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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이론이 아닌 사랑이 되어야 한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2/02 [09:13]
블로그에서 본 종교세상

“종교는 이론이 아닌 사랑이 되어야 한다”

블로그에서 본 종교세상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2/02 [09:13]
 
종교는 인간의 생각과 삶을 인도해 주는 것 중의 하나


우리들은 현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면한 자연현상에 관해서 그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작물을 풍요로운 열매가 달리게 한다든지, 재해를 방지한다든지, 병을 치료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과학과 기술로서 가능해졌다.


그럼, 종교의 역할은 이제 끝난 것일까. 일본사람 대부분은 종교를 믿는다는 자각은 없다. 그러나 주변에는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이 발달되어 있어도 모르고 있는 것, 어떻게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의 것은 한치 앞도 예견 가능한 것이 없다.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고 만다. 인간의 일생은 바뀌지 않는다. 인간이 유한성에 직면했을 때 생각의 방법과 삶의 방향을 인도해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종교이다.


 kimgd0430님의 블로... blog.naver.com/kimgd0430 


인간은 신앙으로 힘을 얻는다


인간의 참된 신앙이란 휴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삶에 대한 힘을 얻기 위해서이다. -러스킨-


모름지기 인생은 분열과 모순에 의하여 풍요롭게 꽃핀다. 도취를 모르는 이성과 냉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죽음을 배후에 가지지 않는 감각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양성에 있어서 영원한 적의가 없었더라면 사랑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인간에게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종교나 신앙이 필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건강이나 부, 지혜나 권력을 얻어 편안한 휴식을 가지기 위해 신의 존재를 자기 삶에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신앙을 지탱하기란 힘이 들 것이며, 그렇게 되면 휴식이라기보다 고뇌가 훨씬 쉽게 찾아올 뿐이다. 타인의 지혜로는 멀리 갈 수 없다.


Catharsis gurum.me 작성자: Catharsis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면, 종교와 예술의 위상은?


P. Bloom “There are no souls”(엮인 글)을 읽고 간략한 코멘트를 본문 위에 달아놓고 보니, ‘영혼’을 빼면 완전 시체인 종교와 예술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류의 거친 환원주의는 일반인의 정서 속으로 먹혀들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반인륜으로 내몰려 수용 및 논의의 길이 차단되는 현상을 흔히 목격한다. 그러나 자연주의 견지, 혹은 물리법칙을 단지 심정적 불편함을 이유로 저항하고 거절하는 태도는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예술이 주장하는 ‘말할 수 없는’ 혹은 ‘기술할 수 없는’ 어떤 미학적 가치라는 입에 발린 인상비평 또한 영혼이 두뇌로 환원되는 과정처럼, 어떤 단순한 원리로 수렴되어질 것이다. 비록 그것이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만큼이나 일반에게 수용되긴 버거울 테지만 말이다.


반이정 미술평론 blog.naver.com/dogstylist 작성자: 반이정


종교와 예술의 사이


종교는 종교일 뿐인데 기독교단체들이 음악이라는 예술에 딴지를 걸고 있다는 게 슬픕니다. 예술과 종교는 다르지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대중예술과 종교예술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대중예술을 종교예술에 편입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엄연히 다른 것인 데도요.


저번에 필리핀 기독교단체들이 레이디가가의 공연을 반대했다지요. 물론 관습은 중요하지만 예술은 예술이고 관습은 관습입니다.


잡다한 것만 있는곳 blog.naver.com/gangno3 작성자: 이근기


종교가 이론이 아닌 사랑의 일이 되게 하라


종교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 사랑 없는 종교는 믿음 없는 신앙이다. 성경에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구절이 있지만, 몇몇 기독교회에서는 남을 판단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지금까지 자신과는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자비를 베푼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다. 하지만 그런 예수님을 따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은 과연 이 자비를 실천하고 있을까. 모든 종교의 가르침에는 보편적인 요소가 있다. 친절, 자비, 정직, 배려, 자선, 생명, 존중 등이다.


teorbonator.blog.me/30160283621 ♥삶의 비타민♥ 작성자: 뽀관


외국인 남편이 만난 한국종교풍경, 너무 특이해


스페인은 과거 종교가 정치를 타고 횡포를 많이 해온 터라 지금은 쇠퇴기에 들어서 있다. 한국과는 달리 스페인의 일요일 성당의 미사 풍경은 살벌하다. 참석한 사람은 노인네 몇 명, 그리고 신부….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도 실질적으로는 무종교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역사적, 문화적으로 이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 관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성인의 날, 세례식 등은 습관적으로 꼭 해야 하는 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런 풍경의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세계를 돌며 만난 종교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종교에 대한 자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신을 믿고 사람을 도우려는 진심어린 종교와 세습화되어 종교가 습관적, 상업적으로 변한 경우 두 가지로 나누었다. 동남아시아의 불교 사원에서 진심어린 명상과 깨달음에 대한 템플 스테이를 했는가하면, 불교 사원에서 보시용으로 쌀, 향 자동판매기를 보고 놀란 적도 있었다. 돈을 집어넣고 보시용 향을 사서(?) 원하는 소망을 기원하는 것... 이런 종교의 이중성에 크게 놀랐었다.


스페인 고산평야의... blog.daum.net/mudoldol 작성자: 산들이


깨달음이 없는 종교는 믿을 필요가 없다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지성과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자연과학의 발달과 이성적인 깨우침으로 현대문명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과학지상주의는 물질만능의 풍조를 낳았고 그로인해 인간성이 파괴되어 사회적 불안요인이 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종교 또한 세속화되면서 본래의 기능인 경건한 기도생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 서로 사랑하는 삶은 한 갓 구호에 그치고 그 자리를 세속화된 풍조가 급속도로 메워가고 있다.


교회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짓는 것이 부흥과 성공의 척도가 되어 서로 많은 교인을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어 경쟁하면서 작은 교회들은 점점 설 땅을 잃고 거대한 공룡교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무신론자가 새롭게 신앙을 갖는 게 아니라 기존의 신도를 놓고 서로 뺏고 빼기는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는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도구에 불과하다. 오직 종교만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하얀마음 쉼터 hands0160.blog.me 작성자: 서로사랑 이춘우


다양한 종교가 있는 사회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다양한 종교들 간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라다크(Ladakh)는 수백 년 동안 불교지역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슬람, 기독교, 힌두교, 시크교와 같은 다른 종교들 역시 이 지역에서 번성했고, 이 지역은 종교적 배척으로 인한 큰 문제없이 평화롭습니다.


다양한 종교가 있는 사회는 예언자와 안식처의 원천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다른 종교와 수행자들이 상호 화합하고 존중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존중을 구별해야만 합니다. 믿음은 각자의 종교에서 가져야 하는 온전한 신앙을 말함과 동시에 여타의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다민족, 다문화적 세계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수립한다면 분명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부주의하게 된다면 일촉즉발의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광우의 문화읽기 blog.daum.net/misulmun49 작성자: 김광우


말세에는 종교라는 이름의 배를 타지 말라


기독교에서는 말세, 심판의 시기라 하고, 불교에서는 미륵의 시대, 용화세계라 하며, 선도 등에서는 후천세계라고 한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말세에는 종교라는 이름의 배를 타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에고적 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기의 종교이다. ‘종교라는 이름의 배를 타지 말라’는 얘기는 기성의 모든 관념과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수천 년 간 인류는 너무 잘못되어 왔다. 이기적이며 사악하고 난폭한 악마적 삶을 살아왔다. 지금 현재 이 모습은 인간의 본모습이 아니다. 형상과 내용, 의식, 능력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 오래된 종교일수록 에고적 틀이 심하게 굳어져 있다. 수용적이기 보다 배타적이다. 자기 것 이외의 모든 것은 잘못된 것으로 간주한다. 기존의 철학, 사상이나 이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종교의 교주들은 이와 같은 종교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잘못되고 깨지 못한 인간들의 의식을 깨워주려고 했을 뿐이다.


가이아의 정원 blog.naver.com/znani2020 작성자: 마하슈리


사랑의 뇌, 종교의 뇌, 정치의 뇌


기도 중인 수녀, 사랑을 속삭이는 무신론자, 연설중인 결혼하지 않은 무신론적 정치가 이 셋의 fMRI(뇌기능을 보는 MRI)를 찍어보면 같은 부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을까. 비록 내 정치적 신조가 ‘정치는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적 신조는 ‘종교가 정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이긴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사랑, 종교, 정치 셋 중 하나에 탐닉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든 충분한 ‘욕구’가 만족되면, 쾌감중추를 자극하는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자극 경로가 어떤 것이든 크게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천재는 기본적으로 욕구의 그릇이 큰 사람이고, 욕구충족경로를 단일화 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 뉴턴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평생 자의적 독신으로 지낸 것을 보면. 요즘 내게 프로포폴 중독, 맹목적인 사랑, 종교에 대한 광신, 정치이데올로기, 성공에 대한 열망은 똑같은 위험도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시방 위험한 상태다. 아주 오래전부터.


loquens.tistory.com/154 펜시브의 무권해석 작성자: 팬시브


내가 타종교에 관대한 것은


내 종교관에 대해 좀 정리를 해보자면, 신은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단지 그 신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나에게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는 학문의 대상이지 그 자체가 내 믿음의 대상은 아니다. 내가 타종교에 대해 관대한 것은 이러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를말하는곳 blog.naver.com/happy6988 작성자: 우스갯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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