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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60) 부처님, 道家, 도날드 월쉬의 영혼

정영부 | 기사입력 2022/12/23 [09:21]
영(靈)에 대하여

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60) 부처님, 道家, 도날드 월쉬의 영혼

영(靈)에 대하여

정영부 | 입력 : 2022/12/23 [09:21]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5()에 대하여이승은 지구만인가 그리고 직관과 영감(靈感)’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참고로 제5()에 대하여의 목차와 그중 이번 회에서 다룰 부분은 다음과 같다.

 

5. 영에 대하여

5.6. 영에 대한 기타 담론

5.6.1. 영혼에 대한 탐구의 과학성

5.6.1.1. 뉴 사이언스(新科學, New Science)

5.6.1.2. 정신적 앎과 영적 앎

5.6.2. 영혼과 삼계육도

5.6.3. 이승은 지구만인가?

5.6.4. 직관

5.6.5. 영감(靈感)

5.6.6. 깨어있기

5.6.7. 부처님의 영과 혼

5.6.8. 도가(道家)의 영혼(靈魂)

5.6.9. 도날드 월쉬의 영혼

 

깨어있기

 

수행(修行)이란 영이 혼을 컨트롤하는 것이고 명상(冥想)이란 마음을 사랑방에서 비우는 것이다. 둘 다 깨어있기위한 공부이다. 수행과 명상의 기본은 나는 마음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영과 마음을 분리하고 영이 혼을 컨트롤하는 것이다.1)

컨트롤의 시작은 관찰(觀察)’이다. 영이 관찰자가 되어 혼을 바라보는 것이다. ‘깨어있기혼을 관찰하기. 미립자(微粒子)도 관찰하면 행동이 바뀐다. 양자역학의 관찰자효과(observer effect). 혼 역시 관찰당하면 행동이 바뀐다. ‘혼의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 on Soul)’.(12.4.1. ‘명상이란?’ 참조)

 

다음의 표는 자아의 단계별로 자아의 방 주도권을 영혼육 중 누가 얼마나 쥐고 있나, 그리고 그때 혼의 정신체와 양심체의 비율은 각각 얼마나 되는가, 나아가 단계별로 깨어있는 시간은 얼마인가를 나타내는 표이다. 예컨대 영()이 자아의 방을 20% 이상 차지하며 11% 이상의 시간을 깨어 지내면 2.5단계 자아이고, 영이 자아의 방을 반 이상 차지하고 깨어있는 시간은 31% 이상이면 3단계 자아다.2) 마음은 자아의 방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깨어있기를 방해한다. 수시로 졸게 한다.3) 자면 지는 것이다. 깨어있으라.

 

부처님의 영과 혼

 

공식적인 불교 교리에서는 영()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부처님이 창조주와 영혼에 대하여 이야기하시기를 꺼리신 데서 출발한다.4)

부처님의 무아에 대한 가르침은 ()는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緣起에 의해 이루어진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실천적 의미일 뿐이다.5)

따라서 부처님의 무아론은 아가 진정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다음처럼 해석되어야 한다.

 

1) 혼은 영으로 진화하여야 하는 존재이고 이를 위해서 혼은 극복의 대상이므로 대부분의 아()가 혼인 중생들에게 그러한 아()를 극기하고 극복하라는 의미에서 무아이다.

2) 무아란 만물이 일원(一元)인 우주에서는 아와 타의 구별이 아무 의미 없다는 진리에서 자연스럽게 도출(導出)되는 결론이다. 우주는 인과의 법칙에 의하여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의 화엄의 세계이다. 이는 우주는 일원(一元)임을 말하는 것이고 일원의 세계는 너나의 구별이 없으므로 무아이다.6)

3) 불교에서는 오온(五蘊)7)의 식()이 육근에 작용하여 하위정신체인 제68)이 나오고 이것이 발전하여 상위정신체인 제7식 자의식이 생기며 이들이 모여 지혼인 제8식이 되어 윤회한다. 그러니 혼은 그 속성상 항상(恒常)할 수 없어 무상(無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9)

 

정말로 자아가 없다면 누가 수행(修行)하고 누가 사랑하며10) 무엇이 윤회할 것인가. 누가 자업자득이며 어디에 불성이 스며 있고 여래장이 깃들며, 또 청정심은 무엇이겠는가. 나아가 불설의 정토사상은 왜 도래하였으며, 왜 출세간을 이야기하고 무루계니 법계니 하겠는가. 또 법신(法身)이나 비로자나불, 나아가 본초불(本初佛)11)은 다 무엇인가. 14무기는 문자 그대로 무기(無記)일 뿐 부처님은 결코 혼과 영을 부정하시지 않았다. 없다면 부정하지 왜 무기하셨겠는가.

또한 영은 영계(靈界)에서 영생(永生)하는 존재. 불교의 出世間이 영계요 보살이 영이다. 그러니 불교에는 영이 없다고 하나 따져 보면 없지 않다. 기어코 없다면 창조주가 없을 뿐이다.

만일 불설이 고(, Dukkha)를 극복하고 열반하려는 주체(主體) 자체를 끝끝내 부인하는 사상이라면 더불어 논할 일이 없는 허무론(虛無論)일 뿐이다.12) 이 사실을 아는 불자라야 성문사과를 이루어 4단계 자아, 곧 아라한이 되고 명종 후 영이 된다. 자기(自己) 없이 어찌 열반하고 성불하며 또 성불한들 무엇하겠는가.

 

도가(道家)의 영혼(靈魂)

 

도가팔선(道家八仙)의 하나인 여동빈13)은 불로장생의 묘약인 용호금단 외에 악령을 퇴치하는 천둔검법(天遁劍法)으로 유명하다 한다. 그런데 이때 악령이란 악한 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번뇌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동빈은 노여움이나 욕망 같은 일체의 번뇌를 천둔검법으로 단호하게 잘라 내었다. 그런데 일체번뇌의 주체는 이다. 그렇다면 도가의 신선들은 혼을 악령으로 보고 칼로 다스린 모양이다. 표준이론에서도 혼은 영 또는 스스로가 다스려야 할 대상이다. 영을 인정하지 않는 도가에서도 혼을 다스려야 할 他者로 본 것은, 혼을 다스리는 주체를 전제하는 것으로 그렇다면 은연중 영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보인다. 표준이론 입장에서 보면 일응 당연하다.

 

한편 도가에서는 우주는 기로부터 창조되었다고 본다. 노자에 의하면 천하만물은 에서 생겨나고 유는 에서 생겨난다. 즉 우주는 형상이 있는 구체적인 존재가 아닌 무에서 생겨나는데 무는 그 자체로 이름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라고 칭한다.14)

무에서 유가 발생하는 점진적인 과정은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으며 둘이 셋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업고 양을 안으며 충기로써 조화를 삼는다15)라고 표현된다. 곧 하나는 이고 둘은 陰陽이며 조화로운 기(沖氣)는 그 셋이다. 이는 도 가운데에서 일기(一氣)가 움직이고, 일기가 청()과 탁()으로 나뉘어 음양이 드러나며, 음양이 운동하여 天地人 삼재(三才)가 생겨나고 삼재가 만물을 낳는다는 우주 발생론으로 이어진다.16) 또 노자는 도는 비어 있으나, 아무리 사용해도 늘 가득 차 있다. 깊고 넓어서 만물의 근본이라고 하며 의 연원(淵源)은 모르겠으나 옥황상제보다도 먼저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17) 도는 곡신(谷神)처럼 불사(不死)하고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아서 천지의 근본이라고 하였다.18) 나아가 노자는 ()과 백()을 하나로 통일하여 서로 떠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기운을 전일(全一)하게 모으고 부드럽게 하여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인간에 다다른 가 혼백(魂魄)을 형성함을 말하고 있고 이어 장자는 혼의 윤회설을 주장하여 도교 교리에 기틀을 제공하였다.19)

 

도교(道敎)20)에서도 도가의 창조설을 본받아 창조주인 원시천존(元始天尊)21)이 기로부터 태어났다고 한다. 기가 먼저 있고 여기에서 창조주가 나왔다 하니 앞뒤가 전도된 느낌이긴 하다. 결론적으로 도가와 도교에서는 결국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모두 기에서 자연히 발생(發生)하였다고 본다.

 

노자 도덕경에 나타나는 이러한 진술들과 도교의 여러 주장을 종합해 보면 도가와 도교에서는 태허든 원시천존이든 그리고 든 여기에서 근원하여 발생한 물질과 인간, 그리고 인간이 품은 음과 양의 기로서 영혼의 개념이 엄연하니 사실 세상 모든 종교가 서로 다른 것 같아도 진실의 모습은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도날드 월쉬의 영혼

 

하느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는 도날드 월쉬의 책 신과 나눈 이야기에 나타난 영과 혼에 대한 다음의 여러 이야기들은 표준이론의 그것과 여러 가지 면에서 상통한다.

 

1) 너희 몸은 그저 영혼(=)의 도구일 뿐이고, 너희 마음(=)은 몸을 움직이는 힘(=)에 지나지 않는다.

2) 영혼은 느낌을 추구한다. 가장 고귀한 느낌이란 존재 전체와 하나가 되는 체험(=합일)이다.

3) 뿌리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네가 가진 새로운 생각(=영감)에 따라 행동하라. 하지만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미처 깨닫기 전에 네 마음(=)이 그 생각을 죽일 것이다.

4) 직관은 영혼(=)의 귀다. 영혼이야말로 유일하게 생명의 가장 희미한 진동들까지 잡아내고, 그 에너지를 느끼며, 즉석에서 그 파장을 감지하고, 그것을 해석하기에 충분한 만큼 예민한 도구다.

5) 마음(=)은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로 영혼(=) 및 몸과 함께 결합하여 너희를 따라간다.

 

<註釋> 

1) 항상 마음을 놓치지 않고 저급한 열정뿐만 아니라 마음 자체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념을 제어할 수 있도록 끈기 있게 노력해야 하며 자신이 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항상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으로써, 마치 무사가 자신의 검을 마음먹은 방향으로 겨누듯이 마음을 사용하여 그것의 방향을 의지대로 돌리거나 가만히 붙잡고 있을 수 있어야 한다.(리드비터, 투시9장 투시력을 계발하는 방법 중에서)

 

2) 부록1 ‘자아의 수준에 따른 영과 혼참조

 

3) 졸리다는 표현은 혼에게 자아를 내준다는 말이다. ‘혼은 제3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무명(無明)을 걷어 내지 못하면 조는 것이다. 졸고 있는 시간은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이다. 영이 자아의 방을 차지하는 것보다 깨어있기는 더 어렵다. 또 깨어있기는 한 생()에 성취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한 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 영적 진화도 진화이니 경쟁이다.

 

4) 불교의 창조주와 영 그리고 혼

 

고타마 부처님은 정통 브라만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러니 수행길 초두부터 부처님은 아트만과 브라만에 대해 심각한 고찰을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창조주(브라만) 나아가서 영(아트만)과 혼(아함카라)의 정체를 중생들에게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1. 우선 부처님께서 창조주에 대하여 무기하신 이유는 뭘까?

1)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께서 인생을 로 만드신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2) 중생에게 창조주에 대해 가르쳐 줘 보아야 14무기(無記)의 주제(시공간의 무한성, 영의 존재와 영생여부)처럼 바라밀다를 닦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3) 부패하고 불합리한 당시 사회상의 主役인 브라만교를 개혁하려는 의도로 그들의 핵심사상에 대해 無記로 저항하신 것이다.

4) 창조주가 있는 경우 오온과 연기의 불설이 통일성을 잃는다. 차라리 창조주를 부인하는 편이 낫다.

여기에서 부처님의 독화살의 비유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독화살의 비유는 부처님의 무기에 불만이었던 만동자가 이번에는 이 세계는 누가 만들었고(창조주의 유무), 영혼과 육체는 함께 존재하는지 아니면 따로따로 존재하는지(영의 존재여부), 내생(來生)은 있는지 없는지(영생여부)”에 대해 부처님에게 물었더니 부처님께서는 독화살에 비유하여 공자님의 未知生焉知死의 답을 하셨다는 이야기다. 만동자의 비슷한 첫 번째 질문에 아예 무기하신 것보다는 한 걸음 더 나가신 답인데 그래봐야 공자님 수준이다. 공자님은 정말로 언지사(焉知死)였겠으나 부처님도 죽음에 대해서 모르셨을까? 그럴 리는 없으니 그렇다면 부처님 무기의 이유는 2)였다. 그런데 그 판단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다.

 

2. 그러면 아트만에 대해서는 왜 무기(無記)하셨을까?

1) 예수님이 바리사이를 폄훼(貶毁)하셨듯이 부처님은 아트만을 무시(無視)하셨다.

2) 무지한 중생에게 무상(無常, anitya, 아니티야)과 고(, Dukkha, 둑카)를 알리려다 보니 제도(濟度)의 방편상 영의 존재는 언급하지 않으신 것이다.

3) 부처님 당시에는 혼만 가진 중생들(현재도 90%이니 당시에는 이를 훨씬 상회하였을 것)이 많아 구태여 영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4) 무아(無我)의 가르침으로 인해 혼의 시부인(是否認)도 불명한 마당에 차마 을 이야기하기 어려우셨다.

 

3. 그럼 그 후학들은 왜 혼마저 인정하지 않았는가. 오늘날의 불교는 4세기 무착스님과 세친스님의 유식학파(唯識學派, 유가행파, 유가파) 이래 사실상의 혼인 8식도 혼이라고 부르기를 꺼려한다. 그러니 8식이 9식이 되거나 열반하여 아라한이나 보살이 되는 것을 영 또는 아트마가 된다고 하지 않는다. 이는 그 위의 창조주 브라만과 아트만의 존재를 부인함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연역적 주장이다. 아비를 부인하는데 그 자식을 어찌 인정하겠는가? 그러면 8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양자(養子)인가? 아니면 양자(量子)인가?

 

5) 위키백과, ‘무아참조

 

6) (: 존재)이 공하다고 말한 것은 단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서 가명(假名)과 방편(方便)으로 공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니 공하다고 말하는 방편도 공하다. 그러나 법(: 존재)은 고정된 성품(自性)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 존재)있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법은 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을 없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中論424觀四諦品, 대정신수대장경)

 

7) 불교에서는 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4온을 합친 색((((() 다섯 가지를 인간의 구성요소로 파악한다. 이후 그 개념이 확장되어 현상세계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8) 육경과 육근 그리고 오온에 의한 제6식의 생성

 

1. 6식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경(六境)을 인식하는 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에 오온(色受想行識)의 식()을 붙인 것으로 六識의 제6식이며 이는 분별식으로 표준이론으로 치면 감성과 욕망의 하위정신체(이드)의 의식인 초보의식이다.

 

2. 육경과 육근은 인도 삼키아학파의 오경(panca-tan-matra)과 오근(jnanendriyas)를 각각 더한 것이다. 불설에서 물질세계인 몸 밖의 세계에 비물질인 법()을 임의로 추가하여 삼키아의 오경을 육경으로 바꾸고 물질적 감각기관(感官)인 삼키아의 오근(五根)에 비물질적 감각기관으로 무색근(無色根)인 의근(意根)을 자의(恣意)하여 육근을 말하는 것은 여기에 오온의 식을 섞어 물질에 기인한 의식(意識)을 만들어 보려는 유식(唯識)학의 얄팍한 포석이다. 가 몸의 감관이 아니라 혼의 심관임은 불설에서도 공공연하거니와 왜 육근에서만 감관대열에 끼는가.

 

3. 몸이 가진 감각기관은 오근까지이고 는 혼에 있으니 기어코 오근에 감각기관 하나를 더 더하려면 뇌()를 더해서 안이비설신뇌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또 외부자극인 경()에 비물질인 대신 그래도 있을 만한 것을 어거지로 추가한다면 물성이 있는 기()정도가 어떤가. 또한 뇌가 를 포착할 리가 만무하지만 오온이 식()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포착한다고 가정할 때 이로 인해 생성된 결과물은 상()정도가 될 것인데 이 어찌 분별과 판단기능을 자동으로 갖추어 제 六識 구실을 한다는 말인가. 또 개나 고양이의 뇌와 사람의 뇌는 뭐가 달라서 그것들의 상에는 분별력이 없다는 말인가. 이 모든 사실을 모아 볼 때 사람의 혼인 아뢰야식이 먼저 있고 그것이 아래로 작용하여 현현하는 것이 7식이고 6식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4. 6.3.1. ‘생기체’, 6.3.3.1. ‘감성’, 미주24 ‘의식의 발생과정과 그 정체’, 미주68 ‘전오식(前五識)과 생기체참조

 

9) 불설 원문은 오온(五蘊)의 식()에서 기인한 제6식인 의식(意識)에서 7식인 자의식이 나오고 다시 여기에 업이 쌓여 8식이 나와 이것이 윤회하니 아()는 업의 덩어리일 뿐 진정한 아가 아닌 무상(無常)한 존재이다.”이다.

 

10) 無我의 사랑

 

五蘊에서 비롯한 我相 둘이서

하고 함도 同色이라고 類類相從하다가

마침내 同病相憐하니 이것도 사랑인가

 

이라고 하나

한 곳에는 채움이 있고

라고 하나

라는 말은 있다오

 

도 모두 다 사라져도

分別心의 뜨거운 사랑이 남아있기에

이제 空卽是色도 분명하구려

 

11) 불교의 창조주로서 우주의 근원으로서의 이다. 10세기 이후 일종의 불교대학인 날란다사원의 학승들 사이에서 생긴 개념이다. 본초불이 선정에 들어 우주를 창조하고 그 정신으로 원형인간인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을 낳았다고 한다. 산스크리트로는 아디붓다(Adi-Buddha)인데 음역하여 아제불타(阿提佛陀), 의역하여 본초불(本初佛) 또는 본초각자(本初覺者)라 한다. 겁초(劫初)에 출현한 우주 만물의 창조자로 인연에 의해 생멸하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본초불은 자생자(自生者)이다. 창조주로서의 본초불 개념은 불교가 보편종교로서의 모습을 갖추려는 노력에서 자연히 그리고 당연하게 생긴 개념이다. 대승불교의 몇몇 종파에서는 본초불에서 5(五位)의 선정불(禪定佛), 곧 비로자나불·아촉불·보생불·불공성취불·아미타불이 나왔다고도 한다. 티벳에서는 비로자나불(畏盧遮那佛)의 법신인 보현보살이, 네팔에서는 문수보살이 본초불이다.

 

12) 길희성, 보살예수, 130~131쪽에서 동지(同旨)이다.

 

13) 여동빈(呂洞賓, 798~?)은 중국 당()나라 시절의 도사로 도교 팔선(八仙) 중 한 사람이다. 선인(仙人) 종리권(鐘離權)에게 전수받은 천둔검법(天遁劍法)과 용호금단(龍虎金丹)의 비법을 써서 민중을 구했다고 전설한다.

 

14) 10.6.1. ‘노자의 도와 기참조

 

15) 도덕경42장 중에서,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16)

1. 김홍경, 노자참조

2. 또는 이 구절만 원용하여 로 보아 음양이 운동하여 물질이 생겨나고 물질이 만물을 낳는다라고도 해석하기도 하고(이현수, 기철학 연구, 156쪽 참조) ‘음양이 五行을 낳아 오행에서 만물이 나온다라고도 해석하는 등 많은 견해가 있으나 모두 사소한 差異이고 중요한 것은 에서 만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17) 도덕경4장 중에서, ‘, 沖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18) 도덕경6장 중에서,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직역하면 도는 골짜기의 신과 같고 그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근본이다이고 그 뜻을 해석하면 이고 인데 공허한 것의 표본이 골짜기라서 谷神이라고 한 것이고 그냥 골짜기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정기가 발원하는 골짜기로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으니 이는 천지의 근본이다정도가 된다.

 

19) 道家의 윤회론

1. 한시대의 초창기 여러 도교문서들은 노자(老子, Lao Tzu)三皇五帝 전설적인 시대부터 여러 번 환생하여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또 장자(莊子)는 말하길 출생은 시작이 아니다. 죽음은 끝도 아니다. 끝이 없는 존재가 있다. 시작이 없는 연속이 있다. 끝이 없는 존재는 우주다. 시작이 없는 연속은 시간이다.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나갔다가 들어온다.”라고 했다.(영문 위키, Zhuangzi(1889). Chuang Tzŭ : Mystic, Moralist, and Social Reformer (translated by Herbert Allen Giles). Bernard Quaritch. p. 304)

 

2. 莊子 內篇 大宗師에는 장자(360~280 BC)의 생사관이 잘 드러나 있다.

1) 12절을 보면 偉哉造物(위재조물)又將奚以汝為(우장해이여위)將奚以汝適(장해이여적)以汝為鼠肝乎(이여위서간호)以汝為蟲臂乎(이여위충비호)

위대하도다 造物主! 그는 너를 또 무엇으로 만들려 하는가? 너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가? 너를 쥐의 간으로 만들 것인가? 벌레의 다리로 만들 것인가?

2) 今之大冶鑄金(금지대야주금) 金踊躍曰(금용약왈) 我且必為鏌鋣(아차필위막야) 大冶必以為不祥之金(대야필이위불상지금) 今一犯人之形(금일범인지형) 而曰(이왈) 人耳人耳(인이인이) 夫造化者必以為不祥之人(부조화자필이위불상지인) 今一以天地為大鑪(금일이천지위대로) 以造化為大冶(이조화위대야) 惡乎往而不可哉(오호왕이불가재) 成然寐(성연매) 蘧然覺(거연교)

지금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녹여서 주물을 만드는데, 쇠붙이가 뛰어 올라와 나는 장차 반드시 막야와 같은 명검(名劍)이 되겠다고 말한다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쇠붙이를 不祥한 놈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제 한 번 인간의 형체를 훔쳐서 세상에 태어나 나는 언제까지나 오직 사람으로만 살겠다고 말한다면, 저 조화자(造化者)도 반드시 그를 상서롭지 못한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한 번 천지를 커다란 용광로로 삼고, 조화를 대장장이로 삼았으니,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된들 좋지 않겠는가! 편안히 잠들었다가 화들짝 깨어날 것이다.

3) 위 글을 보면 장자의 조물주와 환생에 대한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쥐의 간이나 벌레의 다리를 예시함은 윤회의 이치를 깨닫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열반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장자의 그다운 자조(自嘲)로 보인다.

 

20) 道敎道家는 구분된다. 도교는 종교이고 도가는 철학이다. 도교는 고대의 주술적 민간신앙을 기초로 역리(易理), 음양오행, 참위(讖緯), 점성 그리고 불교와 유교사상까지 불로장생과 기복(祈福)이 관련된 모든 것을 복합한 종교이고 도가는 노장사상에서 비롯한 철학으로 인간의 타락과 무지를 척결하고 참지혜를 통하여 무위(無爲)의 삶을 추구하는 무위자연의 사상인 것이다.

 

21)

1. 원시천존은 도덕경의 도()를 의인화하고 신격화한 신이다.

2.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시작되기 전 우주는 생명의 원동력인 신비로운 힘이자 모든 것의 에너지원인 로 가득 차 있었고 이 기로부터 원시천존(元始天尊)이라는 신이 태어났는데 원시천존은 道家중 최고신이며 창조주이다. 즉 원시천존이 탄생함으로써 비로소 모든 사물들은 이름과 실체를 부여받게 되었다. 또 어느 중국 신화에서는 자연히 생겨난 거인 반고와 태원성녀의 사이에서 원시천존이 태어났다고 한다.

3. 인간 또한 원시천존처럼 음양의 기의 조화로 세상에 났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도가와 도교에서는 결국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모두 기에서 자연히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22) 미주101 ‘닐 도날드 월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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