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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발달과 믿음의 퇴화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2/20 [10:39]
화평서신

의료의 발달과 믿음의 퇴화

화평서신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2/20 [10:39]
 
◈ 주초 입원수술을 하고 퇴원했습니다. 두 번째 탈장수술이었는데 개복수술이 아닌 복강경 기구를 사용해 포트(구멍)을 뚫어 했기 때문에 이틀 만에 병원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몸에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했고 또한 의술의 발달이 대단히 좋아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십 수년 전만 해도 감히 시도하지 못할 수술방법이었고 반세기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며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평균수명 연장에 의술이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 짧은 입원 기간 중이지만 많은 기도를 했고, 또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쾌차 기원기도를 받았습니다. 위안과 힘이 됐습니다. 기도의 효력을 느꼈습니다. 그런 한편 과연 ‘세상의 종교와 신앙이 의료기술만큼 발전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믿음’이란 것이 발전 ․ 진화할 요소가 아니고 절대적인 것이긴 하지만 세상의 종교와 신앙, 믿음이 여전히 미망과 현혹에 휩싸인 현실을 떠 올린 것입니다. 믿음도 의술처럼 발달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입원 전 주에 미망으로 인해 미국에서 발생한 한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믿음만 있으면 독사에 물려도 해를 입지 않는다'는 이른바 ’뱀 구원설‘을 신봉해왔던 목사 이야기입니다. 그가 독사에 물려 사망하는 변을 당했습니다.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뱀에 물렸는데 치료를 거부하고 귀가했다고 합니다. 

◈ 현대사회에 ‘뱀 구원설’ 등 신비주의 현상을 이용한 개신교의 전도 행위가 미국일부 지역에서는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망에 몰입해 전도하는 지도자를 믿고 현혹되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의 힘은 위대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한번 젖어든 미망에서 헤어나오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주선이 지구 밖을 떠다니는 시대에 아직도 중세의 천동설(天動說)을 믿는 미국인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 종교도 시류에 따라 조화를 맞추고 진화합니다. 중세 가톨릭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며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하면 사형시켰습니다. 면죄부(免罪符)를 사면 죄가 없어진다고 선동했습니다. 이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마녀사냥’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터무니없이 허황된 믿음은 굳건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러한 믿음은 언제 그랬냐듯이 미망으로 치부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만이 진실이라는 태도를 보여선 안된다”는 한층 나아간 강론까지 펼칩니다. “무신론자도 양심 지키면 신이 자비 베푼다”는 메시지도 보냈습니다. 인터텟 시대에 "대화는 다른 사람도 뭔가 가치있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고 믿고 상대방의 관점이나 견해를 들어줘야만 성립된다"는 의미였지만 중세시대라면 처형에 처해질 발언입니다.

◈ 기독교뿐만 아니라 여타종교도 이러한 시대와의 조화를 갖춰 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근본적인 믿음과 신앙을 고수하는 종파가 비일비재합니다. ‘천동설’을 고수하듯이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뱀 구원설’ 등 신비주의 현상을 내세운 신흥종교가 수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것이 의료기술처럼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신념체계여서 어떻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피폐할수록 요상한 믿음이 우후죽순 형성되고 그에 현혹되어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집단 광기(狂氣) 현상까지 보입니다. 근본주의, 집단광기를 보면 믿음과 신앙이란 것이 퇴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비교종교학자이자 ‘종교너머, 아하!’ 이사장인 오강남 교수는 심층종교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각자의 울타리에 갇혀 개인적인 소원성취에만 연연하는 ‘표층종교’의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며 “종교의 본질을 탐구하는 심층종교가 대안이다.”고 합니다. 표층종교의 믿음이 퇴화돼 미망과 현혹, 아집이 생겨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우리가 존재를 인정해야만 마음이 놓일 정도로 그렇게도 자신감이 없는 신이란 말인가? 신은 그의 존재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대신 그의 존재와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지는 않을까?”하는 반문도 합니다.
 
‘없이 계신 이’를 놓고 입맛대로 하나님을 해석하고  믿음을 주장하는 표층종교에 대한 경고가 와닿았습니다.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울타리에 갇힌 것이 미망이자 현혹일 수 있다고 봅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는 것처럼 믿음도 진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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