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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허운석 선교사의 간증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2/13 [18:51]
환란과 곤란을 기뻐하라

故 허운석 선교사의 간증

환란과 곤란을 기뻐하라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2/13 [18:51]

▲     © 매일종교신문

제가 암 투병의 악전고투 가운데 마지막으로 배운 교훈은 ‘환란과 곤란을 기뻐하는 신앙’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사도바울처럼 약한 것들과 궁핍과 핍박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런 것들을 멀리하게 해 달라고 금식하고 철야하고 작정기도하지는 않습니까? ‘곤란’한 일을 면하게 해 달라고, 특별헌금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내 유익을 위해서 항상 신앙생활(기도, 헌금, 봉사)을 합니다. 이건 잘못된 신앙생활입니다.
 
내 유익 위한 신앙은 잘못된 신앙
 
아니, 내 약한 것과 능욕 받는 것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요? 눈을 씻고 성경을 다시 쳐다보니 사도바울은 정말 그런 것들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약할 때 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 십자가를 아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아, 제가 얼마나 그리스도께 충성한 사람인데, 6년 전에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제 주위 사람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저렇게 아마존 선교지에까지 가서 충성한 사람인데, 축복을 못 주실망정 암을 주셨다고?’ 어떤 사람들은 ‘일은 잘 했을지 모르지만, 죄가 가득하거나 자아가 깨지지 않아서일 거야’ 그렇게 저를 정죄하였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암이 퍼진 폐를 일부 잘라내고 누워있으면서 제가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재미로 삽니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너무 기쁩니다. 왜냐하면, 제가 더 탄로 나니까요. 제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며, 내 속에 뭣이 숨어 있다가 드러나고, 그래서 회개하게 되는지 이걸 보는 게 저의 기쁨이고, 성령 충만입니다. 제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회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부족하군요.’ 이렇게 자신의 모순을 발견할 때 절망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자아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즉 아직 자기가 옳은 줄 알고, 쓸 만한 줄 아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제가 암으로 죽느니 사느니 할 때 저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사탄이 찾아와서 하나님 앞에 저를 참소했을 것입니다. 욥기에 나오는 것처럼요. ‘하나님, 그를 치십시오. 그러면 그가 주를 대하여 욕할 것입니다. 분통을 터트리고, 노발대발할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나 놀랐습니다. 제 마음이 평온한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나은 상태라서 지금 이렇게 설교하고 있지만, 그 통증은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입니다. 암환자의 통증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참아낼 수 없는 그러한 고통입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아프면 오로지 고통 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파죽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은혜고 뭐고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오로지 ‘예수님’이라고 하는 그 단어 하나만 안 잊어버리고 버텼습니다.

아무런 은혜도, 다른 것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 자체가 저를 고문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다른 감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잔잔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후회하거나, 세상에 대한 어떤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냥 당하는 겁니다. 그냥 당하면서 가는 거죠. 제가 조금 안심했습니다. 욥처럼, 제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니까요.
 
응답 못 받았다고 자폭하지 말아야
 
그 고통을 당하면서 제가 깨달은 교훈이 환란과 곤란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저는 그것을 기뻐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율법주의로 살았을 때 내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해서 못 받은 그 앙심이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들켰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하나님께 받은 상처가 많을 수 있습니다. 내 욕심을 따라서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기도한 만큼 원한이 사무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못 받은 게 너무 많았으니까요. 기도를 작게 했으면 실망도 작게 했을 터인데, 기도를 금식, 철야로 엄청나게 많이 했는데도 응답을 거의 못 받으면, 그 실망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안 하셨으면 이런 심정을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엄청 세게 했는데도 하나님이 전혀 감감 무소식이면, 사실 자기 속에서 칼을 갈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뢰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제 기도를 듣기나 하십니까?’ 그러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좀 어떻게 잘 되게 해 달라고 그랬는데 영 하나님이 제 말을 안 들으시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곪아터져 가지고…. 내가 감히 하나님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자폭을 해 버립니다. 하나님께 제가 심하게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자폭해서 만사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왜 내가 그렇게 죽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는지….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좋아했는데 그때는 죽고 싶었습니다. 죽지 못해 안달이 났습니다. 자폭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 날 주님이 제게 이런 마음의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왜 그러고 있느냐? 네가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질 때까지, 네가 나를 기뻐할 때까지, 암을 통해서 너를 쥐어짤 것이다.’ 라는 감동을 제게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내가 이렇게 아름답게 창조하고, 네게 이 복을 주는 것을 네가 경험하고 와야 되지 않겠느냐. 네가 내게 원한에 사무쳐서 나를 죽일 수는 없고, 네가 자폭해서 영적인 자폐증에 걸린 그 죄를 회개하여라. 그리고 고난과 환란과 궁핍을 기뻐하는 수준에까지 올라가라.’는 마음의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 간증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처지나 경험을 이미 하셨거나, 아직 안 하셨으면 앞으로 거기에 이르게 되실 것입니다. 그때 자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지 마시고, 빨리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란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가 센 사람이라 계속 버틴 것입니다. ‘나는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 마음이, 제 속에서 뿌연 연기처럼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암을 통해서 저를 교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하도 선교비 달라고 울었는데 안 들어주신 것, 그것 때문에, 제가 자폭해 버렸습니다. 진짜 저는 선교비 달라고 너무너무 울었습니다. ‘주님, 나 먹고 살자고 지금 그러는 거예요? 당신 자녀들 먹여 살리자는 건데 왜 안 들어줘요?’ 그게 너무 원한에 사무쳐서 그만 자폭한 것입니다. 주님은 ‘네가 구해놓고, 네가 낙심하고 자폭한 것이다. 내가 언제 그렇게 구하라고 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너무 대들지 마십시오. 그게 도를 넘어 자폭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센 것을 주셔서 항복시키십니다. 저를 보십시오.
 
암환자인 내 얼굴 환한 것 ‘회개’가 원인
 
최근에도 한 가지 시험에 들 뻔 했습니다. 우리 딸 시집 잘 가게 해 달라고 오래도록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딸이 30대 초반인데 아직 시집을 못 간 것입니다. 게다가 딸의 친구들이 다 시집 간 것을 보면 제 속에서 막 화가 나는 것입니다. 아니, 기도를 안 했으면 시험에도 들지 않을 것인데, 딸의 결혼 문제를 놓고 오래 기도한 결과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응답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이 또 싫어지는 것이지요. 정답은 이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는 것’인데도 그게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게 이런 감동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주님은 나의 노래, 주님은 나의 기쁨, 오직 주만 나의 사랑! 이 고백이 진심으로 나와야만 네 딸이 시집을 갈 것이다!’

우리 마음에 각자의 소원이 있습니다. 이 소원을 무조건 우리가 간구하고, 강청하면 안 됩니다. 믿음이 연약한 초신자 때는, 간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사탕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빨 썩으니까요. 그래서 ‘사탕을 주세요!’ 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금식하고 철야해도, 하나님은 꿈쩍도 안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 어떤 소원이 있을 때는 ‘주님, 이걸 어떻게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분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무조건 내 뜻을 내세워서 강청하면 결국 나만 손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 저처럼 암까지 걸릴 필요가 없습니다. 제 속에 있는 그걸 끄집어내시려고 그 자폭한 것, 그래서 살 의욕을 안 갖는 이 마음, 하나님을 섬기다가 시험에 들어서 이 죽어진 마음, 이 마음을 살아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일(암)들을 연출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얼마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쁘고 감사한지요! 목숨이 다 끊어지게 되니까 민감하게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여러분이 보시기에 얼굴이 훤합니다. 그 비결을 지금부터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말기 폐암에다가 암세포가 장에도 잔뜩 퍼져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아직 멀쩡하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저를 핍박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제게 와서 ‘선교사님은 아직 깨어질 게 많다.’ 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기도해서 팍 나았는데, 왜 선교사님은 아직 못 나았느냐. 좀 더 믿음으로 기도하시라’고 사랑(?)의 권면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글쎄 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줄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권고하고, 무시하고, 야단칩니다. 제가 암환자니까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이렇게 되었으니까 겸손히 책망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시험에 들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다. ‘주여, 제가 옛날에 저 짓을 충만하게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더니만 지금 제가 뿌린 것을 거두고 있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나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니까 제 얼굴이 훤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시험에 들지 않고요.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보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안 그래야지’ 그러면 율법으로 가는 것이고, 그의 단점을 보고 나를 보면서 내 상한 제사(회개)를 드려야 합니다. ‘주여, 제가 그만하면 된 줄 알았더니 제 본성이 또 드러났습니다. 주님, 제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빨리 성숙해서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 그 형제의 짐을 들어주고 이래야 되는데 하나님,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아프고 쓰린 마음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녹취 및 정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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