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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란 무엇인가(2)

정영부 | 기사입력 2023/10/20 [10:13]

명상이란 무엇인가(2)

정영부 | 입력 : 2023/10/20 [10:13]

 

▲ 140여 회에 걸쳐 연재 중인 「영혼학 그 표준이론」이 ‘지식과감성 출판사’에서 최근 출판되었습니다. 독자 제위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 CRS NEWS

 

이번 146회에는 다음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12장 내용 중 명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 두 번째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명상이란? - 2

 

학문적으로 명상은

 

1) 스트레스 관리, 학습 향상, 건강 증진, 경기력 향상, 약물중독 치료, 심리 치료, 습관 교정을 목표로 하는 상대적 의미의 명상과

2) 종교적 영성 개발, 자기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절대적 의미의 명상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의학과 심리학의 관심영역이고1)후자는 영혼학의 관심분야다. 그러나 명상의 방법이나 과정은 양자가 유사하다.

 

인도 명상의 최종목적은 마음의 동요를 멈추고 제어함으로써 삼매(三昧)의 경지에 이르려는 것으로 삼매에 이르는 데는 여덟 단계가 있다. 이 여덟 단계를 요가의 팔실수법(八實修法)2)이라 한다. 심리학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명상은 이 팔실수법의 처음 5가지에 해당하는 상대적 의미의 명상이며 심리학은 이를 이용하여 감정을 관찰함으로써 감정의 통제를 시도한다.

심리학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사람이 감정이 격해지면 각성수준이 크게 증가하지만 불행히도 그 인지대상이 지금 사로잡힌 감정에만 쏠리고 다른 인지는 배제되어 그 감정과 연관된 습관화된 행동3)을 자동으로 야기하게 된다. 격한 감정은 이 감정행동 메커니즘을 자동으로 작동(automatization)시켜 말릴 새도 없이 마치 공식(公式)처럼 습관화된 행동으로 귀착되는 것이다.4)감정행동 메커니즘감정행동공식이라고 불러도 좋다. 감정행동공식을 정리하면 [격한 감정 각성수준 증가 인지 집중, 다른 인지 배제 습관행동 유발]이다. 그래서 동일전과 5범이 생기게 된다.

이 고리를 끊는 방법은 에고의 감정이 가진 약점을 노리는 것인데 그 약점이 바로 감정은 관찰을 받으면 약해진다는 것이다.5)감정은 왜 관찰을 받으면 약해질까? 그 이유는 관찰을 당하는 감정의 주체는 혼()이고 관찰을 하는 자()는 영()이기 때문이다.6)감정의 주체인 혼은 자신이 관찰 당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힘이 약해지고 평정심을 되찾는다. 이는 마치 양자역학의 관찰자효과와 비슷하다. 그래서 혼의 관찰자효과(observer effect on Soul)’라고 한다.7)따라서 자아의 방을 점거하고 날뛰는 혼()을 관찰만 할 수 있다면 그를 자아의 방에서 내쫓고 순식간에 작동되는 감정행동공식의 고리를 그 메카니즘의 어느 단계에서 끊어 습관행동 유발을 억제할 수 있다.8)()을 관찰하는 명상법, 그것이 바로 명상의 관법(觀法)이다. ‘참을 인()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말도 관찰할 시간을 확보하란 말이다.9)

 

또 명상은 감정행동공식의 촉발 자체를 억제하기도 한다. 특정 상황에서 습관적으로 활성화되는 불안, 공포, 분노 등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 이러한 관찰 상황에서는 격한 감정들이 촉발력(觸發力)이 약화된다. 특정 상황에 반응하는 주체도 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심리학은 명상을 이용하여 감정을 관찰함으로써 감정의 통제를 효과적으로 시도한다. 표준이론의 깨어있기담론은 깨어서 24시간 혼을 관찰하라는 이야기다. ‘상대적 의미의 명상의 효과가 이 정도라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절대적 의미의 명상에 도전하여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예수님도 명상에 대하여 이르셨다. “.”10)여기서 골방은 그리스어로 Inner Sanctuary, 또는 Inner Holy를 뜻한다고 하니 이는 하느님을 만나려면 마음속에 침잠하여 기도하라라는 뜻이다.11)

 

 

명상은 할수록 더하게 되고 마침내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항상 명상이 계속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백그라운드에서는 명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즉 항상 깨어있게 된다. 이때에는 참자아가 에고를 평정시켜 마음을 더욱 고요하게 만들 것이다.12)그런데 이 깨어있음은 실로 그 완전한 성취가 어렵다. 이는 자아의 방에서 마음을 비워 내고 영이 주인이 되는 것인데 자아의 수준에 따라 깨어있는 시간이 큰 차이가 난다.13)

 

불교 팔정도(八正道)14)의 하나인 정정(正定)은 평정심, 즉 명상에 드는 것이다. 평정심(平靜心)이란 몸과 마음 즉 육체와 정신과 지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망, 잡념, 지적 활동, , 불행, 기쁨, 슬픔 등 감정이 사라지고 깨어있는 상태명상의 상태영이 혼을 관찰할 때 혼의 상태.

 

▲ 예수님도 명상에 대하여 이르셨다. 골방 기도는 그리스어로 Inner Sanctuary, 또는 Inner Holy를 뜻한다고 하니 이는 ‘하느님을 만나려면 마음속에 침잠하여 기도하라’라는 뜻이다

 

<註釋>

1) 명상과 컴퓨터

 

1. 마음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는 마음을 컴퓨터에 비유하여 마음은 실체(實體)가 아니고 두뇌활동, 또는 그 과정이라고 한다. 마음은 컴퓨터에 전기가 흘러 프로세서가 센서인 키보드와 마우스 등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메모리의 기억을 활용하여 처리한 후 스피커나 모니터 또는 메모리 등으로 아웃풋을 산출한다고 할 때 그 프로세싱이 마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두뇌는 생명을 보전하고 나아가 몸이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오감을 통해 얻은 데이터와 해마에 저장한 기억을 가지고 일련의 전기적 또는 화학적 과정을 수행(遂行, performance)’하여 어떤 결과물을 얻어 내는데 그 수행이 마음인 것이다(장현갑, 명상이 뇌를 바꾼다, 41~54쪽 등 참조).

 

2. 그런데 그는 또 호흡, 특히 조용한 복식호흡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걱정이라는 마음의 故障상태를 중단시키고 나아가 편도체를 진정시키는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지어 몸의 통증을 완화시킨다고 한다. 또 우리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초점을 잡고 머물러 있기가 매우 힘들며 이처럼 쉽사리 동요하는 마음은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마음의 동요 상태안정 상태로 바꾸는 것이 마음 수련, 즉 명상을 하는 기본 목적이라고 한다.

 

3. 프로세싱은 컴퓨터의 어느 곳에 있는가? 프로세서 안에 있는가? 프로세서의 단말이 입력과 출력으로 뻗어 있으니 그 총체에 있는가? 아니면 각 장치를 관통하여 흐르는 전기 안에 있는가? 프로세싱은 어디에도 있지 아니하고 어디에도 있다. 프로세싱은 모든 장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이러한 프로세싱이 실체인가? 이는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가 물으면 그 답이랍시고 “‘사랑한다가 하는 행위가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한다가 사랑의 실체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위에서 수행이 마음인 것과 같다. 이처럼 뇌의학에서 말하는 마음은 실체가 없는 허상(虛像)이고 무상(無常)이다. 전기가 나가면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5. 바야흐로 프로세서와 기억장치가 고도로 발달하여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처리하여 높은 수준의 정보를 산출할 능력을 갖춘 컴퓨터가 탄생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스스로 놀라서 인공지능(AI)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제 곧 전자마음(EM, Electronic Mind)이라는 이름의 컴퓨터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SF영화처럼 사람들은 전자마음과 사랑을 나누려 들 것이다. 사랑이란 사랑한다가 벌이는 행위일 뿐이니까.

 

6. 그런데 마음이 위와 같은 것이라면 명상의 목적은 안정적인 수행(遂行), 컴퓨터로 치면 안정적인 프로세싱을 위하여 입출력장치와 처리장치를 잘 유지하고 보수하는 기술적 행위이어야 하는데 뜬금없이 그 기술을 복식호흡이라 하니 사랑이란 사랑한다가 벌이는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전 주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7. 2에서 복식호흡이 이유는 모르지만각종 인간의 장기를 안정시키는 묘약이라 한다. 다른 차원의 에너지원으로 보는 것이다. 안 하던 호흡을 갑자기 하는 것도 아니고 색다른 공기를 마시는 것도 아닌데 왜 그것이 편도체를 진정시키고 스트레스의 악순환고리를 끊어 내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8. ‘컴퓨터의 입출력장치와 처리장치를 잘 유지하고 보수하는 기술적 행위는 그동안 쭉 해온 행위인데 그런 행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인 사람이 몸에 고장이 나면 컴퓨터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복식호흡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하라는 것이다. 이는 그저 사람의 몸과 마음은 컴퓨터와 같다. 그러나 사람의 몸과 마음이 고장 나면 복식호흡을 하라. 그 수리 기술은 컴퓨터에는 아직 적용되지는 못하지만 미래 언젠가는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최고의 보수기술이기 때문이다.”라고 억지를 쓰는 것과 같다.

 

9. 1의 비유가 적절한 비유라고 주장하려면 반드시 복식호흡과 같은 수준의 컴퓨터 유지보수 비법도 아울러 공개하고 그 두 개가 전혀 같음을 입증하여야 비로소 사람의 몸과 마음은 컴퓨터와 같다는 사실을 남에게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실력으로는 그러한 입증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명상 수리 기술이 미래 언젠가는 컴퓨터에도 적용될 최고의 기술이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부터 사람과 컴퓨터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마음은 遂行도 프로세싱도, 遂行과정이나 결과도 아니다. 육체에 부속된 작용이나 그 결과물도 아니다. 마음은 수행을 하고 사랑을 하는 주체이며 실체이다. 육체의 일부분도 아닌 육체와는 전혀 별개의 실체이다. 복식호흡은 호흡을 통해 공기에서 산소뿐 아니라 정기를 효과적으로 뽑아내는 방법이다. 그래서 복식호흡이 몸과 마음을 유지보수하는 명약이 되는 것이다. 컴퓨터가 사람 흉내를 내려면 우선 스스로 외부에서 신기방통한 전기를 끌어들여 자기 발전(發展)과 자기 수선부터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지경은 SF(Science Fiction)에서만 가능하다. 그럼 이번에는 ‘SF는 항상 현실이 되어 왔다라고 강변할 것인가?

 

 

2) 요가의 팔실수법(八實修法, Ashtanga)

 

1. 라자요가에는 수행의 기초가 되는 여덟 가지 수행법이자 수행의 단계가 있다.

1)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규약을 제시하여 요가를 수행하기 전 자아를 통제하는 금지계율인 제계(制戒, 야마)

2) 내적인 삶을 규율하는 권장계율인 내제(內制, 니야마)

3) 신체를 편안하고 안정시켜 자신과 완벽한 조화 속에 머물도록 신체를 수련하는 좌법(坐法, 아사나)

4) 심층적인 자각을 얻은 후에 그 자각을 강화시키는 조식(調息, 라나야마, 호흡조절)

5) 신체감각을 느끼고 감각으로부터 마음을 회수하는 제감(制感, 쁘라타하라)

6) 마음을 특정 대상에 모으는 정신집중(執止, 다라나)

7) 지식이나 자각이 하나로 융합하는 정려(靜慮, 디야나)

8) 자아에 대한 의식이 없이 대상만 나타나는 상태인 삼매(三昧, 사마디)

 

2. 처음 두 단계는 욕망이나 감각 또는 옳지 않은 것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도록 제지하는 수련이고, 3, 4, 5단계는 신체 수련이다. 여기까지는 상대적 의미의 명상이다. 다음 6, 7, 8단계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묶어 고요히 관찰하는 수련 단계다. 이 세 단계가 절대적 의미의 명상수련이다.

 

3) 習慣은 대부분 악습으로 악습이 바로 이다. 습관은 세 살 버릇이 대부분인데 세 살 때 벌써 버릇을 세웠겠는가. 세 살 버릇은 전생의 습관이고 그것을 업이라고 한다.

 

4) 우리의 자아인 에고는 실체가 아니다. 12연기(緣起)와 오온(五蘊)의 작용으로 인연에 따라 변하는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에고는 조금이라도 상처받거나 억압당한다 싶으면, 순간의 지체도 없이 되돌아와 분노와 울분을 터뜨린다. 위협당한다 싶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두려움에 떨거나 적개심에 휩싸이고, 거부당하거나 무시당한다 싶으면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주장을 한다. 그리고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싶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해지는 것이 우리의 자아이고 에고이다(금인숙, 신비주의참조).

 

5) 에고의 감정뿐 아니다. 정신체가 가진 모든 번뇌 즉 에고의 14가지 感情(喜怒哀樂愛惡欲懼憂憎思悲驚恐)과 이드의 5가지 慾望(,垂面,,財物,名譽), 그리고 몸과 생기체의 4가지 苦痛(生老病死)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혼에게 平靜을 선물하는 방법이 관찰이다. 이를 위해 먼저 평소 혼과의 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라. 그리고 혼이 번뇌에 빠지거들랑 즉시 혼영일체에서 벗어나 혼을 따로 떼어내어라. 그리고 영의 눈으로 혼을 지그시 바라보라. 천둥벌거숭이 혼은 곧 어린애처럼 웅크리고 앉아 조용해질 것이다. 이는 面壁할 곳을 따로 찾지 말고 생활 중에 행하라. 일하다 밥먹다 운전하다 화내다 울다 싸다 드디어는 잠잘 때도 사상마련(事上磨鍊)으로 혼을 떼어내어 바라보라. 영혼육(靈魂肉)에 대한 확신은 혼영일체를 깨는데 큰 도움이 된다. 면벽하여 一心無心으로 혼을 빈사(瀕死)시킨 후 일시적으로 관()하는 명상은 효과가 작다. 일상에서 그때그때 제3자의 영안으로 바라보아야 더욱 효과가 크다(卽觀卽效).

 

6) 이러한 의미에서 인도철학은 영이요 참나인 아트만을 관찰하는 라고 불렀다.

 

7) 1. 양자역학의 저 유명한 이중슬릿 시험을 통해 입자는 관찰하면 입자성을 보이고 관찰하지 않으면 파동성을 보이는 관찰자효과(observer effect)가 확인된다. 이는 관찰을 위해서는 빛이나 전자, X-선과 같은 매개입자가 필요한데 그 매개입자가 관측대상을 변화시키며 관찰이 없을 때는 관측대상이 파동이었다가 관찰로 인해 비로소 입자화된다고 설명된다. 이를 근거로 관측자인 사람이 존재해야 우주를 관찰할 수 있고 이는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만 우주가 존재하며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우주는 없다는 어설픈 마야론도 생겼다.(미주 327 ‘마야론참조)

 

2. 그런데 매개입자가 관측대상을 변화시킨다면 사람의 관찰이 없어도 빛은 있을 것이므로 스스로 입자가 되었다 파동이 되었다 할 것이다. 따라서 관측대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관찰자의 의식이다. 또한 관측대상은 관측없이도 항상 거기 존재하며 더구나 관측대상이 사람의 의식에 반응한다 함은 관측대상에도 의식이 있다는 것이니 관측대상의 객관적 존재성은 더욱 분명하매 마야론은 虛辭. 설사 우주가 마야인들 무슨 문제인가. 구름이 솜사탕이든 작은 물방울이든 그것이 시상(詩想)을 일으켜 내 입에서 시가 나오면 그만이다. 그 시가 장원(壯元)하여 님께서 상찬하시면 더욱 좋은 일이다.

 

3. 따라서 관찰자효과는 빛의 영향도 있겠으나 관찰자의 의식이 일종의 에너지로서 관찰을 통해 입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입자의 기와 의식의 기가 교류하여 발생하는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의식이 입자의 운동에 작용하는 것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거시세계는 미시세계의 수배 크기다. 거시세계에서는 의식에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마크로세계의 물질을 움직이기에는 매우 미약하다. 그러나 의식의 힘이 예외적으로 큰 사람은 거시세계에서의 관찰자효과인 염력(PK)을 발휘한다.

 

4. 한편 영과 혼의 관계는 의식과 물질간의 관계가 아닌 의식과 의식 간의 관계로서 또 다른 형태의 관찰자효과를 보인다. 이때 영은 단순한 관찰만으로도 혼의 의식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하급혼일수록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가.

 

8) 이를 deautomatization이라고 한다.

 

9) ‘볼 관() 자가 셋이면 성불(成佛)한다.’

 

10) 마태오 6:5-6

 

11) 김태항, 카빌라와 예수 그리고 성경, 166쪽 참조

 

12) 레스터 레븐슨, 궁극의 자유를 위한 열쇠

 

13) 마음을 비운다고 하여 영이 마음()을 죽이거나 자아의 방에서 몰아내고 영영 그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인격의 단계에 따라서 영이 자아의 방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 즉 깨어있는 시간 - 혼을 평정케 하여(upekkhā) 관찰하고(Sampajañña) 그 변화를 알아차릴(Sati) 자세를 갖춘 시간 - 이 길어질 것이나 혼영일체인 사람이 그 지경을 오래 유지하기란 실로 어렵다. 그러나 영이 자아의 방에서 다시 물러난다 하더라도 그가 장악했던 방의 기운은 혼에게 영향을 미쳐 그를 영화(靈化)시킨다(4.3.2.2.1. ‘자아가 깨어있는 시간참조).

 

14) 八正道는 열반에 들기 위한 수행방법인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중 정수(精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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