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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여행 칼럼 '맹글로브 숲의 반딧불이'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7/22 [22:45]

박현선 여행 칼럼 '맹글로브 숲의 반딧불이'

박현선 | 입력 : 2023/07/22 [22:45]

▲ 수채화보다 아름다운 코타키나발루 석양  © CRS NEWS


사바주 전통 민속 중 다섯 부족의 마을인 마리마리(Mari Mari) 민속촌

비가 흠뻑 내려서인지 물기를 머금은 민속촌은 싱싱함이 뚝뚝 배어 있었다. 아직 목욕을 덜 끝낸 듯 안개에 젖어 있다. 안개는 하늘을 가린 우람한 나무 사이를 떠다니며 청정함을 뿌려 주었다. 마치 세상의 찌든 때를 씻어내는 듯한 청량감에 나도 나무들만큼 풋풋해지는 것 같다. 여기에서 얻은 기운으로 적당한 흥분과 여유마저 느껴졌다. 밀림 속을 들어가듯 울창한 숲으로 걸어가는데 어디서 콸콸 폭포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폭포수 밑에라도 들어간 듯 마음이 시원해진다. 떨어지는 폭포수에서 피어오르는 물보라가 그사이를 채우고 있다. 하늘로 피어오르는 물보라를 보고 떨어지는 폭포수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신비롭고 조용한 남국의 정서가 물씬 풍겨주는 곳이 있었던가?

 

걷다 보니, 대나무와 코코넛 껍질로 엮은 원주민 가옥의 이채로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밀조밀한 구조가 이 지붕 밑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온화한 마음씨가 담겨있어 보인다. 숲과 계곡이 어우러져 있어 실제 민속 부족 마을을 방문하는 느낌을 준다.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를 걸쭉하게 풀어내는 원주민 안내자. 원주민 조상들은 항아리 저장고에 1년 먹을 쌀을 비축해 놓고 살았다. 곡식 창고의 정면 천장 밑에 사람의 머리 형상이 걸려있어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든다. 그 시대, 도둑이 들어와 곡식을 훔치면 참수형에 처해 널리 알렸다고 한다. 그만큼 쌀은 그들에게 소중한 목숨줄이었다.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조상과 같은 모습이다. 보통 농사를 한다고 하면 짓는다고 말한다. 논밭을 갈아 씨앗을 뿌리고 불볕더위를 참아내며 김을 매고 토실토실하게 여문 알곡을 벅찬 마음으로 거두어들인다. 그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에게 올리고, 이듬해까지 일가족을 먹여 살린다. 이런 점에서 농사란 가히 생명의 집을 짓는 일이라 여길만하다. 과거 지구촌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입고 먹고 자는 의식주 일체를 오롯이 농경에 의존했고 생존 그 자체였다. 이로 인해 농사일은 전통 문화예술의 주요한 소재 거리가 되었다. 농사일을 즐겁게 하려고 부르는 노동요나 전통놀이로 대나무를 이용한 민속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온다.

 

농산물은 농부의 땀과 인내를 먹고 자랐고, 정성스레 보살피고 가꿀수록 더욱 튼실하게 성장한다. 땀은 거짓말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땀의 진리요, 법칙이다. 농부들이 고단한 노동을 견디는 것도 이러한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마을 사람끼리 서로 품을 지고 갚고 하면서 기쁘게 일했다. 체험이 끝날 때마다 원주민이 먹던 전통 간식거리로 시식도 한다. 코코넛으로 바싹하게 튀긴 과자. 직접 양봉한 꿀을 대나무 잔에 조금씩 나눠주거나 토속적인 재료로 로스팅한 커피를 내어주는 온정에 나른한 행복에 빠져든다.

 

▲ 몽환적인 맹글로브 숲의 반딧불이  © CRS NEWS

 

한국에서는 개똥처럼 흔해서 개똥벌레라고도 불렸던 반딧불이. 투어를 하기 위해 선착장에 도착하니 청명했던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황토물에 잠겨있는 맹글로브 숲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유자적 흐르는 고요한 물줄기와 하나하나 켜지는 불빛 같은 반딧불이 무리를 체험하기 위해 보트에 몸을 실었다.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리와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한국의 도시에 익숙한 나에겐 이곳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맹글로브 나무는 소나무보다 4배 많은 산소량을 만들어내며 뿌리가 수면 위로 나와 있는 건 숨을 쉬며 정화작용을 하는 겁니다.”

 

보트를 타고 내려왔던 맹글로브 숲을 천천히 올라가면서 강 주변의 나무에서 쉬고 있는 반딧불이를 본다. 대자연 속에 잠시 멈춰 서서 검고 깊은 밤의 고요에 빠져들었다. 어딘가에서 반딧불이가 숨을 쉬고 있다. 꼼짝하지 않고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깨끗이 하면 색 없는 색이 보이게 되고, 소리 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반딧불이들은 길고 깊은 이야기 자락을 맹글로브 숲에 온통 풀어 놓고 있다. 반짝이는 불빛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답고 따스하기도 하고 애절하고 가슴 저린 가락들이 들려 오는듯하다.

 

어느새 이 숲속은 거대한 불야성을 보는 거 같이 반짝거렸고, 열흘 뒤이별의안타까움을 아리아 선율로 뽑아내듯, 반딧불이들의 한 섞인 소리가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안내자가 반딧불을 보트로 유인하기 위해 나뭇잎을 랜턴에 가려 둥그렇게 원을 그리면 반딧불 무리가 이것을 보고 보트까지 날아와 우리 주변에 내려앉는다. 말 없는 말로서 반딧불이 나에게 말을 걸어와 나도 말 없는 말로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별빛은 그들이 건네는 은근한 눈빛이요, 다감한 미소를 머금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기분 좋은 대화를 시작한다.

아빠 까바르 (안녕하세요~)”

마리마리(이리 오세요~)”

트리마 까쉬 (감사합니다~)”

 

여행은 인생에 스며들어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된다

모든 생명체는 날마다 소리 없이 쇠퇴해 간다. 누구나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 매일 성장하고 있다고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면 늘 젊음을 유지하지 않을까.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어떻게 하면 늘 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은 인생을 끝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만이 깊숙한 내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서의 참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될 때 삶을 마치게 된다. 마치 세상 살아가는 묘미를 찾았을 때, 붉은 노을이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생명의 맥박이 하나가 되는 것을 여행으로 느끼는 감동은 글의 윤활유가 된다. 진실로 고귀한 사람을 직접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행을 통해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영혼과 일치되는 만남도 가능해진다. 그들의 다양한 인생도 탐색할 수 있다. 광대한 신비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기도 하고 가슴 울렁이는 감동을 전해주기도 한다. 지구의 구석구석을 유람해보고 싶은 것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감동적인 장면이나 특이한 문화에 부딪힐 때, 밑도 끝도 없는 떨림의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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