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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제9장 ‘수면과 영혼육’ 중 ‘수면의 정의와 목적 등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6/30 [06:58]

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제9장 ‘수면과 영혼육’ 중 ‘수면의 정의와 목적 등

정영부 | 입력 : 2023/06/30 [06:58]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9수면과 영혼육수면의 정의와 목적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참고로 제9장의 목차와 그중 이번 회에서 다룰 부분은 다음과 같다.

 

9. 수면과 영혼육

9.1. 수면의 정의

9.1.1. 수면에 대한 의문들

9.1.2. 수면의 정의

9.2. 수면의 목적과 과정

9.3. 수면과 의식

9.4. 수면 중 영혼의 활동

9.5. 꿈은 누가 꾸는가

 

수면의 정의

 

<수면에 대한 의문들> 

수면과 관련하여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많다.

 

1) 왜 경험하지 않은 일들이 꿈에 보이는가?

2) 수면 중에 알지 못하는 언어나 미숙한 외국어를 어떻게 유창하게 말하며 또 알아듣는가?

3) 몽면과 숙면은 왜 사이클로 반복되는가?

4) 왜 어떤 꿈은 생각이 나고 어떤 꿈은 생각이 안 나는가?

5) 어떻게 하여 남가일몽이나 한단지몽 또는 군대 꿈처럼 잠깐 자는 중 긴 세월의 꿈을 꾸는가?

6) 수면 중의 성행위나 방뇨, 격투가 어찌하여 몽정이나 야뇨, 몸짓으로 나타나는가?

7) 최면(催眠)은 수면과 무엇이 달라 의식이 있는가?

8) 꿈을 꾸면서도 가끔 각성(覺醒)이 되는 이유와 자각몽(自覺夢)으로 어떻게 각성 중에도 꿈을 꿀 수 있는가?

9) 예지몽(豫知夢)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며 나는 왜 그런 꿈을 못 꾸는가?

10) 망자나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이 나의 꿈에 등장하는 이유는?

11) 기시감(旣視感, Déjà Vu)은 꿈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12) 불면증은 왜 생기며 고치는 방법은 없는가?

13) 몸이 피곤하지 않아도 졸리고 또 몸이 피곤하여도 졸리지 않은 이유는?

14) 왜 꿈을 통해 트라우마가 상징적으로 나타나며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꿈은 무슨 관계인가?

15) 수면 중 영과 혼은 무엇을 하는가? 영혼이 수면 중에 유체이탈을 하며 신과 교유(交遊)한다는 믿음은 무엇인가?

16) 가위눌림(厭夢), 악몽의 정체는 무엇인가?

17) 꿈을 꾸는 주체는 육체인가 혼인가 영인가?

18) 식물이나 동물의 잠은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이런 물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답을 가지고 있지만 기왕의 답들이 모두 명답(明答)은 아니다. 표준이론 입장에서 明答해 보자.

 

<수면의 정의> 

수면은 피로가 누적된 뇌의 활동을 주기적으로 회복하는 생리적인 의식상실 상태. 표준이론은 몸과 혼의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지금까지 거론되었던 혼과 그 의식 상태를 정리해 보자.

 

1) 의식은 혼의 작용이다.

2) 혼은 몸뇌가 각성상태인 경우 혼뇌를 사용하지 못한다.

3) 수면 중에 몸뇌는 쉬게 되어 비각성상태가 되고 몸이 자면 혼도 대부분 같이 잠을 잔다. 수면 시에는 몸뿐 아니라 혼도 쉬기 때문이다.1)

4) 혼이 수면에서 깨어났으나 아직 몸뇌는 덜 깬 상태를 렘(REM)수면상태 또는 각성몽 상태라고 한다. 이때에 혼은 각성 시 접근할 수 없었던 몸뇌의 잠재기억과 혼뇌의 기억을 일부 사용할 수 있다.

5) 혼은 깨어있으나 몸뇌는 숙면하는 상태는 혼뇌의식상태다. 이때 혼은 혼뇌를 사용한다. 유체이탈이나 근사체험 그리고 깊은 명상이나 최면상태가 그런 때이다. 그러나 혼뇌를 사용하는 정도는 경우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현대의 주류 뇌의학은 이러한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의식은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로써 설명되지 않는 숱한 현상들은 아직 규명되지 않은 것들일 뿐 시간만 지나면 다 전기현상임이 밝혀질 것이라는 신앙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뇌의학 내부에서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의식이 그저 몸뇌에만 의지한다는 의식의 일원론(一元論)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1) 핌 반 롬멜(Pim van Lommel 1943~)이나 루퍼트 셀드레이크(Rupert Sheldrake 1942~) 등 의식이원론 또는 다원론(多元論)(2)들은 의식은 두뇌에서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2) 기억이 신체의 각 부분에서도 이루어지듯 의식도 그럴지 모른다. 이는 세포들도 의식현상을 보여 의식은 그 총합이라는 주장으로 연결된다.(3)

3) 양자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David Bohm 1917~1992)은 집단적 인류의식(collective consciouness of mankind)을 주장하면서 의식은 오감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육감을 통해 전 우주가 공유하는 우주의식을 말하였다.

 

이러한 주장들(4)은 혼뇌의식과 혼뇌의 존재를 강력히 시사한다. 이제 수면을 통하여 혼뇌의식과 혼뇌의 존재 그리고 그 기능을 좀 더 알아보자.

 

수면의 목적과 과정

 

수면이 필요한 생물학적 이유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수면은 가장 확연한 동물 행동이지만, 그 기능과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분자세포생물학적 차원에서 수면의 메커니즘이 현재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현대의학이 인간이 하루의 1/3을 쓰고 있는 수면의 정체를 확실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하기야 석유의 생성원인도, 이명(耳鳴)의 발생 이유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 과학과 의학의 현 수준임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현재 학계의 의견으로 수면은

 

1) 신체활동의 중지를 통해 피로를 해소하고

2)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며

3) 각성 시 두뇌의 집중도를 유지할 뿐 아니라

4) 뇌에 축적된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한다.(5)

 

수면은 뇌의 시상하부에 속하는 시상전핵(preoptic nucleus)이 수면과 각성의 전환에 관여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여 시작된다고 추정된다.(6)이곳에서 빛이 없다는 신호를 송과선(pineal gland)에 보내면 송과선은 멜라토닌(melatonin) 호르몬을 분비하여 수면을 유도한다.(7)

 

생물들이 보이는 수면행태는 다양하다. 꼬마선충은 잠을 자는 상태가 관찰된 가장 원시적인 유기체로 알려져 있다. 한편 어류 중 모래에 살거나 계속적으로 헤엄을 쳐야 하는 몇몇의 어류 종은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하며 양서류인 황소개구리(Bull frog)도 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 보고된다. 또한 몇몇의 곤충은 수면이 아예 필요 없다고 한다. 식물도 낮에는 광합성을 하기 위해 깨어있고 빛이 없으면 광합성을 할 수 없으므로 잠을 잔다. 이를 수면이라고 하여야 할지가 불분명하여 휴면이라고 하기도 한다.(8)

 

표준이론에서 보면 수면은 육체뿐 아니라 물성을 가진 혼에게 휴식이 필요하여 발생한 생리적 현상이 아닌가 한다.(9)사람 등 고등동물뿐 아니라 생혼이나 각혼을 가진 하급 생물체도 대부분 수면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군혼형태이기 때문에 군혼별로 수면행태가 다르고 심지어 수면을 하지 않는 종도 있다. 그런 그룹의 혼은 다른 형태로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영은 물성이 없으므로 수면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 수면 중 영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註釋> 

1)사실은 혼이 쉬기 때문에 몸이 따라 쉰다. 몸이나 혼이나 물성 때문에 쉬어야 하지만 先後가 있다면 혼이 이다. 몸은 자야 하는데 혼이 못자면 불면증이다. 혼이 다 쉬고 깨어나면 몸은 뒤따라 깨어난다.

 

2) 임사 체험의 연구 성과가 보급됨에 따라, 종래의 신경 과학 연구의 전제인 마음·의식은 뇌가 낳는다는 심뇌일원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의식의 다원론이라고 한다(5.5.9.2. ‘심령학의 주요 연구방법론참조).

 

3) 이는 신지학에서 주장하는 다신체론의 다의식론(多意識論)’ 또는 다의식론의 극단으로서 세포에도 고유의식이 있다는 세포 다의식론과는 다르다. 본문의 주장에서 각 신체의 의식은 아직도 전기작용으로 발생하는 의식이다.

 

4) ‘로저 펜로즈의 조화객관 환원이론’, ‘신경 가소성이론’, ‘철학적 좀비 논쟁등을 참고하라(미주 150 ‘마음에 대한 여러 이론참조).

 

5) 1. 동물 가운데는 전혀 잠을 자지 않는 종류도 있어서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잠에 대한 인식은 위협을 받고 있다. 황소개구리는 잠을 전혀 자지 않는다. 대신 황소개구리는 그냥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비둘기를 거의 한 달 동안 잠을 자지 않도록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둘기에게서는 아무런 신체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2. 이는 해당 동물의 군혼(群魂)의 성질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소개구리나 비둘기 군혼(群魂)은 수면 없이도 피로를 회복하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감안하면 신체적 피로 이유만으로 잠을 자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면을 하는 이유는 신체의 피로보다 혼의 피로에 더 기인하는 것일 수 있다.

 

6) 시상전핵에 있는 GABA성 뉴런(GABAergic neuron)은 수면 유도물질인데 깨어있을 때는 아세틸콜린 등 각성 촉진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억제되어 있다고 한다.

 

7) 1. 그동안 수면의 주야주기성은 야간의 여러 조건과 동물의 비활동성 사이에 성립된 송과샘의 조건반사에 의한다고 생각되어 왔다.

2. 그러나 현재는 의식 수준의 연속적인 24시간 주기에 따른 변화라는 설이 유력하다(네이버 생명과학대사전). 이러한 의식수준의 주기(週期)설은 수면이 몸의 피로 때문이 아니라 혼 차원의 이유에서 기인함을 시사한다.

3. 낮과 밤의 주기적 신호를 일정한 기간에 걸쳐서 경험하면 주기적 낮밤 신호가 없어도 일정한 시간에 수면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를 생체시계에 의한 일주기시스템이론이라고 한다. 이 이론 또한 몸보다는 다른 데서 수면주기의 이유를 찾고 있다. 혼은 태양계의 순환주기에 맞추어 진화되었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혼이 한 시간 반 단위의 일정한 렘수면주기를 가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혼에게 24시간은 16시간인 것이다. 고래로 황금비율은 16 : 10이고 오늘날 컴퓨터는 16진법을 쓴다.

 

8) 수면과 죽음의 정의

 

1. 식물의 수면(睡眠)은 광합성을 중지하고 쉬는 상태이고(광합성을 하지 않는 식물은 어떤 형태든 먹이 활동을 중지하고 쉬는 상태) 휴면(休眠)은 환경이나 조건이 생육에 적당치 않을 때 일시적으로 활동을 중지하는 상태로 대부분의 식물은 1년에 한 번씩 휴면을 한다. 일반적으로 다년생 식물의 낙엽성 휴면이나 일년생 식물의 구근성 휴면이나 형태만 다를 뿐 다 같은 휴면이다. 그러나 구근(球根)으로의 변화가 휴면인지 죽음인지는 죽음의 정의와 관련하여 복잡한 고찰거리를 남긴다.

2. 사전적으로는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가 죽음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이 정의는 고등동물에 한정된다. 고등동물은 이 정의에 따라 죽음의 시기를 생물체의 개체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세포의 생활기능이 영구히 정지하는 때라고 말할 수 있는데, 심장고동과 호흡운동의 정지를 그때로 본다. 그러나 식물은 언제가 그런 때인가?

3. 생물체는 번식을 마치면 대부분 죽는다. 그런데 식물은 여러 가지 형태로 번식하며 또 번식을 마친다고 꼭 본체가 죽는 것은 아니다. 식물의 번식 형태에는 열매를 통한 유성생식뿐 아니라 포기나누기, 휘묻이, 줄기꽂이, 꺾꽂이 등 다양하지만 이 모든 형태의 번식이 본체의 죽음을 가져오지는 않는 것이다. 아메바 등의 단세포 생물이 포기나누기처럼 2개체(個體)로 분열될 때는 어떤가. 죽음인가? 아니다. 그런 것은 모두 성장이다. 그렇다면 분열과 유사하게 포기나누기로 번식한 바위취는 성장이고 같은 바위취라도 열매로 번식한 바위취는 죽는가? 열매로 휴면하다가 내년에 다시 싹트면 원래의 바위취에게 그것은 죽음이 아닌가? 이미 생각해 본 구근은 어떤가? 감자는 양분을 저장한 뿌리의 일부인데 마치 과일의 씨처럼 심으면 다시 감자가 된다. 싹눈이 있는 여러 개로 쪼개어 심어도 된다. 그렇다면 감자의 싹눈이 과일의 씨가 아닌가? 사과나무가 사과를 남기고 시들어 죽으면 뿌리의 일부를 남기고 시들은 감자와 다를 것이 없으니 그 사과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다. 번식방법에 따라 죽음이 달리 있을 수 없다. 이런 식의 논리 유추에 의하면 우리의 상식과 달리 바위취나 감자나 심지어 사과나무에게도 죽음이란 없는 것이다.

4. 그럼 식물이나 아메바는 수십억 년간 永生하였는가? 또 위의 논리라면 열매로 번식하는 식물도 모두 영생하는 것인데 인간이 열매와 유사하게 정자와 난자로 자신의 유전인자를 복제하여 다시 아기가 태어난다면 식물의 열매가 싹트는 것과 무엇이 달라서 인간은 휴면이라 하지 않고 죽는다고 하는가?

5. 식물인 바위취나 아메바 나아가 동물의 혼은 모두 표준이론에서 군혼(群魂)으로 본다. 군혼은 이승에서 일견하기로 개체성이 있어 보이나 이는 그룹혼의 일부가 이승에 나타난 것으로 개체성이 없다. 군혼이란 개체가 죽어 그 혼이 저승의 생기계에 가면 종별로 다시 하나의 혼 덩어리인 그룹혼에 흡수되는 혼이다. 사람의 혼인 지혼은 각혼 중 일부가 발전하여 그룹혼을 탈출하여 개체혼이 됨으로써 탄생한다. 각혼이 개체화되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그룹혼 속에 들어가서도 흩어지지 않고 있다가(반 개체성) 그대로 재생하여 이승에 태어나지만 어느 때부터는 그룹혼에 흡수되지 않고 그룹혼 주변에서 개체성을 유지하다가 재생한다. 이들 중에 일부가 지혼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6. 그렇다고 하여 군혼의 죽음과 개체혼의 죽음을 따로 정의하기도 곤란하다. 따라서 죽음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기왕의 사전적 정의처럼 죽음이란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라고 한다거나 구체적으로 개체를 구성하는 전조직(全組織) 세포의 생활기능이 영구히 정지하는 상태를 죽음이라고 하면, 위에서 살펴본 대로 생명체, 특히 군혼의 죽음을 적절히 정의하지 못한다.

7. 그럼 죽음이란 생물체에서 그 생물의 혼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를 죽음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 또한 적절치 않다. ‘어느 한 아메바혼이 나뉘어서 수십억 마리가 되다가 그중 몇 마리가 분열을 못 하고 죽었다 해도 그 몇 마리의 혼은 모두 그룹혼에 복귀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포분열하여 증식하는 어느 아메바의 죽음은 구체적으로 어느 때인가. 아메바가 번식한 지역에서 그 아메바 종이 절멸하고 몇 년간 나타나지 않았을 때 어느 한 아메바의 혼은 죽었다고 할 수는 있을까?

8. 그러나 어느 지역에서 그 아메바 종이 절멸하고 몇 년간 나타나지 않았을 때를 죽음으로 정의한다 해도 표준이론에서 볼 때 어느 한 아메바의 나뉜 혼들이 생기계의 그룹혼에 복귀하여 재생을 도모하고 있을 수 있으니 그 정의도 곤란하다. 또한 어느 한 마리가 번식을 못 하고 죽었다면 그 어느 한 마리에 한해서 죽었다고 할 수 있다는 진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번식의 경험 유무로 죽음이 정해진다면 그것도 적절한 죽음의 정의가 아니다.

9. 이러한 문제는 포기나누기한 바위취도 마찬가지고 구근을 통한 번식도 마찬가지며 꺾꽂이한 경우도 같고 크게는 종자를 통한 번식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죽기 직전에 다른 개체로 증식해 가버린 혼을 논외로 한 채 죽음은 혼이 어느 개체를 떠나는 것이라는 식으로는 말하면 군혼의 죽음은 정의가 안 된다.

 

10. 같은 논리로 벌통의 벌 한 마리의 생명활동이 영구히 정지되었다거나 벌의 각혼이 몸에서 빠져나갔다고 하여 그 벌이 죽었다고 할 수 없다.

1) 표준이론에서 우리가 소위 벌 한 마리가 죽었다고 할 때 일어나는 현상은 다음과 같다.

(1) 벌의 각혼은 몸을 빠져나와 일부는 부화 중인 알에 바로 흡수되고 다른 일부는 생기계에 있는 그 벌의 그룹혼에 복귀한다.

(2) 벌의 생기체를 구성하던 생기는 대부분 자연에 방사되어 정화되고 일부는 벌의 각혼을 구성하는 일부가 되어 그 각혼을 성장시킨다.

(3)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가 죽었을 때도 유사하다. 다만 세포에는 생기만 있을 뿐 각혼이 없으니 그룹혼에 복귀하는 것은 없다.

2) 또한 벌 한 마리가 태어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은 다음과 같다.

(1) 여왕벌의 알과 수벌의 정자에 생명력인 생기체씨앗(선천지기)이 포함되어 있다.

(2) 수정되어 부화 중인 벌의 알에 생기계의 벌그룹혼에서 개체화되어 나온 어린 혼(각혼)이 들어온다.

(3) 주변에서 죽은 벌의 혼 또는 자연으로부터 생기가 보충된다.

(4) 이후 자연에 만재한 생기(후천지기)를 보충하여 벌의 혼 특히 혼의 구성 부분 중 생기체가 자란다.

11. 벌과 같은 하급 동물의 각혼은 그 혼 전부가 저승의 생기계에 있는 그룹혼에 흡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에센스만 복귀하는 것이다. 또 벌의 그룹혼은 벌의 각혼이 다니는 학교나 공중목욕탕이다. 어떤 혼은 학교에 안 가고 이승 집 부근에 머물다 새로 잉태된 알에 스며든다. 그러니 생물체의 혼이 그룹혼에 복귀하는 일도 군혼의 죽음의 정의가 되지 못한다.

12.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생물체에서 그 생물의 혼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로 벌의 죽음을 정의할 수 없다. 생물체의 혼이 그룹혼에 복귀하는 일도 죽음의 정의가 되지 못한다. 군혼을 가진 생명체의 죽음은 어느 종이 이승에서 멸종하고 그로 인해 언젠가 생기계에 있는 그 종의 그룹혼마저 흩어지는 일이 죽음이다. 그러니 위 어느 벌 한 마리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그룹혼조각의 이동이다.

13. 군혼이 아닌 개체혼을 가진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군혼의 죽음에서 자연스럽게 유추되는 바와 같이 개체혼을 가진 사람의 죽음은 어느 사람의 혼이 저승에 가서 개체성을 잃고 분열하거나 비산하여 소멸하는 일이 죽음이다. 그럼 육체의 죽음은 그 사람의 죽음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의 혼 즉 지혼은 저승에 가서 개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가 환생한다. 그러나 사람의 혼도 그 혼이 하급혼일 경우 업을 많이 쌓아 혼이 분열하거나 소멸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표준이론은 사람이 죽을 확률을 23.73%로 계산해 냈다(부록1 ‘자아의 수준에 따른 영과 혼과 부록2 ‘단계별 혼의 소멸과 분열비율참조).

14. 이제 군혼과 개체혼을 망라하여 죽음을 정의해 보면군혼 또는 개체혼이 개체성을 잃고 분열하거나 비산하여 소멸하는 일이 된다. 따라서 어느 종교에 영혼에게 죽음이란 없다라는 교리가 있다면 일 뿐 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과학교인이 영원히 사는 존재는 없다라고 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진화의 역사에서 군혼 또는 개체혼이 태어나고 발달하는 것만 보아 왔을 뿐 죽어 없어지는 현상이나 이치는 목도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15. 고양이의 혼(각혼)은 어떨까? 고양이의 혼도 어차피 개체성이 없다. 고양이의 혼은 죽어서 그 종의 그룹혼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그중의 일부 덩어리가 새로 태어나는 고양이의 몸에 스며들어 그 고양이의 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표준이론에서 이는 還生이 아니라 再生이라고 한다. 어느 고양이의 혼이 죽어서 저승의 고양이 그룹혼에 흡수된다고 하여 그 고양이는 죽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개체성이 없으니 죽는 일도 없다. 사랑하는 애완동물인 고양이가 죽으면 주인은 그 죽음을 사람의 죽음에 비견하여 비통해한다. 그러나 개체성이 없는 생물체의 육체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또 사람이 죽었다 하여도 그의 혼이 저승에 가서 분열하거나 비산하여 소멸하였는지 알기 전에는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못된 부자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못살게 군 독재자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를 성대히 거행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16. 어느 사람이 주먹질을 하여 주먹의 세포 하나가 죽었다면 그 주먹세포의 죽음은 개체성이 없는 생기체 조각의 이동이다(7.4. ‘신지학의 육체참조).

17. 別論으로 벌이나 고양이의 군혼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의 지혼이 생명 진화의 궁극적 지향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들 군혼의 존재이유와 지향도 그러한가? 그러하다.

1) 세포의 자살인 어팝토시스(apoptosis)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의 세포는 전 육체를 위하여 존재한다. 벌 또한 벌의 그룹혼을 위하여 존재한다.

2) 벌의 그룹혼은 그룹혼 자체의 진화와는 별도로 그들의 수승한 조각(군혼)을 존재의 사슬을 타고 고양이의 그룹혼에 올려보낸다. 전술한 대로 고양이의 혼 중 그 구성하는 기의 형(氣型)이 서로 잘 맞고 이승에서 개체경험을 많이 쌓은 군혼은 점차 수승도를 높이게 되어 처음에는 그가 속한 고양이 종의 그룹혼 내에서 개체화되었다가 더욱 수승해지면 그룹혼에 복귀하고서도 그 외부에 붙어 개체를 유지한 상태로 머문다. 그리고 어느 때 고양이 보다 더 진화된 개나 돌고래나 침팬지의 그룹혼으로 흡수되어 올라간다. 그들의 목표는 인간의 지혼이다.

3) 그러므로 하나의 지혼이 탄생하기까지는 수십억 년이 소요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생명들이 지혼을 지향하고 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한 사람이 오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말로는 부족하다. 이렇게 쓰자. “한 사람이 오는 건 우주의 역사 전체가 오는 것이라고.

18. 결론컨대 생물체의 죽음의 정체가 식물이 다르고 동물이 다르고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니다. 만일 각 생물체의 죽음의 정체가 다르다면 섭리(攝理)자를 붙일 수 없게 된다. 피조계(被造界)는 영적설계에 의한 조화의 세계다. 가 없는 제멋대로의 부조화로는 46억 년을 존재할 수 없다. 조화의 세계에서 모든 생명체의 죽음은 일이관지로 설명되어야 하고 하나의 定義아래 묶여야 되며 이를 묶는 논리는 표준이론의 정의 여야 한다.

 

9) 라자요가의 요기 사라스와티는 수면은 몸에서 시작하는 수면과 혼에서 시작하는 수면이 있다고 한다(사라스와티, 혼의 과학, 26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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