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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⑧ 아소카 대왕 아들 마힌다 비구 스리랑카 불교 개조(開祖)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2/21 [08:34]
아소카 딸 상가미트라 스리랑카에 비구니 승단 열고, 신성한 보리수 가져다 심어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⑧ 아소카 대왕 아들 마힌다 비구 스리랑카 불교 개조(開祖)

아소카 딸 상가미트라 스리랑카에 비구니 승단 열고, 신성한 보리수 가져다 심어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2/21 [08:34]

아소카 딸 상가미트라 스리랑카에 비구니 승단 열고, 신성한 보리수 가져다 심어

 

싯다르타 고오타마가 불교의 시조(始祖)라면 아소카 대왕은 중흥조(中興祖)와 같은 역할을 했다. 아소카 대왕은 출가 비구는 아니었지만, 출가승 못지않게 불교를 장려해서 인도 아 대륙은 물론 그리스계의 헬레니즘 국가들에 불교를 전파하는 열성을 보였다. 또한 섬나라 스리랑카에는 아들가운데 출가하여 비구가 된 마힌다 장로를 직접 파견하여 부처님의 정법을 펴도록 했고, 이어서 아소카 대왕의 친딸로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 상가미트라를 붓다가야의 보리수 가지와 함께 다른 10명의 비구니들과 동행하여 스리랑카에 비구니 승단을 열도록 했다.

▲ 아소카 대왕의 아들로서 비구가 된 마힌다 장로는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파했다.     

 

마힌다 장로는 스리랑카의 아누라다뿌라 왕국에 불교 전도사로 파견되어서, 왕국 수도에서 가까운 산의 정상인 미힌탈레에 머물면서 전법활동을 했다. 미힌탈레는 아누라다뿌라 왕국의 중심 수도에서 동쪽으로 약 12.5km 떨어진 곳에 있는 산이다. 마힌다 일행은 높이가 300m인 정상 봉우리 중 하나인 미사카 파바타에 자리 잡았다. 스리랑카의 사서 디빠왕서(島史)마하왕서(大史)에 따르면 마힌다 장로는 포손월인 6월 보름날 스리랑카로 와서 데바남삐야 띠싸 왕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법을 설파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전통에 따라서 6월에는 아누라다뿌라와 미힌탈레를 순례하는 성지참배 행사가 지금도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다.

 

데바남삐야 띠싸 왕은 기원전 247년에서 기원전 207년까지 고대 수도인 아누라다뿌라에 기반을 둔 스리랑카의 초기 왕 중 한 명이다. 마하왕서(大史)에 데바남삐야 띠싸 왕은 아소카 대왕과는 일찍부터 우호관계를 유지해왔었고, 아소카 대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우정을 돈독히 해온 사이였다고 한다. 서로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사절단을 통해서 우의를 쌓아온 것이다. 아소카 대왕은 답례품을 보내기도 했지만, 아소카 대왕 스스로가 불교로 개종했다는 뉴스를 전하면서 띠싸 왕에게도 불교를 수용할 것을 권했다.

 

아소카 대왕(황제)은 아들 마힌다 비구를 직접 스리랑카에 파견하도록 했고, 별 어려움 없이 스리랑카 왕을 만나서 불법을 전파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마하왕서에 데바남삐야 띠싸 왕은 미힌탈레 산 근처에서 약 4만 명의 병사들과 군사 훈련을 겸한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행사는 포손월(6)인 보름날에 행해지는 일종의 축제와도 관련이 있다. 미사카 기슭에 도착한 데바남삐야 띠싸는 사슴을 덤불 속으로 쫓다가 마힌다 비구를 만났다. 마하왕서는 왕이 마힌다 장로를 악마로 오인하여 겁에 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은 마힌다 장로를 악마로 생각했으나, 마힌다 장로는 즉각 ! 위대한 왕이시여, 우리는 법왕(부처님)의 제자이며 은둔자입니다. 오직 당신에 대한 연민으로 잠부디파(인도)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고 한다. 데바남삐야 띠싸 왕은 아소카 대왕으로부터 이미 전해들은 소식을 회상하고 그들이 인도에서 파견된 전도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힌다 장로는 계속해서 왕의 일행에게 부처님의 정법을 설교하고 왕의 개종을 주재했다고 한다.

▲ 데바남삐야 띠싸 왕과 우띠야 왕자의 왕실 가족. 

 

마힌다 장로가 데바남삐야 띠싸 왕을 불교로 개종시키는 데에 따른 다소 전설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스리랑카에 부처님의 정법을 전파하는 데는 별다른 저항이나 난관은 없었던 것 같다. 이로써 스리랑카 섬에 마힌다 장로와 그의 일행에 의하여 스리랑카에 불교 승가가 설립되었고, 부처님께서 정좌하여 무상정등정각(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했던 신성한 보리수 가지와 함께 상가미트라 비구니와 일행이 도착하여 비구니 승단을 건설하고 상좌부 불교의 중심지가 된 마하비하라(大寺) 수도원을 세우도록 승가에 공양하는 기증이 이루어졌고, 부처님의 오른쪽 쇄골을 모신 최초의 역사적인 다가바(스투파)인 투파라마(탑 사원)가 건립되어 불법이 아누라다뿌라에 정착하게 됐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진 초기 역사적 스토리를 기록한 마하왕서에 의하여 불교의 초전(初傳)을 상상하지만, 고고학적 발굴과 조사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데바남삐야 띠싸 왕의 통치 초기의 정황과 불교수용의 실제적인 사실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아소카 대왕의 아들인 마힌다 장로와 그 일행이 불법을 전파하여 승단을 건설했고, 뒤 이어서 아소카 대왕의 딸인 상가미트라가 보리수 가지와 함께 다른 10명의 일행이 비구니 승단을 세워서 명실상부한 출가승단이 형성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데바남삐야 띠싸 왕이 마힌다 장로와 처음 만났던 장소인 미힌탈레는 오늘날 스리랑카 불교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로 성지가 되어 있다. 이 구역에는 마힌다 장로가 왕에게 물음을 던졌던 '망고 나무 불탑'이 있으며, 마힌다 장로 일행이 40년 이상 살았던 동굴사원과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했던 사리탑인 마하 세야가 있는 유적지이다.

 

아소카 대왕이 딸 상가미트라 비구니를 통해서 보내준 신성한 보리수 가지를 이식하여 심은 보리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로 기록되고 있다.

 

데바남삐야 띠싸 왕은 550에이커(67만평)에 달하는 띠싸 웨아(저수지)를 건설했다. 제방의 길이가 3,2km이며 높이가 7.5m이다. 이 저수지는 오늘날에도 주요 관개 탱크이며 아누라다뿌라 지역의 농부들에게 필수적인 수자원이다.

 

데바남삐야 띠싸 왕은 초기 스리랑카의 가장 중요한 군주 중 한 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의 불교 개종은 섬의 왕국을 북쪽의 아 대륙과 상당히 구별되는 종교적, 문화적 전통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 나중에 군주들은 데바남삐야 띠싸 왕의 불교로의 개종을 전범으로 삼았고, 아누라다뿌라 정치의 초석 중 하나로 언급하고 있다. 도시 자체는 중세 초기까지 강력한 왕국의 수도로 남아 있었으나, 남인도의 촐라 왕국의 침공에 의해 포위되고 섬의 왕조는 폴론나루와 왕조로 대체되기에 이르지만 불교는 왕조의 주류 종교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

▲ 데바남삐야 띠싸 왕이 건설한 띠싸 저수지와 저 멀리 마하비하라(큰 절) 탑이 보인다.   

  

스리랑카(실론) 불교를 정리해 본다면 기원전 3세기에 전해진 불교는 기원후 5세기경이 되면 오히려 불교의 본고장인 인도보다도 불교의 정경(正經) 연구가 더 심화되어 있었다. 인도본토에서 보다는 실론 섬에서 인도원형불교의 모습을 더 인도답게 간직하고 유포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일련의 사서(史書)들이다. 디빠왕사Dīpavamsa島史는 실론 최고(最古)의 편년사시체(編年史詩體)로서 역사문헌이다. ‘섬의 역사란 뜻으로 섬의 왕통사(島王統史)》、《주사(洲史)의 뜻을 갖는다. 기원후 34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서는 역사, 전설뿐 아니고 불교와 빨리어 문학의 초기작품이 실려 있다. 실론에 불교가 전해진 5세기가 경과한 기원후 34세기의 실론불교와 이 시대의 최고 최대 사원인 아누라다뿌라의 마하비하라(大寺=큰절)의 고승들에 대한 자료이다. 이 사서에 따르면, 부처님은 생존 시에 실론 섬에 세 번 방문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인도로부터 부처님 치아사리와 보리수나무가 실론에 오게 된 내용이 실려 있다. 또한 상좌부(上座部)라는 불교부파(佛敎部派)에 대한 기록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지역적으로 확장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불교본래의 모습과 내용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지만 기원전 3세기에 실론에 전해진 인도의 원형 불교인 상좌부는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이 원형 불교를 상좌부(장로불교)라고 칭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스타비라와다(sthaviravāda)라고하며, 빨리어로는 테라와다(theravāda)라고 부른다. 한역에서는 상좌부(上座部)라고 했다.

 

기원전후에서 기원후45세기에 이르면 인도불교는 여러 부파가 출현하고 대승불교로 발전해서 불교의 모습이 변해 가고 있었지만, 상좌부는 인도원형 승가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전통을 지켜가고 있었다. 인도 본토에서도 이 상좌부가 소멸했다가 근세에 재건됐다. 실론에서는 이 상좌부 전통을 고수했고, 중세시대에는 동남아에 전파했으며,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전통이 되었다.

 

실론의 사서인 디빠왕사Dīpavamsa島史와 쌍벽을 이루는 마하왕사Mahavamsa 大史는 빨리어로 기록된 역사문헌으로서 편년사시체(編年史詩體)로 되어 있다. 기원후 5세기에 성립된 사서로서, 기원전 543년부터 기원후 304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사서를 이어서 쭐라왕사 Cūḷavaṃsa 小史가 있는데, 4세기부터 1815년까지의 연대기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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