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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이 밝히는 굿과 무당의 실태와 의미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09/20 [13:28]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무속인이 밝히는 굿과 무당의 실태와 의미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23/09/20 [13:28]

장정태 논설위원(삼국유사문화원장한국불교사 전공) 과 우희종 교수 등 무속에 관심있는 인사들이 인사동에서 무속인과 토론회를 가졌다. 무속인은 무당과 굿의 실태와 의미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장정태 논설위원이 이를 요약해 정리했다. (편집자 주)

 

▲ 장정태 사진  © CRS NEWS


종교의 구성요소인 종교의례공동체믿음의 대상이 있는 굿은 종교 
 

 

대중은 만신이 어느조직, 단체에 소속되었는지 무슨 공연을 하는지 관심이 없다. 대중의 유일한 관심은 그가 얼마나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지 하는 것이다. 점은 과거를 보는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나와 극소수 주변만 아는 그런 이야기를 자신과 함께 살아온 사람처럼 이야기할 때 그것을 신뢰삼아 미래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피상담자가 스스로 던지고 그것을 해결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과정을 통한 상담방식이다. 만신의 말을 듣고 그 말에 의지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은 위험하다. 만신이 할 말을 듣고 한 행동은 만신은 책임지지 않는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자신에게 있다.

 

용하다는 기준은 내가 살아온 그 이야기를 얼마나 잘 공감해주었나. 하는 문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안고 있다. 지금 저를 만나고 있는 여러분의 고민을 주변에 있는 비슷한 연령대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 쉽게 얻어 낼 수 있는 문제이다.

 

한국민속불교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예언했다는 스님의 무슨 일인지 시사프로에 소재가 되었다. 대개 시사고발 프로에 등장한다면 좋은 일보다 어두운 면을 찾을 것이다. 그 당시 방송인터뷰를 했다.

 

담당 PD가 민속불교가 사이비불교가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 민속불교는 불교가 인도에서 탄생하여 중국을 거쳐 전파되는 과정에 중국에서는 도교를 만나 선불교를 만든 중국화 불교로서 한국사회는 한국에 있는 대중들의 생활 모습을 통해 자기 변신을 했다. 이것이 토착화라면 그 이름은 민속불교라는 것이 제 주장이다.

 

사슬세우기는 왜 하는가?

 

모 방송에서 일반인이 사슬을 세울 때 사용하던 삼지창으로 오토바이, 어린아이를 달고 세운 것이 있다. 균형감만 있다면 누구나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이 세운것과 무속에서 세우는 것 행위는 같지만 거기에 담긴 내용은 다르다.

 

무속인이 세운 것은 종교학적으로 신내림에 의한 행위라면 일반인은 기능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능과 종교적인 부분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교성을 무시한 채 눈 앞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단순 비교하고 있다.

 

 

▲ 장정태 사진  © CRS NEWS


무당이 가짜와 진짜가 있는가?

 

무당은 굿을 통해서 인간과 신령의 만남을 중재하는 사람이다. ()는 글자에서 위의 가로획은 하늘 또는 신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아래의 가로획은 땅 또는 인간을 표시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내리 그은 세로 획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연결하는 상징이다. 그런데 그 세로획 양편에는 사람()’자가 춤추는 남녀의 모습으로 서있다.

 

곧 무속은 사람이 춤을 추어 신과 인간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종교이다. 무당은 무속의 종교의례인 굿에서 사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지닌 전문가이다. 무당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적인 학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당의 유형은 그 입문과정에 따라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눈다. 그 기준은 무속인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에서 무병 혹은 신병체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주가 있는냐 없느냐 굿을 행할 때 접신한 상태에서 춤과 공수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구분 짓는 기준이다.

 

대다수 종교가 자신들의 교육기관을 통해 성직자를 배출하고 있다. 그 교육과정을 통과해야만 인정하는 구조이다. 무속도 신 부모를 통해 입무를 하고 인가라는 절차를 받는다. 그 이후 협회, 단체에 가입하면서 사회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괴 일부 이와같은 구조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종교단체 대다수에서 발견되는 모습이다.

 

자신이 스스로 머리를 깎고 절을 창건 후 승려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교단을 만들고 신학교를 설립하는 경우도 극히 미미하지만 존재하는 것이 종교계 현실이다.

 

민족종교를 표방하면서 종교단체를 창교한 사람들 가운데 일세 교주이기 때문에 스스로 성직자임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럼 이들을 사이비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와같이 무속인들을 가짜,진짜하는 구분은 불가능하다. 각자 인격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비양심적인 주변사람들에 의해 오도되는 것이다. 언론에 등장시켜주는 것, 주요무형문화재 등록의 유혹을 하면 접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본의 아니게 사기꾼 무당이 탄생되는 것이라고 본다. 굳이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한다면 무속계 주변에서 기생하는 연구자 집단과 걸립집단에 의해 이용되는 일부 무속인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굿의 기격과 효용성은?

 

사람들은 무당=굿으로 생각한다. 굿은 무속인이 행하는 종교의례 가운데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논란이 되기도 한다.

 

무속인들의 굿은 그날 하루만에 끝나는 의식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오래간다. 실례로 매매를 원하는 재가집 굿을 했다면 재가집은 약속한 날이 가까울수록 수시로 조바심에 전화 혹은 방문을 하게 된다. 무속인의 입장에서는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 매일 아침마다 그를 위한 기도가 지속될 수도 있다. 스트레스비도 일부 포함되어야 한다. 단순히 액수만으로 말 할 수 없다.

 

재가집 자녀 가운데 특정 대학 입시를 위한 기도를 했다. 고액의 굿을 했고 신령님이 감응이 있었는지 합격을 했다. 그럼 그것은 고액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말해 굿값은 비싸지만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 장정태 사진  © CRS NEWS


굿의 종류에는 개인을 위해 행해지는 재수굿, 병굿, 진오귀 굿으로 나눈다. 마을굿은 한 지역공동체의 구성원 전체의 통합을 위해하는 경우이다. 건설현장에서 무사를 기원하기도 하고 영업장에서는 사업번창을 기원하는 굿을 한다. 굿의 성격에 따라 그 가격은 차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굿 값의 결정은 굿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작두거리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작두를 타는 예가 있다. 마을 사람 가운데 특정하지 않고 대부분 주민이 계단작두는 물론 그 외 다양한 모양의 작두를 타기도 한다. 작두가 재가집 앞에서 가장 신내림을 잘 보일 수 있는 현장감 있는 의식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불신을 받게 된 이유는 방송에서 누구나 작두에 오를 수 있다는 리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는 근본적으로 작두굿을 자신들이 학습한 굿의 거리에는 없는데 굿을 하면서 수시로 작두에 오르는 일부 무속인들의 기능성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불신으로 변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들조차 신령이 내려야 한다는 전제는 유효하다.

 

▲ 장정태 사진  © CRS NEWS

 

굿이란 무엇인가?

 

굿은 무속이 가지고 있는 종교행위이고 종교의례이다. 음식을 차리고 그 앞에서 하는 모습만으로 다른 종교와 구분지으려고 하는데 유교에서 행하는 제사, 차례에서 음식 앞에서 절하고 음복하는 모습을 연상한다면 굿의 종교의례와 차이가 없다. 다만 제사는 자신과 인연이 되는 사람이 행하는 종교의례라면 굿은 상관없는 사람들이 인연없는 사람을 위해 행하는 의례라는 차이뿐이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예배를 인도하는 행위와 무속에서 행해지는 굿은 같은 사제자가 하는 종교행위이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서 행위와 다른 것은 당연하고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굿은 그것을 주재하는 무속인,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 그리고 신을 믿고 의지하는 신도(단골)가 있어야 한다. 종교의 구성요소인 종교의례, 공동체, 믿음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굿이란 의례에는 이 모두가 포함되어 있음으로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굿은 신을 모시고 즐겁게 해 주는 봉사이다. 생업상 이유로 굿을 하거나 무업에 종사해서는 안 된디. 게을리하면 신벌을 받기도 한다.

  

무속의 인식변화

 

무속은 사회에서 제대로 인식되어 있지않기 때문에 변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례로 무속인들의 전안 가운데 철학관’,‘사찰,사암간판을 내결고 있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가 어렸을때만 해도 깃대만으로 무속인 집임을 알렸고 사람들은 쉽게 찾아왔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헷갈린다고 한다. 절인지 무속인의 집인지 풀어먹고사는 철학관인지 도대체 구분할 수 없다. ‘만신집에 왔어했는데 지금은 절에 왔다고 표현한다. 그냥 어디 왔어, 내 다음에 만나 이야기 해 줄께하면서 자신이 지금 머물고 있는곳을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만큼 무속인은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몸주신 문제

 

사명대사,원효대사 등 불교계 신명은 물론 실존자체가 미확인되는 선녀,옥황상제를 모시기도 한다. 최근에는 명성황후,맥아더 장군,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는 물론 유관순 열사. 김재규 장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등장하는데 기존의 연구자들은 무속인이 모시는 신령들은 한이 많고 원이 많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다 생을 마감한 인물로 정의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그것은 일부일뿐 전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많은 신명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만신이라고 한다. 풀잎에도 신령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데 그 신명은 무속인들의 신적체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각장의 입장에서 예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내림굿이란 의식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게 되는가?

 

강신무에 해당된다. 무속인의 길에 접어드는 첫 관문인 성무에서 신병을 체험하게된다. 이때 정신 이상 증세가 오고 신체상에도 질환 증세가 나타나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게된다. 이 신병의 증상은 다양한데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하며 내림굿을 받고 무업에 종사해야만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증세가 재발하기 때문에 무속인이 되는것은 신의 뜻이라고 믿는다. 오래전 유명한 무속인이 쓴 저서 가운데 신이 선택한 여자란 제목만큼 짧고 명확한 제목은 없다. 내림굿을 하여 신을 정식으로 받은 초보무당은 내림굿을 해준 무속인을 신부모로 맞아 굿을 비롯 신령을 모시고 손님을 맞이하고 사제로 품위를 배우게 된다.

 

▲ 장정태 사진  © CRS NEWS


무속이 미신이라는 편견에 시달리고 사회 문화적으로 핍박받은 역사가 길지만 여전히 우리사회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신은 종교적 보편성을 지니지 못하며 일반인들 사이에서 헛되고 바르지 못하다고 인정되는 믿음이나 신앙을 말한다. 무속이 미신이란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업보다. 무속인이 하는 말은 확신에 찬 예언이다. 틀릴 수 있다는 의심이 전혀없는 확신이 틀렸을 때 미신이 될 수 있다.

 

우리 굿과 무속의 공동체 정신은 굿 말미에 이루어지는 뒷전에는 굿을 주관한 만신, 구경 굿 그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무복을 입고 무감을 추는 것이 공동체의 한 모습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무속인은 늘 신들림 상태로 사는 것으로 인식하고 무속인은 점사시 신을 부르면 그때 신내림 현상이 일어난다. 신을 부를 때 도움을 청할 때 혹은 신이 자신을 필요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늘 취해있지 않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그들이 늘 신들려있다는 인식을 하고있기 때문에 일반공동체 사회에 편입이 어렵다. 무속인 각자 신령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자기 주장이 강하다. 결국 무속인 스스로 자신들의 집단에서 조차 겉돌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함께하기는 현재에는 어렵다. 아니 영원히 어렵지 않을까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집도 절도 없는 승려는 보살절(신도 혹은 무속인이 세운절)에 부전으로 살다 자기 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 절의 규모는 크고 자손들 역시 종교적 순수함이 사라졌다. 부모가 창건한 사찰도 자손들 입장에서는 순전히 재산상속 목록에 속한 정도다. 부전 승려 혹은 종단에 귀속시키려는 의식이 없다. 사찰은 돈 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무속인 스스로 신심과 상관없이 시주를 받는 수단으로 사찰을 이루고 있다. 신심이 없는 무속인들의 자기 과시의 결정판이 최근 무속인들이 세우는 절의 형태다. 절에는 승려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이 스스로 승려가 되기도 한다. 의식의 경우 불교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예를 들어 부처님 오신날에도 돼지,소를 삼지창에 세우는 사슬세우기는 물론 법당에서도 이와같은 의례를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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