서 격암유록의 출전과 선행연구에 대한 논설, 그리고 저자의 해석과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용어의 개념을 해설하고 해석하면서 격암유록을 단순하게 도참과 비결, 풍수지리와 특정 개인과 단체의 위작(僞作)’이라는 현상적 측면을 비평하지만, 한편으로는 민중의 예언서로서 한국 예언학을 정초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넷째 부분은 격암유록이 한국 그리스도교 신종교의 특정 종교가 교세 확장을 위해 현대에 만든 편집 예언서라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 주요한 근거로는 다음의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정감록의 진인은 정씨에 한정되지만, 격암유록에서는 박씨진인설, 조씨진인출현설, 문씨진인출현설 등 한국 그리스도교 신종교의 창교자와 관련되어 해석되며, 특이 예언서에 특정인의 이름이 파자로 나타난다(412). 뿐만 아니라 다른 진인출현설로 까지 해석될 만큼 격암유록은 민중의 심성을 격동하게 하는 종교적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보혈, 재림, 성신 등 성서의 언어를 공유하며 해방 이후 교세가 급성장한 한국 그리스도교 신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예언서임을 방증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적 용어의 실례는 책의 440쪽을 참고하기를 바라며, 특히 성서의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의 흔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최중현의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2)(279~325)을 참고하면 된다.

 

저자는 격암유록은 화석화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특정한 여건이 주어지면 폭발적인 확산을 가능케 하는 민중의 영성 에너지를 담지한 역사적 사례로 실증한다. 특히 성서에서 구약이 없으면 신약을 해석할 수 없듯이 정감록이 없으면 격암유록은 해석할 수가 없다는 것을 논증하며, 격암유록이 현대에 특정 종교조직이 만들었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입증한 것은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학으로서 예언학의 탄생을 기대하며

 

평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민중 예언서가 예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한국의 역사적 공간에서 역사적 식민주의와 종교적 사대주의의 풍토로 인해 민중의 예언서가 평가절하되어 대부분의 연구자가 그다지 큰 학문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의 학문적 용기로 시도된 격암유록의 해석을 통해 조선시대와 근현대의 한국의 종교적 문화와 역사적 사건을 민중의 사유체계로 전승되어온 예언 사상이 미래예언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종교현상으로서 경전의 편집은 해당 지역의 역사관과 인명과 지명을 바탕으로 역사 문화적 사건으로 기록되며, 이는 역사적 사건으로 구체화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해석되어야 하는 종교문서로 존재한다. 저자는 강증산의 신종교사상을 박사 논문으로 학계에 소개한 개척자로서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한국의 종교유산에 생명을 불어넣는 연구작업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하며 학문의 길을 걷고 있다. 앞으로 저자가 한국 민중의 예언서와 세계 경전의 예언서를 집대성한 예언학을 미래학으로서 자리매김하는 학문작업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한국 예언학의 초석을 개척한 역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필자 이호재 원장은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 종교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자하원 원장이다. 관심 영역은 동서양 종교 사상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의 사유 체계를 구축하여 새 축 시대의 영성 생활인'이라는 생활 프로젝트를 세계화하는 데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 종교운동(2018), 한밝 변찬린: 한국 종교 사상가(2017), 인생 지도(2017)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의 신명(神明)사상과 신명공동체, 한국 재래 종교의 '구원', 변찬린의 새 교회론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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