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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3/25 [10:06]
화평서신

껍데기는 가라

화평서신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3/25 [10:06]

◈ 4월이 다가오면서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가 떠오릅니다.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 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0년대 4.19혁명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입니다. 평론가들은 ‘껍데기란 속알맹이가 없는 것,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한 것, 허구에 차 있는 것, 이런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민중을 속이고 정권욕에 혈안되어 있던 거짓 정권, 진실과 배치되는 거짓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변영로의 ‘논개’란 시도 생각납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스스로 기생이 되어 촉석루 잔치에서 왜장을 유인해 그의 허리를 껴안고 남강에 빠져 순절한 논개를 칭송한 시입니다. ‘거룩한 분노가 종교보다도 깊다’는 시구가 전율을 일으킵니다.
 
◈ 이번 화평서신은 ‘종교보다도 깊은 시’로 일관합니다. 종교가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껍데기로 남아있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시들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종교가 세상에 심판받고 구원을 구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차라리 시와 ‘거룩한 분노’가 세상을 올바르게 보게 하고 사랑과 용기, 희생정신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알맹이인 사랑과 희생, 용기는 사라지고 껍데기인 권위와 허세, 미망과 현혹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시대입니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외침이 종교세상에 필요해진 듯 합니다.
 
◈ 매일종교신문 이번 ‘종교지도자와의 대담’은 원영진 대종교 제 19대 총전교를 만났습니다. 일제시대에 이미 30만 교인이었던 대종교의 위세는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홍은동 산 정상에 벽지 초등학교 같은 대종교 총본사가 있었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밀려 미신, 우상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미군정 때 유교, 불교, 천도교, 기독교 등과 함께 5대 종단의 일원으로 등록되었던 대종교는 이제 기성종교로부터 냉대와 배척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오히려 권위와 허세란 껍데기를 벗어던진 알맹이 신앙으로 보였습니다.
 
원 총전교는 ‘한얼님과 하늘님, 하나님이 같은 분’이라고 했습니다.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닌, 모든 종교를 포용할 수 있는 조화원리를 갖춘 범세계적 종교라고도 했습니다. ‘단군 할아버지는 신화 속의 신이 아닌 하나님의 심부름꾼(메신저)이자 선생’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종교의 기본정신을 갖고 있다고 새삼 보게 되었습니다. 교세가 위축되고 타 종교로부터 냉대를 받으면서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은 것입니다. 반만년 역사(4471년)를 내려온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여졌습니다.
 
◈ 최근 한 도사도 만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을 잘 닦을 수가 있나?” 하고 묻자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것이 도”라고 했습니다. “도라 일컬으면 이미 도가 아니다.”라고도 했습니다.  ‘도’를 ‘도’라 하면 이미 껍데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종교만을 종교라고 내세우면 이미 종교가 아니다”라는 말로도 들렸습니다.
 ,
도사가 어떻게 정성기도를 하느냐고 묻자, 나는 “밥 잘 먹고, 똥 잘싸고, 잠 잘자고, 일 열심히 하여 이웃에 피해 주지 않고 도움 줄려고 삽니다. 창조주 신께서 우주만물을 관리하고 운영하시느라 얼마나 바쁘고 고생이 많으실까?  미안하고 죄송해서 기도는 많이 못하지만 孝心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분의 뜻대로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껍데기를 벗어던진 알맹이 종교생활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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