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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判

李沃龍 | 기사입력 2022/07/29 [13:50]
李沃龍(イ オギョン)和平書信から

批判

李沃龍(イ オギョン)和平書信から

李沃龍 | 입력 : 2022/07/29 [13:50]

自動翻で翻すると容が大幅にわってしまう部分もあり、今回の記事は韓語と日本語を載せることになりました。

자동번역기로번역하다보니내용이많이바뀌는부분도있어서이번기사는한국어와일본어를싣게되었습니다.

 

 

[日本語] 

筆者の文を読んだある宗教団体の指導者が私に尋ねました。「良い言葉はさておき、なぜ批判的な言葉だけを選んで話しますか?」、間違った話ではありません。

「聖職者でもなく、教師でもない筆者が、同じように良いことを言う必要がありますか? 私は、私の目に見える現象と気づいたままのこと言うのです」と話しました。

 

誰もが言いたくても言えず心中に留めている言葉を、宗教言論人の立場で筆者が代わりに話すこともあり、研究して、勉強して、体感体得したことを話します。

 

筆者は、暴いたり、批判する文を書く前に、過去、現在、未来を比べてみて客観性をもって文を書こうとするのに不足した点があると感じる時もあります。

 

人々は批判する人をひねくれた人と見ます。

 

しかし、批判は「物事の是非を判断して明らかにしたり、誤った点を指摘すること」で肯定的だと言えます。

 

キリスト教徒が救世主であり神さまと信じているイエスさまは「批判を受けないようにするなら批判するな」とおっしゃいました。批判すれば批判を受け、そうするとお互いに良い関係を結ぶ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

 

しかし、イエスさまは批判を越えて呪うこともしました。イエスさまの教えと行跡が含まれた四大福音書は、イエスさまのユダヤ教徒に対する批判が相当部分を占めています。

ユダヤ教徒に対する憎悪と卑下、差別性の発言がいたるところに発見されます。イエスさまは愛を強調しながらも、ユダヤ教の指導者たちを辛辣に責められました。彼らを悪とし、淫乱な世代と規定しながら大祭司長と長老たちを羊の服を着て略奪する、不法を行う者だと糾弾しました。「取税人や遊女が彼らより先に神の国に入る」と毒舌を浴びせました。

 

イエスさまの「批判するな」という言葉は、誤ったことを指摘せずに、良いことが良いというふうに目をつぶ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そのような意味ではないでしょう。

 

トマト一つが腐ると周りのトマトも腐ります。宗教指導者や宗教団体の幹部の過ちを放置するば、宗教団体が物売りのようになってしまいます。腐敗した指導者、幹部、信徒は毒キノコと同じような存在です。

 

他の霊魂まで壊し、誤った道に導きます。人は自分の神霊に捕らわれて肉的欲望に従って生きれば、霊魂が熟すことができず、人格が中身のないものになり、カカシになります。形は人ですが、その中には人の人格が入っていません。

 

宗教は自ら世の中の光だと言います。世の中は宗教指導者はもちろん信徒にも厳正な倫理的・道徳的物差しを当てます。宗教が光を失えば、人々に後ろ指を差され、聖殿は神と教祖を売るようになってしまいます。

 

個人はもちろん、政治家や宗教家は聞きたい言葉だけを聞いて、聞くべき批判の言葉に背を向け、末路が悲惨だった過去と現在を私たちは見ています。

 

批判と監視がなく、聞きたい甘い言葉だけを言うところには希望がないところであり、末路が悲惨なところだということです。

 

誰も例外なく批判と監視を常に受けてこそ希望があり、幸せの道に進む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です。

〈毎日宗教新聞 NEWSCLIP 発行人 李

 (翻訳:SAORI記者)

 

[한국어]

필자의 글을 읽은 모 종단 지도자가 내게 물었습니다. “왜 좋은 말은 놔두고, 비판적인 말만 골라서 합니까?”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직자도 아니고, 교사도 아닌 필자가 똑같이 좋은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내 눈에 보이는 현상과 깨닫은 바 그대로를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고 심중에 담아두고 있는 말을 종교언론인 입장에서 필자가 대신 하는 경우도 있고, 연구하고 공부하여 체감 체득한 바를 말합니다.

 

필자는 까고 비판하는 글을 쓰기에 앞서 과거, 현재, 미래를 견주어 보면서 객관성 있게 글을 쓰고자하는데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판하는 사람을 삐딱한 사람으로 봅니다.

 

하지만 비판은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긍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구세주이자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예수님께서는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판하면 비판을 받고, 그러면 서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는 비판을 넘어 저주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담은 4대 복음서는 예수님의 유대교인들에 대한 비판이 상당부분 차지합니다.

유대교인에 대한 증오와 비하, 차별성 발언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는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유대교지도자들을 신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로 규정하시면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하는 이리로,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규탄하셨습니다. “세리와 창기가 그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예수님의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눈감아 주어야 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토마토 하나가 썩으면 주위의 토마토도 썩습니다. 종교지도자나 종교단체의 간부의 잘못을 방치하면 종교단체가 저자거리 좌판이 되고 맙니다. 부패한 지도자, 간부, 신도는 독버섯과 같은 존재입니다.

 

다른 영혼들까지 망가뜨리고,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사람은 자기 신령에 사로잡혀  육적 욕망에 따라 살면, 영혼이 여물지 못해 인격이 쭉정이가 되고, 허수아비가 됩니다. 모양은 사람이지만 그 속에는 사람의 인격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종교는 스스로 세상의 빛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종교지도자는 물론 신도에게도 엄정한 윤리적·도덕적  잣대를 들이댑니다. 종교가 빛을 잃으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성전은 신과 교조를 파는 가게가 되고 맙니다.

 

개인은 물론 정치가나 종교가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들어야할 비판의 말을 외면하여 말로가 비참했던 과거와 현재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비판과 감시가 없고 듣고 싶은 달콤한 말만 하는 곳에는 희망이 없는 곳이며 말로가 비참 곳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만 희망이 있고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종교신문 NEWSCLIP 회장 이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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