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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영혼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2/24 [13:28]
사나소 이야기

길 잃은 영혼들

사나소 이야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2/24 [13:28]
 
지난 번 원고 ‘환상의 발견 물, 영혼’에서 죽은 사람들의 넋을 이끌고 유럽 산하를 돌아다닌다는 유령 왕(?) 보탄(Wotan)이 등장했다. 심리학자 융이 자신의 경험을 들먹이며 보탄의 존재를 은근히 인정한 대목이다.


죽은 사람의 넋이 이승과 완벽히 구분 지어진 저승에 가지 못하고 그 중간지대 또는 아직 이승 어딘가를 맴돈다면 그들은 이승에 아직 미련을 가진 일종의 원혼이 아닐까? 그런 서양의 원혼들이 보탄이라는 왕초 밑에 집결한 것일까?


永生하지 않는 神


먼저 보탄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보자. 
보탄은 신화에서도 인간이 아니다. 보탄은 북유럽 켈트 신화의 주신(主神)인 오딘(Odin)으로 인간을 창조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신 가운데 가장 높은 신이면서도 신에게 지혜를 준다는 미미르 샘의 물을 실컷 마셔 지혜제일 신이 되기도 했다. 그 오딘을 독일어로 보탄이라 부른다.


오딘이 한쪽 눈을 잃은 애꾸 신으로 표현되는 것은 이 미미르의 샘물을 마시려고 샘을 지키던 미미르 신의 요청대로 자기의 눈 한 개를 뽑아 샘물에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 대부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영생을 한다. 하지만 켈트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그리고 그들이 이룩해 놓은 세계는 죽기도하고 멸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딘은 지금 죽은 신이다.


그렇다면 오딘은 이집트의 오시리스처럼 저승 중심에 앉아 저승을 다스리거나 불교의 아미타불처럼 극락을 만들거나 그렇게 저승에 자신의 영역도 마련하지 못하고 인간세상인 이승에 미련을 가진 원혼 神이 되었다는 말인가? 원혼이라 하더라도 神 출신이니 인간원혼들에게는 당연히 신으로 떠받들어 질 터이다.


동양 전통에서는 죽은 후 魂은 하늘로, 魄은 땅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돌아가는 길’에도 돌아가기를 거부하거나 길을 잘못 드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과정에서 원귀 유령 잡귀 객귀 등의 각종 귀신들이 탄생한다.


혼은 하늘로 돌아갔는데 백이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체에 그냥 남아 말썽을 피우는 경우도 있고 마귀나 악마 등 저승의 나쁜 세력에 잡혀 이용당하든가 혼이 길을 잃고 하늘로 못간 경우도 있다.


사고치는 귀신들
 
▲ 중국판 길잃은 영혼 ‘강시’. 죽은 후 땅으로 돌아가야 할 백(魄)이 이승에 머물며 자기 시체를 움직여 난동을 부리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

중국에서는 죽은 후 땅으로 돌아가야 할 魄이 이승에 머물며 자기 시체를 움직여 난동을 부리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강시’라는 것이 있다고 보았다. 정신세계와 인간의 이성을 움직여 왔던 혼이 하늘로 올라가 버렸으니 魄만 남은 '강시'에게 이성이나 다른 그 비슷한 것이 있을 리 없어 포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엄청난 힘을 지녀 어지간한 사람으로는 대적하기도 어렵다. 사람을 납치하기도 하고 죽이고 잡아먹고....... 산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대책 없는 존재들이다.


오직 높은 道力이나 부적만이 강시를 물리치거나 그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홍콩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강시 퇴치법’을 보면 강시들의 이마에 부적을 철썩 붙이기만 하면 강시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장면을 더러 보지 않았는가.


보탄은 때로는 사악하기도 하지만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노래 부르고 춤추고 난리법석을 좀 피울 뿐이다. 정말 유령 가운데서도 신다운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인가?


대신 서양의 뱀파이어라든가 중국의 강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남미 쪽으로 옮겨 간 부두교의 좀비 등은 원귀라기보다 시체 자체가 악령에 조종 받는 허수아비들이다.


세계 곳곳에는 그 이름만 다를 뿐 시체가 살아나 사고치는 귀신이 많다. 강시로 좀비로 드라큘라로.
이 모두가 죽은 사람들이 잘못되어 일으키는 소동들이다.
악마나 나쁜 마술사, 저승의 나쁜 세력들에 의해 조종된다는 이 같은 귀신들과는 달리 한국에는 창귀(倀鬼)라는 독특한 것이 있었다.


나쁜 흑마술사나 악마나 그런 세력이 아니고 호랑이에게 조종되어 인간을 괴롭힌다는 정말 한국적(?)귀신이다.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영혼-창귀


창귀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영혼을 말하는데, 이들 혼령은 감히 어디 가지도 못하고 오로지 호랑이의 노예가 되어 호랑이에게 봉사할 수밖에 없다. 그 봉사란 살아있는 사람을 유혹해서 호랑이 밥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호랑이 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새로 잡아먹힌 사람이 다시 창귀가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게 된다.
워낙 虎患이 많았던 이 땅에 사람 잡아 먹는 호랑이가 악마 대접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호랑이 화를 당한 집안과는 아무도 혼사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전한다. 일단 창귀가 된 혼령은 그의 사돈에 팔촌까지 손을 뻗어 호랑이에게 먹힐 사람을 찾아 유혹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예부터 창귀에 얽힌 이야기도 많고 창귀에 얽힌 속담도 있다.
창귀에 홀린 사람은 자꾸만 나가 돌아다니려는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그 증상이 역마살 하고도 좀 다른 모양이다.


그런데 이 창귀가 소귀나무나 청매 등 신맛이 나는 것과 소라와 골뱅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호랑이 사냥꾼들은 호랑이를 잡는 함정 부근에 소라나 골뱅이, 신맛 나는 음식을 놓아 먼저 창귀의 주의를 산만하게 해 놓고 호랑이를 잡았다고 전한다.


박지원의 ‘虎叱’에도 창귀가 나온다.


호랑이가 처음 잡아먹은 사람의 창귀는 ‘굴각’으로 불리며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어살면서 호랑이를 부엌으로 인도 한다. 부엌에 들어 간 호랑이가 솥전을 핥기 시작하면 주인이 갑자기 배가 고파져 늦은 밤에라도 아내에게 밥을 짓게 한다. 부엌에 나온 아내가 어찌될지는 뻔하다.


두 번째 잡아먹힌 혼령은 ‘이올’이라 부르는데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어살며 높은데 올라가 위험을 살피고 골짜기에 함정이나 덫이 있으면 먼저 가서 이를 제거해 버린다.


세 번째 잡아먹힌 혼령은 ‘죽혼’이라 불리며 호랑이의 턱에 붙어살고 평소에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어 이들을 불러낸다.


살아 있는 사람이 슬픈 노래를 자꾸 부르면 창귀에 홀린 것으로 보기도 했다. ‘창귀 들렸나. 청승스럽게......’라는 말은 그래서 갑자기 구슬프고 청승스럽게 노래를 흥얼대는 사람에게 해 주는 말이기도 했다.


옛날에는 전국적으로 호랑이에게 화를 당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지방에 따라 창귀의 이름도 여러 가지였다.
山橫死 귀신, 홍살이 귀신, 뫼 귀신, 가물글기 등이 창귀의 다른 이름들로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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